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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생사의 기로에 서면 사람의 진정이 드러나는 법

공자께서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不知言 無以知人).”라고 하셨다. 말은 능히 허위와 가식으로 남을 속일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아는 것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오직 이치에 절충하고 성인(聖人)에게 헤아려본 뒤에(惟衷於理而衡諸聖 이치에 맞고 적절한 것인지 생각해보고 그 여부를 성인의 검증된 가르침을 기준으로 삼아서 헤아려 본 뒤에야) 그 말을 알 수 있으니, 말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을 또한 알 수 있다. 그러나 말은 아무 일 없을 때에는 혹 허위와 가식으로 할 수 있지만 사생(死生)의 즈음(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이르러서는 진정(眞情)이 드러나니, 허위와 가식을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는가. 옛날 자장(子張)이 장차 죽으려할 때 그 아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군자의 죽음을 종(終)..

[고전산문] 감당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

긍섭(兢燮)은 남주(南州)의 보잘것없는 선비입니다. 어려서부터 어리석고 나약해서 일마다 다른 사람에게 미치지 못하였고, 다만 오직 부형(父兄)의 가르침으로 글이나 짓고 경전의 자구나 해석하는데 몸을 기탁하였지만, 또한 이미 누차 넘어졌다가 자주 일어나면서 나이가 서른여섯이 되었지만, 안에 아무것도 든 것이 없는 박처럼 속이 텅텅 비어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 이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몸은 천지의 커다란 변화를 맞아 큰 나루를 건너는데 낡은 노조차 없는 듯 망연하니,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로는, 스스로 평소 학문을 하여 천하의 의리를 대략이나마 알게 되어, 우리 부자(夫子, 공자의 높임말)가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들음을 알게 된다.”라고 하신 뜻에 감동되었으..

[고전산문] 사람은 마땅히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으로 바름을 삼아야 한다

천하에는 옳고 그른 것이 있을 뿐이다.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함이 그 바름을 얻어야 군자의 도가 밝아지고, 군자의 도가 밝아져야 천하의 일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게 된다. 옛날에 구양영숙(歐陽永叔)이 ‘비비(非非)’로써 스스로 그 당(堂, 집)의 이름을 삼고 기록하여 말하기를, “옳은 것은 군자가 마땅히 가진 바이니, 사람은 마땅히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으로 바름을 삼아야 한다.〔是者 君子之所宜有 人當以非非爲正〕”고 했는데, 내가 읽어보고 의심하여 생각하기를 “군자의 마음은 선을 선하게 여김이 길고 악을 악하게 여기는 마음이 짧은데, 어찌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으로 바름을 삼기에 이르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윽고 《논어》와 《맹자》에서 무릇 고금 인물의 현부(賢否)와 득실(得失)을 논한 것을 ..

[고전산문] 가난한 생활을 하는 3가지 방법

가난한 생활을 하는 데는 다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운명을 아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기운을 안정시키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의리를 변별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해야 오래도록 가난함에 처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목숨을 구하도록 괴롭도록 부지런하게 노력하고 제도를 가지고 검소하게 아낀다고 해도 말할 만한 것이 못 된다. 무엇을 가지고 운명을 안다고 하는가? 운명이란 하늘에서 정해지는 것이고, 사람의 지력으로 능히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하는 진실로 지력을 가지고 부귀를 얻을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얻어 보면, 운명은 본래 있었던 것이다. 운명이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닌데도 천하에서는 진실로 지력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러나 하늘이 부여해주지 않은 것인데 사람들이 억지로..

[고전산문] 소인의 마음씀씀이는 정말 무서운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아무 근거도 없이 자기를 의심한다면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때도 있다. 왜냐하면 변명에 급급하다 보면 그 의심이 더욱 심해질 것이 뻔한 데에 반해서, 가만히 놔두면 뒤에 가서 저절로 의혹이 해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여종이 주인 여자를 대신해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다가 얼마 뒤에 임신을 했는데 분만을 하고 나서 그 사실이 발각되었다. 주인 여자가 노하여 매질을 하려고 하며 심문하기를 “무릇 젖을 먹일 때에는 남자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야 하는 법이다. 그 이유는 몸에 아이를 갖게 되면 젖을 먹이는 아이에게 해가 되기 때문이니, 이것이 너의 첫 번째 죄이다. 네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 시작할 때부터 발은 문지방을 넘지 말고 방 ..

[고전산문] 차마설(借馬說)

나는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기 때문에 간혹 남의 말을 빌려서 타곤 한다. 그런데 노둔하고 야윈 말을 얻었을 경우에는 일이 아무리 급해도 감히 채찍을 대지 못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지고 넘어질 것처럼 전전긍긍하기 일쑤요, 개천이나 도랑이라도 만나면 또 말에서 내리곤 한다. 그래서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에 발굽이 높고 귀가 쫑긋하며 잘 달리는 준마를 얻었을 경우에는 의기양양하여 방자하게 채찍을 갈기기도 하고 고삐를 놓기도 하면서 언덕과 골짜기를 모두 평지로 간주한 채 매우 유쾌하게 질주하곤 한다. 그러나 간혹 위험하게 말에서 떨어지는 환란을 면하지 못한다. 아,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달라지고 뒤바뀔 수가 있단 말인가. 남의 물건을 빌려서 잠깐 동안 쓸 때에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

[고전산문] 경보설(敬父說)

우봉(牛峯) 이군(李君)이 스스로 양직(養直)이라고 이름 붙이니, 그의 우인(友人)인 마읍(馬邑 한산(韓山) )의 이운백(李云白 가정(이곡)의 초명(初名) )이 불곡(不曲)이라고 자를 지어 주었다. 어떤 사람이 이를 문제 삼아 말하기를, “직(直, 곧을 직)에 대해서 불곡(不曲, 굽히지 않음)이라고 말한다면, 논리로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직의 의미가 어찌 이 정도로만 그치겠는가. 대저 사물의 이치란 한 번 곧게 펴면 한 번 굽혀야 하는 법이니, 곧게 펴는 하나만을 고집해서 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천지처럼 거대한 것 역시 움직일 때도 있고 고요할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장차 몸을 펴기 위함이다.〔尺蠖之屈 以求伸也〕’라고 한 것이다. 굽히기만 하고 펴..

[고전산문]내 마음의 귀결점은 오직 나에게 있을 뿐

조정에서 선비들의 논의가 나뉜 뒤로 붕우의 도리를 어찌 끝까지 지킬 수 있겠는가? 벗 사귀는 도리는 하나인데 어찌하여 둘로 나뉘었는가? 둘도 오히려 불행한데 어찌하여 넷이 되고 다섯이 되었는가? 하나인 도리가 넷, 다섯으로 나뉘어 줄을 세워 사당(私黨)을 만드니 한 개인에게 저버림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한 편에 들어간 사람은 각기 하나의 세력이 되어 나머지 네 다섯 편과 적이 되니 한 개인이 외롭지 않겠는가? …… 나는 혼자다. 지금의 선비를 보건대 나처럼 혼자인 자가 있는가? 홀로 세상길을 가나니 벗 사귀는 도가 어찌 한 편에 붙는 것이겠는가? 한 편에 붙지 않으므로 네다섯이 모두 내 친구가 된다. 그런즉, 나의 교유가 또한 넓지 않은가? 파벌의 차가움은 얼음을 얼릴 정도지만 내가 떨지 않으며, 파벌의..

[고전산문] 탐욕과 포학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사이다

세상사람들은 산속에 파묻혀 글이나 읽는 사람을 보고 항상 나약하고 무능하다고 말한다. 또 책만 알고 물정은 모른다고 말한다. 글을 알고 나면 차마 하지 못하는 바*가 생기고, 하지 않는 바가 생긴다. 차마 하지 못하고 또 하지 않기 때문에 나약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 또한 일찍이 글 읽는 자의 뒤를 따라다닌 적이 있는데, 매번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늘 병통으로 여겼으나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강하고 유능하다고들 말하는 사람은 모두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없고, 할 수 없는 일을 행할 수 있는 자들이다. 세상에서 용감하다고들 말하는 사람은 의리에 용감한 자는 드물고 노여움과 욕망에 용감할 뿐이다. 술잔을 들고 담론을 세우다가도 한마디 말을 가지고 맞서다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며 힘을 믿고..

[고전산문] 알량한 모이와 한 국자 물로는 그 주림과 목마름을 적실 수 없다

작년 기해년(1659, 효종10) 10월에 이교(李矯)가 하얀 학 한 마리를 데려왔다. 11월에는 이지형(李之馨)이 또 하얀 학 한 마리를 데려왔는데, 둥근 목덜미와 기다란 다리는 앞서 온 녀석만 못했지만, 붉은 정수리를 내렸다 올렸다 하면서 꾸국꾸국 맑은 울음소리로 때를 알리고, 길들이는 데도 시일이 얼마 걸리지 않아 박자에 맞춰 빙빙 돌며 춤을 추었으니, 이 점은 앞서 온 녀석보다 오히려 나았다. 정원지기는 나중에 온 녀석을 ‘작은 학’이라 불렀는데, 성질이 매우 유약하여 좁쌀 알갱이를 주면 늘 큰 놈에게 빼앗기곤 했다. 그러나 새장에서 풀어주고부터는 마음대로 다니면서 물을 마시고 모이를 쪼았다. 금년이 되어 때로는 날아서 앞의 시냇물까지 내려가고 때로는 산 위로 날아오르기도 했는데, 아침저녁으로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