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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남을 아는 것은 자기를 얼마만큼 아느냐에 좌우된다

자신을 아는 것의 천심주편(淺深周偏 얕고 깊음, 두루 넓거나 치우침)은 마땅히 남을 아는 것의 천심주편으로 그 우열(優劣)을 결정하여야 한다. 남을 아는 것이 깊은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아는 것도 깊고, 남을 아는 것이 얕은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아는 것도 얕으며, 두루하고 치우침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을 안다고 하는 것이 어찌 자기의 사정(事情)만 알고 남의 사정을 모르는 것이랴! 자기를 다하고(盡己 진기) 사물까지 다한(盡物 진물)뒤에야 바야흐로 자신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니, 만일 능히 남을 아는 도(道)를 다하지도 못하면서 문득 자신을 밝게 안다 하는 사람은 반드시 식견이 천박하고 치우친 사람이다. 능히 남을 아는 도(道)를 다하는 사람은, 혹 자신을 아는 것에 다하지 못한 것이 있..

[고전산문] 옳고 그름은 바른데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하늘을 이어받아 이루어진 것이 인간의 본성(性)이고, 이 본성을 따라 익히는 것이 미룸(推)이며, 미룬 것으로 바르게 재는 것이 헤아림(測)이다. 미룸과 헤아림은 예부터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말미암는 대도(大道)다. 그러므로 미룸이 올바르면 헤아림에 방법이 생기고 미룸이 올바르지 못하면 헤아림도 올바르지 못하다. 올바름을 잃은 곳에서는 미룸을 바꾸어 헤아림을 고치고 올바름을 얻는 곳에서는 원위(源委 근본과 말단)를 밝혀서 중정(中正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고 치우침이 없이 곧고 올바름)의 표준을 세울 것이다. 이에 지나치면 허망(虛妄, 거짓이 많고 근거가 없이 허무한 상태)에 돌아가고, 이에 미치지 못하면 비색(鄙塞, 속되고 천한 상태에 갇혀 버림)에 빠진다.(☞추측록 서) 악을 헤아림(測惡) 악한 말을 쉽..

[고전산문] 좋아하고 미워함을 진실되게 하라

좋아할 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일에 유익하기 때문이니 좋아하지 아니하면서 등용하면 반드시 일을 해치게 되고, 미워할 만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일에 해롭기 때문이니 미워하지 않으면서 물리쳐 내치면 반드시 일을 해치게 된다. 지위가 있는 사람은 직임(職任)으로 일(事)을 삼고, 직위가 없는 선비는 도학으로 일을 삼고, 범민(凡民)은 농업이나 공업이나 상업으로 일을 삼는다. 그러나 일용상행(日用常行, 일상적인 삶의 행위)이나 사람을 기다려서 성사할 수 있는 것(인간관계)에 이르러서는 귀천과 노소할 것 없이 모두 여기에 종사하는 것이니, 일(각자의 삶과 연관된 이해관계)에 따라 좋아하고 미워함은 절로 법칙이 있다. 사람의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은 각각 같지 않으니, 진실한 것을 숭상하는 사람은 진실한 것을 ..

[고전산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물리(物理)에 순응하여 법칙을 따르는 자는 적고, 언제나 자기 소견을 가지고 조작하여 그림자를 참모습으로, 껍데기를 실질로 아는 자가 많다. 그리하여 얻은 것이 잃은 것을 보상하지 못하고 말이 고상하고 난해할수록 도(道)는 더욱 천해져 고집스럽게 변쟁(辯爭)해도 결론이 정해지지 않으니, 어찌 그 근본에 돌아가 그 도를 세우겠는가?" (최한기, 기측체의/추측록서) 본원(本源)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본원(本源, 사물이나 일따위의 근원)을 확실하게 알면 그것을 고금(옛날이나 지금이나)에 물어도 의심이 없고 천하에 증험해도 어긋남이 없으며, 이것을 구명(究明,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이나 원인 따위를 깊이 따지고 연구하여 밝힘)하면 선에 지나치는 것을 찾으려 해도 그 지나침을 볼 수 없고 또한 부족한 점을 찾으..

[고전산문] 사람의 도리(人道)를 모른다면 사람을 헤아릴 수 없다

인모(人貌)ㆍ인기(人氣)ㆍ인심(人心)ㆍ인사(人事)를 통틀어 인도(人道)라 한다. 용모가 비록 귀하게 생겼으나 인도를 모르면 참으로 귀한 용모가 아니며, 품기(稟氣)가 비록 좋으나 인도를 행하지 않으면 참으로 좋은 품기가 아니며, 심법(心法)이 비록 선하나 인도에 통창(通暢, 조리가 밝아 환함)하지 못하면 심법이 선하다고 하기에 부족하며, 행사(行事)가 비록 아름다우나 인도가 갖추어지지 못했으면 어떻게 아름다운 일이라 하겠는가? 용모ㆍ품기ㆍ심법ㆍ행사가 혹시 부족하고 빠진 점이 있더라도 여유가 있는 점은 남에게 보태주고 부족한 점은 남에게 의뢰하면서 인도를 밝히고 인도를 행하여 남이 그의 결함을 모르게 해야 한다. 더군다나 결함이 없을 수 없는 보통 사람이겠는가? 귀(貴, 귀할 귀)는 인도의 귀를 얻는 것보..

[고전산문] 앎에 방해되는 것을 제거해야 지혜의 문을 열 수 있다

세상에서 늘 쓰는 것인데도 모르는 것을 밝히는 데에는 말이 어쩔 수 없이 많고 상세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평소에 행하는 것인데도 어두운 것을 깨우치는 데에는 가르침이 자연 간절하고 깊어야 한다. 정묵(靜黙, 아무말없이 조용하게 있음)을 지켜 남이 알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남이 익히 아는 것에 대하여 말하면 이익은 없고 손해만 있기 때문이다. 겸양(謙讓, 겸손한 태도로 남에게 양보하거나 배려하여 사양함)하여 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는 것은 공(功)을 자랑하고 다투어 취하면 남의 시기를 받기가 쉽기 때문이다.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잠자는 사람이 꿈꿀 것을 생각한 적이 없어도 꿈이 생기는 것은 잤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술마시는 사람이 취할 것을 생각한 적이 없어도 취하..

[고전산문] 선이든 악이든 마음에 얻은 것이 심덕(心德)이다

심덕(心德)이란 마음의 얻은 것을 말한다. 선(善)에 노력하기를 오래하면 선을 얻게 되고 악(惡)에 젖기를 오래하면 악을 얻게 되니, 선과 악이 비록 다르지만 다같이 심덕(心德)이라 할 수 있다. 성실과 거짓은 바로 학문의 허실(虛實)을 말하며, 순수하고 잡박(雜駁)한 것은 바로 조예(造詣)의 우열(優劣)을 말한 것이다. 누군들 성실은 좋고 허위는 나쁘다는 사실을 모를까마는, 허위에 빠진 사람은 성실이 크게 쓰이는 것을 모르고 혹은 신이(神異)함만을 탐구하거나 혹은 고혹(蠱惑)에만 빠져들어, 자기가 이미 거짓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성실한 사람은 허위(虛僞)란 대단히 좋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서 성실의 유용함을 독실히 지켜 간다. 조예가 순수한가 잡박한가 하는 문제도 대개 이와 같다...

[고전산문] 희로애락이 바른 사람은 그 성품(性)도 바르다

이른바 본연의 성(性)이라는 것은 그 형질(形質)이 이루어지기 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형질이 갖춰진 뒤에도 항상 그 본연의 성(性)이 있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천지 인물(天地人物)이 다같이 얻는 것으로 기(氣)에 의지하여 존재하게 된 것이다. 사람과 만물의 형질이 갖추어지기 전에는 곧 천지의 이기(理氣)였다가, 그 형질이 이루어진 뒤에야 기(氣)는 질(質)이 되고 이(理)는 성(性)이 되며, 또 그 형질이 없어지게 되면 질은 기(氣)로 돌아가고 성(性)은 이(理)로 돌아가는 것이다. 천지에 있어서는 기(氣)와 이(理)라 하고, 사람과 만물에 있어서는 형(形)과 성(性)이라 한다. 그러니 만일 사람과 만물의 형(形)이 없다면, 무엇으로 그 성(性)을 논할 수 있겠는가.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

[고전산문] 사람을 헤아리는 일에 대하여

무사시(無事時, 특별하고 긴박한 일이 없는 일상적인 상황)에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 유사시(有事時)에 사람을 논하는 것과 같지 않으며, 사전에 사람을 논하는 것이 사후에 사람을 논하는 것과 다름이 있다. 무사시에는 다만 용모와 신기(神氣)*로써 품격(品格)을 논설, 장래의 부귀를 들어 기쁘게 하기도 하고 혹은 기대를 걸게 하여 빈천을 면하도록 하며, 혹 격려하여 권장하기도 하고 혹 징계하는 뜻도 있다. 유사시에는 감당할 만한 재기(才器)와 거행할 수 있는 기량(氣量)으로써 원근과 내외(內外)에 방문하고 귀천과 상하에 조사하여, 평소의 심법 행사(心法行事, 마음씀씀이 그리고 실천하고 행하여 드러난 일)와 인물 교접(人物交接, 사람을 대하고 사귀는 태도)을 근거로 삼고, 용모의 귀천 호오(貴賤好惡)와 사기 언..

[고전산문] 사람이 속임을 당하는 것은 그가 바라는 것에 있다

속이고 싶으나 속이기가 어려운 사람은 반드시 그가 하고 싶어하는 점을 이용해서 속일 수 있는 방법을 쓰기 마련이다. 만일 속여야 할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제아무리 감언(甘言 남의 비위에 맞도록 듣기 좋게 꾸미어 하는 말)ㆍ선사(善辭, 선하고 좋게 표현된 말과 글)를 가지고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평소 사리에 명백하여 비도(非道)로는 속이기 어려운 사람도, 반드시 자신의 하고 싶어하는 그 단서로 인하여 남에게 속임을 당하게 되지만, 혹은 그 속임을 당함으로 인하여 더욱 깨닫는 바가 있기도 한다. 속임을 당할 만한 일로 속임을 당하는 것은 대인(大人)으로서도 면할 수 없는 일이라 어찌 족히 누(累)가 되겠는가마는, 만일 속임을 당해서는 아니될 일로 속임을 당하면 이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