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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서 가장 민망스러운 것

자기의 기호에 따라 경전(經傳, 경전(經典)과 그것의 해석서(解釋書). 성경현전(聖經賢傳)의 준말)과 성현(聖賢, 성인(聖人)과 현인(賢人))을 함부로 끌어대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장기 바둑을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논어》에 있는 ‘장기 바둑을 두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말을 이끌어대고, 해학을 잘 하는 자는 반드시 《시경》에 있는 ‘해학을 잘하도다.’라는 말을 끌어대고, 여색을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대학》에 있는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하듯 하라.’는 말을 끌어대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공자는 술을 마시되 양을 미리 정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끌어대고, 재리(財利)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자공(子貢)의 화식(貨殖, 공자의제자인 자공이 재력가로 재물을 증식하는 일에 능했음을 이르는 ..

교만과 망령됨을 경계하다

얼굴을 곱게 꾸미고 모양을 아양스럽게 굴면 비록 장부(사내)라도 부인(여인네)보다 못하며, 기색을 평온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면 비록 미천한 하인배라도 군자가 될 수 있다. 글을 읽으면서 속된 말을 하는 것은 닭과 개를 대하여도 부끄러운 일이요, 손(客, 손님)을 보내 놓고 시비를 논하는 것(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이러쿵저러쿵 뒷담화 하는 것)은 아마 귀신도 가증스럽게 여길 것이며, 말이 경솔하면 비록 재상의 지위에 있어도 노예나 다름 없고 걸음걸이가 방정맞으면 비록 나이 많은 늙은이라도 아이들보다 못하다. 내가 일찍이 이 말을 동쪽 벽에 붙여 놓고 그 끝 부분에 ‘명숙(明叔 이덕무의 자(字))이 명숙의 서실(書室)에 이 글을 썼는데 명숙이 어찌 명숙을 속이겠는가?’ 라고 덧붙였으니, 이는 깊이 경계..

스스로의 경계를 삼다

선비는 마음 밝히기를 거울같이 해야 하고 몸 규제하기를 먹줄같이 해야한다. 거울은 닦지 않으면 먼지가 끼기 쉽고 먹줄이 바르지 않으면 나무가 굽기 쉽듯이, 마음을 밝히지 않으면 사욕이 절로 가리우고 몸을 규제하지 않으면 게으름이 절로 생기므로 마음과 몸을 다스리는 데도 마땅히 거울처럼 닦아야 하고 먹줄처럼 곧게 해야 한다. 마음[虛靈不昧]이란 서쪽으로 유도하면 서쪽으로 쏠리고 동쪽으로 유도하면 동쪽으로 쏠리며, 이(利)로 향하면 이에 따르고 의(義)로 향하면 의에 따르므로, 쏠리고 따르는 데에 반드시 그 시작을 삼가야 한다. 물건이 적중하면 저울대가 반듯하고 물건이 적중하지 못하면 저울대가 기울며, 돛이 순풍을 만나면 배가 가고 돛이 순풍을 만나지 못하면 배가 가로선다, 반듯하고 기울며 가고 가로서게 되..

마땅히 배워야 할 것을 배워야 한다 (學說 학설)

하늘이 우리에게 귀ㆍ눈ㆍ입ㆍ코ㆍ사지(四肢)ㆍ백해(百骸)를 준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그 받은 것을 마땅히 어떻게 하여야 할까? 귀는 마땅히 들어야 할 것을 듣고, 눈은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고, 입은 마땅히 말해야 할 것을 말하고, 코는 마땅히 냄새 맡아야 할 것을 맡고, 사지나 백해는 모두 마땅히 동(動)하고 정(靜)하여야 할 데에 동하고 정하여야 한다. 마땅함이란 당연함이니 의(宜, 마땅할 의)를 말한다. 천리(天理)를 잃지 않는 것을 의(宜)라고 하니 우리가 하늘에서 받은 것이 또한 어찌 우연이겠는가? 듣고, 보고, 말하고, 냄새 맡고, 움직이고, 고요함에 만일 불행하게도 그 마땅함을 잃는다면 이는 천리를 잃음이니, 이미 천리를 잃었다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고서 어찌 마음에 두렵고 부끄럽..

시의 근본

진실한 기쁨과 진실한 슬픔이 진실한 시를 만든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우는데, 울기를 그치면 웃는다. 여기에는 어떠한 허위도 없는데, 그 까닭은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시의 근본이다. 동자가 두세 살이 되어서는, 밥을 많이 주면 웃고, 밥을 적게 주면 운다. 느끼는 대로 기쁨과 슬픔이 일어나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이것이 시의 기미(幾微, 낌새, 우러나와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이다. 아이가 성장해서는, 귀인(貴人)에게 아첨하여 환심 사기에 애쓰고,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도 슬픈 척 조문한다. 이것이 시의 허위(虛僞)이다. 천하에는 슬픔이나 기쁨이 없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시를 짓지 못할 사람이 없으련만, 오히려 그러한 사람(시를 짓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부형(父兄)..

어린 두 누이에게 주는 교훈 (妹訓)

나에게 두 누이가 있는데 다 비녀(笄) 꽂을 나이가 되었다. 어려서 들은 바가 없으면 장성함에 이르러 경계하기 어려우므로, 이 글을 지어 훈계하는 바이다. 무릇 16장(章)이다. 여자의 덕은 화순(和順 온화하고 순함)으로 규칙을 삼으며, 언어와 걸음걸이로부터 음식에 이르기까지 한 마음으로 하여 게으르지 않는 것이 그 직분이다. 기운을 가라앉히고 목소리를 낮추어 중정(中正)으로써 재제하며 조용히 행동하여 처사와 마음이 서로 부합되어야 이것이 길상(吉祥)이 되어 모든 복이 다 이른다. 비루하고 어긋난 말은 귀를 가리고 듣지 말며 장로(長老)의 훈계는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익히면 몸도 따라서 편안하게 된다. 선한 말이나 악한 말이 다 입에서 나온다. 한 번 악한 말을 내게 되면 후회한들 누..

간서치전 (看書痴傳): 책만 보는 바보 이야기

목멱산(木覓山 남산의 별칭) 아래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살았는데, 어눌(語訥)하여 말을 잘하지 못하였으며, 성격이 졸렬하고 게을러 시무(時務)를 알지 못하고, 바둑이나 장기는 더욱 알지 못하였다. 남들이 욕을 하여도 변명하지 않고, 칭찬을 하여도 자긍(自矜)하지 않고 오직 책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아 추위나 더위나 배고픔을 전연 알지 못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21세가 되기까지 일찍이 하루도 고서(古書)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그의 방은 매우 적었다. 그러나 동창ㆍ남창ㆍ서창이 있어 동쪽 서쪽으로 해를 따라 밝은 데에서 책을 보았다. 보지 못한 책을 보면 문득 기뻐서 웃으니, 집안 사람들은 그의 웃음을 보면 기이한 책[奇書]을 구한 것을 알았다. 자미(子美 두보(杜甫)의 자)의 오언율시(五言律詩)를 더..

내가 나를 친구로 삼는다

쇠똥구리는 스스로 쇠똥굴리기를 즐겨하여 여룡(驪龍)의 여의주(如意珠)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룡도 여의주를 가졌다는 것을 스스로 뽐내어 저 쇠똥구리가 쇠똥굴리는 것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어옹(漁翁)이 긴 낚싯대에 가는 낚싯줄을 거울 같은 물에 드리우고 말도 않고 웃지도 않으면서 간들거리는 낚싯대와 낚싯줄에만 마음을 붙이고 있을 때는, 빠른 우뢰소리가 산을 부수어도 들리지 않고 날씬한 아름다운 여인이 한들한들 춤을 추어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달마대사(達磨大師)가 벽을 향해 앉아 참선할 때와 같다. 용모에 은연중 맑은 물이나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은 바야흐로 함께 고아한 운치를 얘기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그의 마음에는 돈을 탐하는 속태(俗態)가 없다. 만약 내가 지기(知己)를 얻는다면 이렇게 ..

깊이 알지도 못하고서 억지로 말할 수는 없다

일이 순조로운 환경 속에서 이루어짐이 좋다는 것은, 아첨하고 연약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첨하고 연약한 것이 어찌 순조로운 환경이겠는가. 이는 도리어 역경인 것이다. 재주 있고 경박한 사람은 기교(機巧)를 부림이 간사하고 천박하며, 어리석고 둔한 사람은 기교를 부림이 간휼(간사하고 음흉함)하고 노골적이기 때문에, 군자들의 안목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 중에 혹 간사하면서도 음침하거나 간휼하면서도 비밀스러우면, 이런 사람은 못할 짓이 없는 것이다. 아아, 고금에 기교 부리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는지. 봄철의 우는 새 소리는 화평하고 가을철의 벌레 소리는 처절한데, 이는 절후(節候)의 기운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당우(唐虞, 중국고대의 요, 순시대) 적의 글은 혼호(渾灝 뒤섞일 혼, 넓을 호, ..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면서 어찌 안다고 할수 있는가?

도(道)란 지극히 간단하고도 가까운 것이다. 멀리 있는게 아니라 사람의 일상생활 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마당에 물뿌리고 빗자루질을 하는 것과 사람의 부름이나 물음에 대꾸하고 응답하는 방식만큼 간단한 것이 없고, 부모를 사랑과 존경으로 가까이 대하는 것과 윗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도(道)만큼 가까운 것이 없다. 그런데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자들이 대부분 이것을 버리고 높고 큰 것만을 엿본다. 그래서 기본적인 것을 살피는 대신에 먼저 하늘의 도리(天道) 운운하고, 세상사의 이치(易理))를 논하려 한다. 등급을 뛰어 넘고 우선순위를 따르지 않는 폐단이 이러하다. 사람사이에 지켜야할 예와 도리(人道)를 모르는데, 어떻게 하늘의 도리와 이치(天道)를 알겠는가? 사람으로써 마땅히 지켜야할 이치(人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