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목적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면

아무리 작은 기예(技藝)라 할지라도 다른 것을 잊어버리고 매달려야만 이루어지는 법인데 하물며 큰 도(道)에 있어서랴. 최흥효(崔興孝)는 온 나라에서 글씨를 제일 잘 쓰는 사람이었다. 일찍이 과거에 응시하여 시권(試卷)을 쓰다가 그중에 글자 하나가 왕희지(王羲之)의 서체와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는, 종일토록 들여다보고 앉았다가 차마 그것을 버릴 수가 없어 시권을 품에 품고 돌아왔다. 이쯤 되면 ‘이해득실 따위를 마음속에 두지 않는다’고 이를 만하다. 이징(李澄)이 어릴 때 다락에 올라가 그림을 익히고 있었는데 집에서 그가 있는 곳을 몰라서 사흘 동안 찾다가 마침내 찾아냈다. 부친이 노하여 종아리를 때렸더니 울면서도 떨어진 눈물을 끌어다 새를 그리고 있었다. 이쯤 되면 ‘그림에 온통 빠져서 영욕(榮辱)을 잊어..

보이는 바가 너무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못보는 것은 마찬가지

우연히 야성(野性)을 찬미하다가 스스로를 고라니(麋 큰사슴 미)에 비한 것은 고라니가 사람만 가까이하면 잘 놀라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지 감히 잘난 체해서가 아니었지요. 지금 그대의 편지를 받아 보건대, 스스로를 기마(驥馬) 꼬리에 붙은 파리에 비했으니, 또 어찌 그리 작지요? 진실로 그대가 작게 되기를 구한다면 파리도 오히려 크고말고요. 개미도 있지 않소? 내 일찍이 약산(藥山)에 올라 도읍을 굽어보니 사람들이 달리고 치닫고 하여 땅에 가득 구물대는 것이 마치 개밋둑에 진을 친 개미와 같아서, 한번 불면 능히 흩어질 것만 같았지요. 그러나 다시 그 도읍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바라보게 한다면, 비탈을 더위잡고 바위를 오르고 다래 넝쿨을 움켜쥐고 나무를 타고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는 망령되이 스스로 높고..

마음이 빚어내는 조화

하수(강물)는 두 산 틈에서 나와 돌과 부딪쳐 싸우며 그 놀란 파도와 성난 물머리와 우는 여울과 노한 물결과 슬픈 곡조와 원망하는 소리가 굽이쳐 돌면서, 우는 듯, 소리치는 듯, 바쁘게 호령하는 듯, 항상 장성을 깨뜨릴 형세가 있어, 전차(戰車) 만 승(萬乘)과 전기(戰騎) 만 대(萬隊)나 전포(戰砲) 만 가(萬架)와 전고(戰鼓) 만 좌(萬座)로서는 그 무너뜨리고 내뿜는 소리를 족히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모래 위에 큰 돌은 흘연(屹然)히 떨어져 섰고, 강 언덕에 버드나무는 어둡고 컴컴하여 물지킴과 하수 귀신이 다투어 나와서 사람을 놀리는 듯한데 좌우의 교리(蛟螭)가 붙들려고 애쓰는 듯싶었다. 혹은 말하기를, “여기는 옛 전쟁터이므로 강물이 저같이 우는 거야.” 하지만 이는 그런 것이 아니니, 강물 소..

제 2의 나

옛날에 붕우(朋友, 벗)를 말하는 사람들은 붕우를 ‘제 2 의 나’라 일컫기도 했고, ‘주선인(周旋人)*’이라 일컫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자를 만드는 자가 날개 우(羽) 자를 빌려 벗 붕(朋) 자를 만들었고, 손 수(手) 자와 또 우(又) 자를 합쳐서 벗 우(友) 자를 만들었으니, 붕우란 마치 새에게 두 날개가 있고 사람에게 두 손이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도 “천고의 옛사람을 벗 삼는다.(尙友千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너무도 답답한 말이다. 천고의 옛사람은 이미 휘날리는 먼지와 싸늘한 바람으로 변해 버렸으니, 그 누가 장차 ‘제 2 의 나’가 될 것이며, 누가 나를 위해 주선인이 되겠는가. 양자운(揚子雲, 양웅)*은 당세의 지기(知己)를 얻지 못하자 개탄하면서 천년 뒤의 자운..

사람의 여백

"귀하게 되면 인색해지고 / 부유해지면 더러워지고 / 오래 살면 포악해진다 / 인자하고 진실한 자에겐 요절이 뒤따르고 / 깨끗하여 찌끼 없는 자에겐 가난이 깃들고 / 베풀기 좋아하고 주는 것 많은 자는 높은 벼슬이 없다 / 이 여섯 가지 덕 중에 내 장차 어느 것을 택할꼬 / 아! 못난 자식에겐 격려하여 일으켜 세우고 / 얌전한 자에겐 가로막아 억누르다니 / 내 말을 못 믿거들랑 여기 새긴 글월을 보소." 얼굴을 그려 낸 글로는 천고에 사마천(司馬遷) 같은 이가 없다. 그는 매양 사람의 흠 있는 부분이나 결여된 부분에 대해 반드시 있는 힘을 다해 그려 내었다. 요컨대 흠 있는 부분이나 결여된 부분은 그 사람의 여백이지만, 그 여백이야말로 그 사람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임을 알아야 한다. 정신이란 이른바..

비록 장독덮개로 쓰일지라도

(원문 60자 빠짐) ‘우자(右者)는 삼가 아룁니다’라는 의미의 ‘우근진(右謹陳)’을 들어 타매(唾罵, 침을 뱉어가며 꾸짖는다는 뜻으로, '몹시 더럽게 생각하거나 욕함'을 이르는 말)하고 있다. 이른바 ‘우근진’이란 말이 저열한 표현인 것은 사실이나, 세상에 붓대를 쥐고 글줄이나 쓴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마는, 그들의 글을 책으로 간행한 것들을 보면 모두가 가득 늘어만 놓은 음식의 찌꺼기처럼 시금떨떨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왜 구태여 문서의 서두어나 말을 꺼낼 때 사용하는 상투어만을 나무라는지 모를 일이다. 제전(帝典, 《서경(書經)》 요전(堯典)ㆍ순전(舜典))의 ‘월약계고(曰若稽古, 옛일을 상고하건대)’나 불경(佛經)의 ‘여시아문(如是我聞, 이와 같이 내가 들었노라)’도 바로 지금의 ‘우근진’과 ..

비슷하다고 진짜는 아니다

이 세상 사람들을 내 살펴보니 남의 문장을 기리는 자는 문(文)은 꼭 양한(전한 시대과 후한 시대)을 본떴다 하고 시는 꼭 성당(당나라 전성시대의 글)을 본떴다 하네. 비슷하다는 그 말 벌써 참이 아니라는 뜻(曰似已非眞) 한당(漢唐)이 어찌 또 있을 리 있소. 우리나라 습속은 옛 투식 즐겨 당연하게 여기네 촌스러운 그 말을 듣는 자는 도무지 깨닫지 못해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이 없군. 못난 놈은 기쁨이 뺨에 솟아서 입을 벌려 웃어 대며 침을 흘리고 약은 놈은 갑자기 겸양을 발휘하고 삼십 리나 피하여 달아나는 척 허한 놈은 두 눈이 놀라 휘둥글 더웁지 않은데도 땀 쏟아지고 약골은 굉장히도 부러워하여 이름만 들어도 향기 나는 듯 심술꾼은 공공연히 노기를 띠어 주먹 불끈 후려치길 생각한다오 내 또한 이와 같은 ..

비슷한 것을 추구하려는 것은 참이 아니다

옛글을 모방하여 글을 짓기를 마치 거울이 형체를 비추듯이 하면 ‘비슷하다’고 하겠는가?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반대로 되는데 어찌 비슷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물이 형체를 비추듯이 하면 ‘비슷하다’고 하겠는가? 뿌리와 가지가 거꾸로 보이는데 어찌 비슷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이 한다면 ‘비슷하다’고 하겠는가? 한낮이 되면 난쟁이〔侏儒僬僥〕가 되고 석양이 들면 키다리〔龍伯防風〕가 되는데 어찌 비슷할 수 있겠는가. 그림이 형체를 묘사하듯이 한다면 ‘비슷하다’고 하겠는가? 걸어가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소리가 없는데 어찌 비슷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옛글과 끝내 비슷할 수 없단 말인가? 그런데 어찌 구태여 비슷한 것을 구하려 드는가? 비슷한 것을 구하려 드는 것은 그 자..

냄새나는 가죽부대 속에 몇 개의 문자

그대는 행여 신령한 지각과 민첩한 깨달음이 있다 하여 남에게 교만하거나 다른 생물을 업신여기지 말아 주오. 저들에게 만약 약간의 신령한 깨달음이 있다면 어찌 스스로 부끄럽지 않겠으며, 만약 저들에게 신령한 지각이 없다면 교만하고 업신여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우리들은 냄새나는 가죽부대 속에 몇 개의 문자를 지니고 있는 것이 남들보다 조금 많은 데 불과할 따름이오(吾輩臭皮帒中 裹得幾箇字 오배후피대중 과득기개자).그러니 저 나무에서 매미가 울음 울고 땅 구멍에서 지렁이가 울음 우는 것도 역시 시를 읊고 책을 읽는 소리가 아니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소.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초책(楚幘)에게 보냄(與楚幘)', 연암집 제5권/영대정잉묵(映帶亭賸墨)/척독(尺牘)-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

문자나 글월로 표현되지 않은 문장

부지런하고 정밀하게 글을 읽기로는 포희씨(庖犧氏, 태호 복희씨(太皞伏羲氏)라고도 불리운다. 중국 고대 삼황 중 하나로, 전설에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역경에 팔괘를 만들었다고 전한다.)와 대등할 이 뉘 있겠습니까? 글의 정신과 의태(意態, 마음의 상태)가 우주에 널리 펼쳐 있고 만물에 흩어져 있으니, 우주 만물은 단지 '문자나 글월로 표현되지 않은 문장'(不字不書之文)입니다. 후세에 명색이 부지런히 글을 읽는다는 자들은 엉성한 마음과 옅은 식견으로 마른 먹과 낡은 종이 사이에 시력을 쏟아 그 속에 있는 좀오줌과 쥐똥이나 찾아 모으고 있으니, 이는 이른바 “술찌끼를 잔뜩 먹고 취해 죽겠다(謂哺糟醨而醉欲死 포위조리이취욕사).” 하는 격이니 어찌 딱하지 않겠습니까? 저 허공 속에 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