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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剩餘)에 대하여

‘잉여(剩餘)’라는 말은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베와 비단에 잉여가 없다면 옷을 만들 수 없고, 재목에 잉여가 없다면 집을 지을 수 없다. 하물며 솜씨 좋은 아녀자나 기술 좋은 장인이 잉여를 가지고 쓸모 있게 만들어 더욱 자신의 솜씨를 드러내는 경우에 있어서랴. 문장(文章)의 경우를 말한다면 이는 선비들에게 있어 잉여이다. 하지만 문장(文章)이 없으면 또한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옛사람이 이른 바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게 되는 것이 위대하도다.”라는 것이 어찌 이치를 통달한 말이 아니겠는가. 잉여옹(剩餘翁)*은 잉여라고 자호(自號)하여 쓸모없음을 자처하였으면서도 오히려 시 짓기를 좋아했으니, 이는 쓸모없는 늙은이가 또 쓸모없는 행동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인재를 잘 쓰는 신묘..

천진난만하게 노는 어린아이와 부끄러워하는 처녀의 심정으로

“고(藁, 글을 기록한 원고)를 영처(嬰處)라고 하였으니 고(藁)를 쓴 사람이 영처인가?” 하므로, “고를 쓴 사람은 20세가 넘은 남자이다.” 하였다. “영처가 고를 쓴 사람이 아닌데도 고를 유독 '영처'라고 하면 옳겠는가?” 하므로, “이는 스스로 겸손한 것에 가까우면서도 도리어 스스로 찬미한 것이다.” 하였다.(옮긴이 주: 영처(嬰處)는 이덕무의 호로 문자적으로 보면, '어린아이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외에도 형암(炯庵), 아정(雅亭)·청장관(靑莊館)·동방일사(東方一士)·신천옹(信天翁)등이 있다) “그렇지 않다. 숙성(夙成)한 어린이는 스스로 찬미하기를 ‘장자(長者)’라 해야 할 것이요 지혜로운 처녀는 스스로 찬미하기를 ‘장부(丈夫)’라 해야 할 것이지만, 20이 넘은 남자가 도리어 영처로 스스로 ..

호곡장론(好哭場論): 한바탕 마음껏 울만한 곳

초팔일 갑신 맑음. 정사正使와 가마를 같이 타고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십여리를 가서 한 줄기 산 자락을 돌아 나오자, 태복泰卜이가 갑자기 몸을 굽히고 종종걸음으로 말 머리를 지나더니 땅에 엎디어 큰 소리로 말한다. “백탑白塔 현신現身을 아뢰오.”태복이는 정진사鄭進士의 말구종꾼이다. 산 자락이 아직도 가리고 있어 백탑은 보이지 않았다. 채찍질로 서둘러 수십 보도 못가서 겨우 산 자락을 벗어나자, 눈빛이 아슴아슴해지면서 갑자기 한 무리의 검은 공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내가 오늘에야 비로소, 인간이란 것이 본시 아무데도 기대일 곳 없이 단지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서야 걸어다닐 수 있음을 알았다.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서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