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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조명풍(釣名諷 )

고기 낚는 것은 고기먹는 이득이 있지만 이름을 낚아서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이름이란 곧 그 대상의 실체이니 주체가 있으면 실체는 스스로 이르는 법. 실체 없이 헛이름만 누린다면 결국은 그 몸에 더러운 껍데기만 가득 쌓일 뿐이라네 용백(龍伯)은 여섯 마리 큰 자라 낚았는데 그가 낚은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고, 강태공이 문왕을 낚을 때에는 원래 그 낚시엔 미끼라곤 없었다네 그러나 이름 낚기는 이와 달라 한때의 요행수 일뿐이라네. 마치 추한 여자가 분짙게 발라 화장하고 꾸며서 잠깐 이쁜 것처럼, 화장이 지워지면 결국 추한 민낯이 드러나 보는 사람이 마침내 질겁하고 피함과 같다네 이름을 낚아 어진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어느 시대인들 안영(顔子)같은 어진 현인이 왜 없으랴! 이름을 낚아 선하고 훌륭한 벼슬아..

[고전산문] 흰구름을 사모하여

(상략) 어떤 이는 나를 초당선생(草堂先生)이라고 지목을 하지마는, 나는 두자미((杜子美), 두보)가 초당선생(草堂先生)이기 때문에 양보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욱이 나의 초당(草堂)은 잠깐 우거한 곳일 뿐이요, 살 곳으로 정한 데가 아니니, 우거한 곳을 가지고 호(號)로 삼자면, 그 호가 또한 많지 않겠는가. 평생에 오직 거문고와 시와 술을 심히 좋아하였으므로, 처음에는 나대로 호(號)를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거문고 타는 것도 정밀하지 못하고 시를 짓는 데도 공부가 미흡하고, 술도 많이 마시지 못하니, 이 호를 만약 그대로 가진다면, 세상에서 듣는 사람들이 크게 웃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것을 고쳐 백운거사(白雲居士)라고 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자네가 장차 청산에 들어가..

[고전산문] 돌(石)의 비웃음에 답하다

커다란 돌이 나에게 묻기를, “나는 하늘이 낳은 것으로 땅 위에 있으니, 안전하기는 엎어놓은 동이와 같고 견고하기는 깊이 박힌 뿌리와 같아, 물(物, 물질이나 재물같은 외적인 것 또는 외면적인 것)이나 사람으로 인하여 이동되지 않아서 그 천성을 보전하고 있으니 참으로 즐겁다. 자네도 역시 하늘의 명을 받아 태어나서 사람이 되었으니, 사람은 진실로 만물 중에서 신령한 것인데, 어찌 그 몸과 마음을 자유 자재하지 못하고 항상 물(物)에게 부림받는 바가 되고 사람에게 끌린 바가 되어, 물(物)이 혹 유혹하면 거기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물(物)이 혹 오지 않으면 우울하여 즐거워하지 않으며, 사람이 좋아하면 지기를 펴고 사람이 배척하면 지기가 꺾이니, 본래의 진상을 잃고 특별한 지조가 없기로는 자네와 같은 것..

[고전산문] 시와 문장은 뜻이 중심이다

대저 시(詩)는 뜻(意)으로 주(主)를 삼는 것이니, 뜻을 베푸는 것이 가장 어렵고, 말을 만드는 것이 그 다음 어렵다. 뜻은 또 기(氣, 정서情緖와 서정抒情의 바탕을 이루는 기운)로 주를 삼는 것이니, 기(氣)의 우열에 따라 천심(淺深, 얕음과 깊음)이 있게 된다. 그러나 기(氣)는 하늘에 근본한 것이니, 배워서 얻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氣)가 졸렬한 사람은 문장을 수식하는 데에 공을 들이게 되어, 일찍이 뜻으로 우선을 삼지 않는다. 대개 문장을 다듬고 문구를 수식하니 그 글은 참으로 화려할 것이다. 그러나 속에 함축된 심후한 뜻이 없으면, 처음에는 꽤 볼 만하지만, 재차 음미할 때에는 벌써 그 맛이 없어지고 만다. 그러나 시를 지을 때에 먼저 낸 운자(韻字)가 뜻을 해칠 것 같으면 운자를 고쳐내..

[고전산문] 게으름 병

내가 게으른 병이 있어서 이것을 객(客)에게 알리기를, “이렇게 바쁜 세상에 나는 게으름뱅이로 작은 몸 하나도 제대로 지탱해 나가지 못하며, 집이라고 하나 있는데도 게을러서 풀도 매지 아니하고, 책이 천 권이나 있는데 좀이 생겨도 게을러서 펴보지 아니하며, 머리가 헝클어져도 게을러서 빗지 아니하며, 몸에 병이 있어도 게을러서 치료하지 아니하며, 남과 더불어 사귀는데도 게을러서 담소하며 노는 일이 적으며, 사람들과 서로 왕래하는데도 게을러서 그 왕래가 적으며, 또 입은 말을 게을리하고, 발은 걸음을 게을리하며, 눈은 보는 것을 게을리하여, 땅을 밟든지 일을 당하든지 간에 무엇에든지 게으르지 않는 것이 없는데, 이런 병을 무슨 재주로 낫게 하겠는가?” 하고 말을 하니, 객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물러가더니..

[고전산문]슬견설(虱犬說): 한쪽으로만 치우친 감정에 대하여

어떤 손이 나에게 말하기를, “어제 저녁에 어떤 불량자가 큰 몽둥이로 돌아다니는 개를 쳐 죽이는 것을 보았는데, 그 광경이 너무 비참하여 아픈 마음을 금할 수 없었네. 그래서 이제부터는 맹세코 개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네.” 하기에, 내가 대응하기를, “어제 어떤 사람이 불이 이글이글한 화로를 끼고 이[虱]를 잡아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나는 아픈 마음을 금할 수 없었네. 그래서 맹세코 다시는 이를 잡지 않을 것이네.” 하였더니, 손은 실망한 태도로 말하기를, “이는 미물이 아닌가? 내가 큰 물건이 죽는 것을 보고 비참한 생각이 들기에 말한 것인데, 그대가 이런 것으로 대응하니 이는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닌가?” 하기에, 나는 말하기를, “무릇 혈기가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ㆍ말ㆍ돼지ㆍ양ㆍ곤충ㆍ개미..

[고전산문]미친 듯이 보이나 그 뜻이 바른 것

세상 사람들이 다 거사(居士)를 미쳤다고 하나, 거사는 미친 것이 아니요, 아마 거사를 미쳤다고 말하는 자가 더 심하게 미친 자일 것이다. 그 자들이 거사의 미친 짓 하는 것을 보았는가? 또는 들었는가? 거사가 미친 것을 보고 들었으면 어떠하던가? 알몸에 맨발로 물이나 불에 뛰어들던가? 이가 으스러지고 입술에서 피가 나도록 모래와 돌을 깨물어 씹던가? 하늘을 쳐다보고 욕을 하던가? 땅을 발로 굴려 제끼며 꾸짖던가. 산발머리를 하고 울부짖던가? 잠방이를 벗고 뛰어 다니던가? 겨울에 추위를 모르며, 여름에 더위를 모르던가. 바람을 잡으려 하고, 달을 붙들려 하던가? 이런 일이 있으면, 미쳤다 하겠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어찌 미쳤다 하느냐? 아, 세상 사람은 한가하게 지낼 때에는 용모와 언어, 의복 차림이 사..

[고전산문] 이상한 관상장이의 안목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어떤 관상장이가 있었는데, 그는 상서(相書)를 읽거나, 상규(相規)를 따르지도 않고서 이상한 상술로 관상하였다. 그래서 이상자(異相者)라 하였다. 점잖은 사람, 높은 벼슬아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앞을 다투어서 초빙도 하고 찾아도 가서 상을 보았다. 그 관상장이는 부귀하여 몸이 비대하고 윤택한 사람을 관상하면서는, “당신 용모가 매우 수척하니 당신처럼 천한 족속이 없겠습니다.” 하고, 빈천하여 몸이 파리한 사람을 관상하면서는, “당신 용모가 비대하니 당신처럼 귀한 족속은 드물겠소.” 하고, 장님을 관상하면서는, “눈이 밝겠소.”하고, 달음질을 잘하는 사람을 관상하면서는, “절름발이라 걷지 못하는 상이오.” 하고, 얼굴이 잘생긴 부인을 관상하면서는, “아름답기도 하고 추..

[고전산문]방선부(放蟬賦): 거미줄에 걸린 매미를 풀어 준 까닭

저 교활한 거미는 그 종류가 아주 많구나. 누가 너에게 교활한 재주 길러 주어 그물 만들 실로 둥근 배를 채웠는가. 어떤 매미가 거미줄에 걸려 처량한 소리를 지르길래 내가 차마 듣다 못하여 놓아 주어 날아가도록 했더니 옆에 서 있던 어떤 자가 나를 나무라면서, “오직 이 두 미물(微物)은 다 같이 하찮은 벌레들인데 거미가 자네에게 무슨 손해가 있으며 매미는 자네에게 무슨 유익이 있기에 오직 매미만 살리고 거미는 그만 굶겨 죽이려 하느냐? 이 매미는 자네를 고맙게 여길지라도 저 거미는 반드시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다. 매미를 놓아 보낸 것에 대해서 누구든 자네를 지혜롭다 하겠는가?”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이마를 찡그리고 대답조차 하지 않다가 얼마 후에 한마디의 말로써 그의 의아심을 풀어주되,..

[고전산문] 진정 두려워해야 하는 것

어떤 독관 처사(獨觀處士)란 분이 집에만 들어앉아 사는데 늘 무슨 두려움이 있는 듯이 자기 모습을 돌아보고 두려워하며, 그림자를 돌아보고 두려워하고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모조리 두려워한다. 충묵 선생(沖黙先生)이 그에게 찾아가 그런 이유를 물었다. 처사(處士)는 대답하기를, “이 넓은 천지에서 무슨 동물인들 두려움이 없겠느냐? 뿔 달린 놈, 이 [齒] 가진 놈, 날짐승, 길짐승, 굼틀거리기도 하고 법석대기도 하는 온갖 동물들이 한없이 많은데 모두 제 생명을 아껴 자기 유(類)가 아닌 것을 보면 다들 두려워한다. 새는 하늘에서 매를, 물고기는 물에서 물개를, 토끼는 사냥개를, 이리는 물소를, 사슴은 담비를, 뱀은 돼지를 두려워하고 가장 사나운 호랑이와 표범도 사자를 만나면 피해 도망친다. 왜 이런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