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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가 되기로 맹세하다

벙어리가 되기로 맹세하다〔誓瘖〕 무명자(無名子)는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어두워 아는 지식이 없고 도모하는 일도 없으니, 천하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말을 하면, 그 말을 반드시 실천할 수 없어 한갓 일에 방해가 되고 화합만 잃을 뿐이다. 그러므로 묻고 답하는 것과 나에게 절실하여 말을 하지 않아선 안 될 경우가 아니면 맹세코 다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아 치롱(癡聾, 어리석고 귀먹은 사람)의 본색을 잃지 않기를 바라노라. 또 혹 손님이 왔을 때, 인사를 주고받고는 곧 입을 닫고 가만히 있으면 내가 그를 무시한다고 여길 것이므로, 전혀 관계가 없는 쓸데없는 말을 뽑아서 주고받는 말을 대비하고, 그 밖에는 조용히 앉아 책을 보면서,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기한(飢寒, 배고픔과 추위)을 참을 뿐이..

이 세상에 후회없는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후회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후회스러운 줄을 알아서 진정으로 뉘우치는 사람은 드물고, 후회스러운 줄을 알아서 뉘우친 다음 잘못을 고칠 줄 아는 사람은 더 드물고, 잘못을 고친 다음 전에 뉘우쳤던 일을 다시는 뉘우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뉘우치기만 하고 고치지 않으면 그 많은 일을 다 뉘우칠 수 없어서 후회스러운 일을 뉘우칠 것 없다고 생각하게 되므로 도리어 뉘우칠 줄 모르는 것보다 못하다. 뉘우칠 줄 모르면 자책(自責)이라도 없지 않은가? 고치고 나서 또 뉘우치면 그 많은 일을 다 고칠 수 없어서 고쳐야 할 일을 고칠 것 없다고 생각하게 되므로 이는 또 고칠 줄 모르는 것보다 못하다. 고칠 줄 모르면 무심(無心)할 수라도 있지 않은가? 이런 사람은 후회만 하다가 끝난다..

민적(民賊): 진짜 큰 도적은 백성의 도적

당(唐)나라의 이섭(李涉)은 구강(九江)을 지나다가 도적을 만나자 시를 지어주기를, "지금 세상 태반은 그대 같은 자라오(世上如今半是君)" 라고 하였다. 이는 세상 사람 중에 도적이 아니면서 도적인 자가 많음을 이른 것이다. 북위(北魏)의 이부 상서(吏部尙書) 원수의(元修義)가 관직의 대소에 따라 가격을 정해놓았는데, 고거(高居)가 상당군(上黨郡)의 태수 자리를 원했으나 얻지 못하자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하늘을 향해 부르짖으며 “도적이야!”라고 외쳤다. 사람들이 묻기를,“백주 공당(公堂)에 무슨 도적이 있다는 말입니까?” 라고 하자, 고거는 원수의를 가리키며, “뇌물을 많이 준 자가 관직을 얻으니, 경사(京師)에서 대놓고 약탈하는 것이 큰 도적이 아닙니까.” 라고 하였다. 이는 뇌물을 받는 관원이 도적..

이설(利說):사람의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는 그 속마음을 알 수 없다

똥을 푸는 자는 그 악취를 싫어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익을 도모하기 때문에 참는 것이며,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아첨하는 자는 그 교만을 싫어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익을 바라기 때문에 감수하는 것이다. 지금 신분이 높은 자에게 아첨하는 것을 보고 치욕스러워하지 않는 것을 비루하게 여긴다면, 이는 똥을 푸는 자를 보고 악취를 모르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모셔 받드느라 분주한 것은 사랑해서가 아니며, 멀리하고 배척하여 관계를 끊는 것은 미워해서가 아니다. 옳다고 하거나 칭찬하는 것은 흠모해서가 아니며, 그르다고 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원망해서가 아니다. 이는 모두 이익이 되는지를 보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설령(雪嶺)이나 묵지(墨池)*는 진경(眞景)이 아니며, 어깨를 곧추세우고 아첨하거나 팔..

무익한 일을 하여 유익함을 해치는 행위를 경계한다

《서경(書經)》에 이런 말이 있다. “무익한 일을 하여 유익함을 해치지 말라.〔不作無益害有益〕” 무익한 일을 하면 무익할 뿐만 아니라 그 폐단이 반드시 해로운 데에 이르므로 성현이 주의를 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유리함과 불리함을 가지고 한 말이 아니다. 요즘 사람들은 유리함과 불리함을 명확히 구분하여 한 마디 말, 한 가지 행동이라도 자기한테 유리하면 하고 불리하면 하지 않는다. 또 다른 사람이 남에게 충성하는 것을 보면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비아냥거리고 자기 자신을 위한 꾀가 약빠르지 않으면 허술한 사람이라고 비웃는다. 사람들이 이러한 태도를 서로 본받고 거울삼아서 이제는 풍속이 되어 버렸으니, 하찮은 것까지 세세히 따지며 이익을 꾀하는 세태가 요즘보다 더한 적이 없다. 요즘 사람들이 ‘무익한 일을 ..

지헤로운 여인의 뛰어난 식견과 고결한 안목

당나라 *적인걸(狄仁傑)이 이모(姨母) 노씨(盧氏)를 방문하니, 그 표제(表弟 이종제, 이종사촌동생)가 활과 화살을 끼고 꿩과 토끼를 들고 돌아오고 있었다. 적인걸이 “내가 재상이 되었으니, 아우를 관직에 보임시키려고 하오.”라고 하자, 노씨가 “늙은 몸에 자식 하나만 있으니, 빈천을 달게 여길지언정 여주(女主, 당나라 측천무후를 가르킴)를 섬기고 싶지 않네.”라고 대답하여 적인걸이 크게 부끄러워하였다. 위(魏)나라 *부승조(苻承祖)가 권세를 잡자 친인척들이 달라붙었는데, 종모(從母, 어머니 쪽 여자 형제, 즉 이모) 양씨(楊氏)가 부승조의 어미에게 말하기를 “언니가 비록 한 때의 영광을 얻었지만 제가 근심 없는 즐거움을 누림만 못합니다.”라고 하면서 옷을 주어도 받지 않고 간혹 받으면 묻어 버렸으며, ..

세상의 언론이 공정하지 못하면

세상에 공정한 언론이 없어서 비난과 명성, 거짓과 진실이 모두 뒤집히고 어그러졌다. 이른바 시시비비(是是非非. 여러 가지의 잘잘못.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공정하게 판단하는 것)란 것이 자신의 애증(愛憎 사랑과 미움)을 따른 것이 아니라면 바로 권세의 유무를 따를 뿐이다. 여기 어떤 일이 있다고 치자. 그 옳고 그름이란 흑백(黑白)처럼 분변하기 쉬울 뿐만이 아닌데도, 시비를 판정하는 자들은 매양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은 옳다고 한다. 마음속으로는 진실을 알면서도 명백히 판별하려 하지 않는 자도 있고, 내 편 네 편에 따라 후박(厚薄 너그럽거나 까다롭고 쌀쌀함)을 달리하여 고의적으로 돕거나 돕지 않는 자도 있으며, 마음속에 주관이 없이 남의 말만 믿는 자도 있고, 선입견을 고수하여 자..

사람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일에 대하여

(상략)사람을 관찰하고 평하는 일은☞ 중도(中道)에 맞게 하기가 매우 어려우니, 사람들이 좋게 평하더라도 반드시 직접 관찰하고 사람들이 나쁘게 평하더라도 반드시 직접 관찰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사심(私心)에 따라 호평과 악평을 일삼는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간혹 스스로는 공평한 지론을 편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남이 보기에는 적절치 않은 경우가 많으니, 대체(大體)만 거론하고 사소한 점을 간과하는 경우는 그래도 괜찮지만, 자잘한 흠을 비난하면서 전체적으로 훌륭한 점을 무시하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일일세. 이 때문에 옛 성현들은 사람을 평할 적에 대체를 보는 데서 그치지 않았으니, 비록 전체적으로 칭찬할 만한 점이 없다 하더라도 사소한 장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드러내어 칭찬해 주었네. 예컨대,..

사람이 금수(짐승)만도 못하게 된 것은

순경(荀卿 순자)은 말하기를, “물이나 불은 기(氣)는 있으나 생명이 없고, 초목은 생명은 있으나 지각이 없으며, 금수는 지각은 있으나 의리가 없다. 사람은 기도 있고 생명도 있으며 지각도 있고 의리도 있으니, 천하에서 가장 귀한 존재이다.” 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예기(禮記)》에서, “하늘이 낸 것과 땅이 기른 것 중에 사람이 가장 위대하다.” “사람은 천지의 공덕이며 오행의 빼어난 기운이다.” 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진실로 금수의 부류가 아니다. 그러나 어리석고 불초(不肖)한 사람 중에는 오히려 금수만 못한 사람이 있다. 그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란 뒤에 어미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주는 까마귀만 못한 점이 있다. 임금에게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여왕벌을 에워싸고 나는 벌 ..

나보다 더한 사람도 버티고 살아가는데

빈천할 때는 반드시 나보다 심한 사람을 생각하여 그보다는 나음을 다행으로 여겨야지, 나보다 나은 사람을 부러워하여 그보다 못함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 된다.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반드시 분수에 넘친 생각을 하게 되고, 분수에 넘친 생각을 하면 반드시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 대광주리에다 거친 밥 먹고 표주박으로 맹물을 떠 마시며 쌀알이 없는 멀건 나물국으로 끼니를 때우게 되면 사람들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그보다 심한 경우는 아궁이에 연기가 나지 않고 이틀에 한 번꼴로 밥을 먹기도 하며, 더 심한 경우는 굶주림에 지쳐 팔을 힘없이 늘어뜨리고 눈동자에 정기가 없이 헤매다가 밥을 세 번 삼킨 뒤에야 사물을 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굶어 죽기 전에는 반드시 나보다 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