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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푼 짜리도 못되는 양반(兩班傳 양반전)

양반(兩班)이란 사족(士族)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정선(旌善) 고을에 한 양반이 있었는데 어질고 글 읽기를 좋아하였으므로, 군수가 새로 도임하게 되면 반드시 몸소 그의 집에 가서 인사를 차렸다. 그러나 집이 가난하여 해마다 관청의 환곡을 빌려 먹다 보니, 해마다 쌓여서 그 빚이 천석(千石)에 이르렀다. 관찰사가 고을을 순행하면서 환곡 출납을 조사해 보고 크게 노하여, “어떤 놈의 양반이 군량미를 축냈단 말인가?” 하고서 그 양반을 잡아 가두라고 명했다. 군수는 그 양반이 가난하여 보상을 할 길이 없음을 내심 안타깝게 여겨 차마 가두지는 못하였으나, 그 역시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양반이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고 밤낮으로 울기만 하고 있으니, 그의 아내가 몰아세우며, “당신은 평소에 그렇게도 글..

문장을 어떻게 지어야할 것인가?

문장을 어떻게 지어야 할 것인가? 논자(論者)들은 반드시 ‘법고(法古 옛것을 지키고 본받음)’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침내 세상에는 옛것을 흉내내고 본뜨면서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가 생기게 되었다. 이는 왕망(王莽)의 《주관(周官)》으로 족히 예악을 제정할 수 있고, 양화(陽貨)가 공자와 얼굴이 닮았다 해서 만세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셈이니, 어찌 ‘법고’를 해서 되겠는가? 그렇다면 ‘창신(刱新 새롭게 창조함)’이 옳지 않겠는가? 그래서 마침내 세상에는 괴벽하고 허황되게 문장을 지으면서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가 생기게 되었다. 이는 세 발〔丈〕 되는 장대가 국가 재정에 중요한 도량형기(度量衡器)보다 낫고, 이연년(李延年)의 신성(新聲, 빠른 가락의 시조창가. 요즘으로 치면 랩)을 종묘 제사..

참되고 올바른 식견은 중간에 있다

자무(子務)와 자혜(子惠)가 밖에 나가 노니다가 비단옷을 입은 소경을 보았다. 자혜가 서글피 한숨지으며, “아, 자기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기 눈으로 보지를 못하는구나.” 하자, 자무가, “비단옷 입고 밤길을 걷는 자와 비교하면 어느 편이 낫겠는가?” 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청허선생(聽虛先生)에게 함께 가서 물어보았더니, 선생이 손을 내저으며, “나도 모르겠네, 나도 몰라.”하였다. 옛날에 황희(黃喜) 정승이 공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그 딸이 맞이하며 묻기를, “아버님께서 이〔蝨〕를 아십니까? 이는 어디서 생기는 것입니까? 옷에서 생기지요?” 하니, “그렇단다.” 하므로 딸이 웃으며, “내가 확실히 이겼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며느리가 묻기를, “이는 살에서 생기는 게 아닙니까?” 하니, “그렇고..

왜 글을 읽는가?

무릇 선비란 다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천자가 태학(太學)을 순시할 때 삼로(三老)와 오경(五更)의 자리를 마련하여 조언을 구하고 음식을 대접한 것은 효(孝)를 천하에 확대하자는 것이요, 천자의 원자(元子)와 적자(適子)가 태학에 입학하여 나이에 따른 질서를 지킨 것은 공손함〔悌〕을 천하에 보여 주자는 것이다. 효제(孝悌)란 선비의 근원〔統〕이요, 선비란 인간의 근원이며, 본디〔雅〕는 온갖 행실의 근원이니, 천자도 오히려 그 본디를 밝히거든 하물며 소위(素位)의 선비이랴? 아아! 요순(堯舜)은 아마도 효제(孝悌)를 실천한 ‘본디 선비〔雅士〕’요, 공맹(孔孟)은 아마도 옛날에 글을 잘 읽은 분인저! 누군들 선비가 아니리요마는, 능히 본디〔雅〕를 행하는 자는 적고, 누군들 글을 읽지 아니하리요마는 능히 잘 ..

진짜를 알아 보는 안목 (筆洗說 필세설)

오래된 그릇을 팔려고 하나 3년 동안이나 팔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그릇의 재질은 투박스러운 돌이었다. 술잔이라고 보기에는 겉이 틀어지고 안으로 말려들었으며, 기름때가 끼어 광택을 가리고 있었다. 온 장안을 다 돌아다녀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다시 부귀한 집안을 다 찾아갔지만 값이 더욱 떨어져 수백에 이르고 말았다. 하루는 누군가가 이것을 가지고서 서군 여오(徐君汝五)에게 보였다. 그러자 여오가 말하기를, “이것은 필세(筆洗 붓 씻는 그릇)이다. 이 돌은 복주(福州) 수산(壽山)의 오화석갱(五花石坑)에서 나는 것인데, 옥에 버금가는 것으로 옥돌과도 같다.” 하며, 값의 고하를 따지지 아니하고 즉석에서 8000냥을 내주었다. 그러고는 때를 긁어내니, 예전에 투박스럽게 보였던 것은 바로 물결 모양의 무늬가..

글이란 뜻을 그려내는 데 그칠 따름

글이란 뜻을 그려내는 데 그칠 따름이다. 글제를 앞에 놓고 붓을 쥐고서 갑자기 옛말을 생각하거나, 억지로 경서(經書)의 뜻을 찾아내어 일부러 근엄한 척하고 글자마다 정중하게 하는 사람은, 비유하자면 화공(畫工)을 불러서 초상을 그리게 할 적에 용모를 가다듬고 그 앞에 나서는 것과 같다. 시선을 움직이지 않고 옷은 주름살 하나 없이 펴서 평상시의 태도를 잃어버린다면, 아무리 훌륭한 화공이라도 그 참모습을그려내기 어려울 것이다. 글을 짓는 사람도 어찌 이와 다를 것이 있겠는가. 말이란 거창할 필요가 없으며, 도(道)는 털끝만한 차이로도 나뉘는 법이니, 말로써 도를 표현할 수 있다면 부서진 기와나 벽돌인들 어찌 버리겠는가. 그러므로 도올(檮杌)은 사악한 짐승이지만 초(楚) 나라의 국사(國史)는 그 이름을 취하..

까마귀를 비웃고 학을 위태롭게 여기다

달관한 사람에게는 괴이한 것이 없으나 속인들에게는 의심스러운 것이 많다. 이른바 ‘본 것이 적으면 괴이하게 여기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달관한 사람이라 해서 어찌 사물마다 다 찾아 눈으로 꼭 보았겠는가. 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눈앞에 그려 보고, 열 가지를 보면 백 가지를 마음속에 설정해 보니, 천만 가지 괴기(怪奇)한 것들이란 도리어 사물에 잠시 붙은 것이며 자기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마음이 한가롭게 여유가 있고 사물에 응수함이 무궁무진하다. 본 것이 적은 자는 해오라기를 기준으로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기준으로 학을 위태롭다고 여기니, 그 사물 자체는 본디 괴이할 것이 없는데 자기 혼자 화를 내고, 한 가지 일이라도 자기 생각과 같지 않으면 만물을 모조리 모함하려 든다...

쓸모있는 사람, 쓸모없는 사람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말은 애초에 듣지 말아야 할 것이요, 발설 말라 하면서 하는 말은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니, 남이 알까 두려운 일을 무엇 때문에 말하며 무엇 때문에 들을 까닭이 있소? 말을 이미 해 놓고 다시 경계하는 것은 상대방을 의심하는 일이요, 상대방을 의심하고도 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오. 말세에 처하여 사람을 사귈 때는 마땅히 상대방의 말이 간략하고 기운이 차분하며 성품이 소박하고 뜻이 검약한가를 살펴보아야 하며, 절대로 마음속에 계교(計巧)를 지닌 사람은 사귀어서는 안 되고 뜻이 허황된 사람은 사귀어서는 아니 되지요. 세상에서 떠드는 ‘쓸모 있는 사람’이란 반드시 쓸모없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떠들어 대는 ‘쓸모없는 사람’이란 반드시 쓸모 있는 사람이지요. 천하가 안락하고 향리에..

상생한다는 것은 서로 힘입어 사는 것

내가 나이 스무 살 때 마을 서당에서 상서(尙書, 서경(書經))를 배웠는데 홍범(洪範, 천지간에 가장 큰 법이라는 뜻)*이 너무도 읽기 어려워서 선생께 물었더니, 선생은 말했다. “이는 읽기 어려운 글이 아니다. 읽기 어려운 까닭은 속된 선비들이 어지럽게 만든 때문이다. 무릇 오행(五行)이란 하늘이 부여한 것이요 땅이 소장한 것으로, 사람들이 이에 힘입어 살아 나가는 것이다. 우 임금이 순서를 정한 홍범구주와 무왕과 기자(箕子)가 문답한 내용을 보면 오행이 하는 일은 정덕(正德, 백성의 덕을 바로잡는 것), 이용(利用, 백성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것), 후생(厚生,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의 도구에 지나지 아니하며 오행이 하는 작용은 중화위육(中和位育, 서로 화합하고 상생하는 조화로운 삶을 통하..

참다운 벗을 사귀기란 확실히 어렵다

이 아우의 평소 교유가 넓지 않은 것도 아니어서, 덕을 헤아리고 지체를 비교하여 모두 벗으로 허여한 터이지요. 그러나 벗으로 허여한 자 중에는 명성을 추구하고 권세에 붙좇는 혐의가 없지 않았으니, 눈에 벗은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는 것은 다만 명성과 이익과 권세였을 따름이외다. 그런데 지금 나는 스스로 풀숲 사이로 도피해 있으니, ‘머리를 깎지 않은 비구승’이요 ‘아내를 둔 행각승’이라 하겠습니다. 산 높고 물이 깊으니, 명성 따위를 어디에 쓰겠는지요? 옛사람의 이른바 “걸핏하면 곧 비방을 당하지만, 명성 또한 따라온다.”는 것 또한 헛된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겨우 한 치의 명성만 얻어도 벌써 한 자의 비방이 이르곤 합니다. 명성 좋아하는 자는 늙어가면 저절로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젊은 시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