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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가 친히 밥어 지어 나를 먹였다

내 집에 가장 좋은 물건은 다만《맹자(孟子)》7책뿐인데, 오랫동안 굶주림을 견디다 못하여 돈 2백 닢에 팔아 밥을 잔뜩 해먹고 희희낙락하며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의 호)에게 달려가 크게 자랑하였소. 그런데 영재의 굶주림 역시 오랜 터이라, 내 말을 듣고 즉시 《좌씨전(左氏傳)》을 팔아 그 남은 돈으로 술을 사다가 나에게 마시게 하였으니, 이는 자여씨(子輿氏 맹자(孟子)를 가리킨다)가 친히 밥을 지어 나를 먹이고 좌구생(左丘生 좌구명(左丘明)을 가리킨다)이 손수 술을 따라 나에게 권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그리하여 맹씨와 좌씨를 한없이 찬송하였으니 우리가 1년 내내 이 두 책을 읽기만 하였던들 어떻게 조금이나마 굶주림을 구제할 수 있었겠는가? 이 참으로 글을 읽어 부귀를 구하는 것이 도대체 요행을 바..

책을 펴면 부끄러움 아닌 것이 없다

"가장 두려운 것은 얼굴이 두툼하고 말을 간략하게 하는 소인(小人)이다. 그것은 그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워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덕무(사소절-교접)-어떤 사람이 나에게 경계하여 이르기를, “예부터 한 가지라도 조그마한 재주를 지니게 되면 비로소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없게 되고, 스스로 한쪽에 치우친 지식을 믿게 되면 차츰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생겨서 작게는 욕하는 소리가 몸을 덮게 되고 크게는 화환(禍患)이 따르게 된다. 이제 그대가 날로 글에다 마음을 두니 힘써 남을 업신여기는 자료를 마련하자는 것인가?” 하였다. 내가 두 손을 모으며 공손히 말하기를, “감히 조심하지 않겠는가.”하였다.슬픔이 닥쳤을 때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막막하여, 오직 땅이라도 뚫고 들어가고만 싶고 한 치도 살아야 하겠다..

아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

남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 절로 왕성하게 일어나는 것은 성인(聖人)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익을 추구하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하면 결코 측은지심이 일어나지 않으니, 이 또한 기이한 일이다. 교묘하게 속이고 아첨하며 일생 동안 남을 속이는 사람이 있어 비록 꾸미는 데 익숙하여 스스로는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그 가려진 것이 매우 얇으므로 가리면 가릴수록 나타나니, 고생스럽기만 할 뿐이다. 다른 사람의 선(善)을 드러내는 일은 한없이 좋은 일이다. 그 선을 한 사람은 이름이 인멸(湮滅)되지 않고 더욱 힘쓰게 되며, 듣는 사람은 본받아 준칙을 삼으며, 그 일을 말하는 나 자신은 또한 그를 본받은 것이다. 자신을 자제하는 것은 반드시 분명해야 하지만, 남을 대하는 데는 포..

마음 밝히기를 거울같이

선비는 마음 밝히기를 거울같이 해야 하고 몸 규제하기를 먹줄같이 해야한다. 거울은 닦지 않으면 먼지가 끼기 쉽고 먹줄이 바르지 않으면 나무가 굽기 쉽듯이, 마음을 밝히지 않으면 사욕이 절로 가리우고 몸을 규제하지 않으면 게으름이 절로 생기므로 마음과 몸을 다스리는 데도 마땅히 거울처럼 닦아야 하고 먹줄처럼 곧게 해야 한다. 마음[虛靈不昧]이란 서쪽으로 유도하면 서쪽으로 쏠리고 동쪽으로 유도하면 동쪽으로 쏠리며, 이(利)로 향하면 이에 따르고 의(義)로 향하면 의에 따르므로, 쏠리고 따르는 데에 반드시 그 시작을 삼가야 한다. 물건이 적중하면 저울대가 반듯하고 물건이 적중하지 못하면 저울대가 기울며, 돛이 순풍을 만나면 배가 가고 돛이 순풍을 만나지 못하면 배가 가로선다, 반듯하고 기울며 가고 가로서게 되..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경계하다

천리마의 한 오라기의 털이 희다고 해서 미리 그것이 백마(白馬)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온 몸에 있는 수많은 털 중에서 누른 것도 있고 검은 것도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그러니 어찌 사람의 일면만을 보고 그 모두를 평가하랴. 어떤 사람이 나에게 경계하여 이르기를, “예부터 한 가지라도 조그마한 재주를 지니게 되면 비로소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없게 되고, 스스로 한쪽에 치우친 지식을 믿게 되면 차츰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생겨서 작게는 욕하는 소리가 몸을 덮게 되고 크게는 화환(禍患,재앙과 환난)이 따르게 된다. 이제 그대가 날로 글에다 마음을 두니 힘써 남을 업신여기는 자료를 마련하자는 것인가?”하였다. 내가 두 손을 모으며 공손히 말하기를,“감히 조심하지 않겠는가.”하였다. 도군석(陶君奭)이 말하기를..

지비재기(知非齋記 ):자신의 잘못을 진실로 안다는 것

운장(雲章 장간(張幹)의 자)은 운장 자신의 잘못을 아는가? 잘못을 하기는 쉽지만 잘못을 알기는 어려우며, 잘못을 알기는 쉽지만 잘못을 진실로 알기는 어려우며, 잘못을 진실로 알기는 쉽지만 잘못을 제거하기는 어려우며, 잘못을 제거하기는 쉽지만 잘못을 진실로 제거하기는 어렵다. 천하 사람들이 많이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여 심하면 혹 이적 금수(夷狄禽獸)에 이르는 것은 모두 잘못을 알지 못함에서 비롯되니 잘못을 아는 것이 크나큰 기괄(機括 기는 활, 괄은 화살촉인데 중요한 기관임을 말한다)임을 비로소 알겠다. 운장은 과연 홀로 운장의 잘못을 알고 있는가? 사람마다 그 누구인들 ‘나는 나의 잘못을 알고 있다’ 말하지 않으랴마는 나는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진실로 아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렇게..

모방한 문장(文章)과 가장한 도학(道學)

경(經, 경서)ㆍ사(史, 역사서)ㆍ자(子, 제자백가서)ㆍ집(集, 楚辭/ 別集 /總類 /詩文評 /詞曲)을 막론하고 첫권은 반드시 때묻고 빛깔이 바랬으며 심지어는 해어지고 떨어져서 읽을 수가 없다. 다음권부터 끝권까지는 비록 여러 해가 된 것이라도 씻은 듯이 말끔하다. 내가 항상 탄식하는 것은, 세상 선비들이 인내심이 적어 모든 글을 첫권을 읽을 때는 끝까지 읽을 것같이 하다가 오래지 않아서 게을러지고 싫증이 나면 이내 포기하여 제2권부터는 한 번도 눈으로 보거나 만지지도 않기 때문에 첫권과 끝권이 판연히 다른 물건같이 된다. 그리하여 쥐오줌에 더럽히지 않으면 좀이 먹게 되니 서적의 곤액(困厄, 곤란과 재앙이 겹쳐진 불운한 상태)이 심한 점이다. 또 근자에 어떤 사람의 집에서 보았는데《패해(稗海)》1질은 한..

빼어난 기운(氣運)이 없는 문인은 때주머니에 불과하다

경(經)ㆍ사(史)ㆍ자(子)ㆍ집(集)을 막론하고 첫권은 반드시 때묻고 빛깔이 바랬으며 심지어는 해어지고 떨어져서 읽을 수가 없다. 다음권부터 끝권까지는 비록 여러 해가 된 것이라도 씻은 듯이 말끔하다. 내가 항상 탄식하는 것은, 세상 선비들이 인내심이 적어 모든 글을 첫권을 읽을 때는 끝까지 읽을 것같이 하다가 오래지 않아서 게을러지고 싫증이 나면 이내 포기하여 제2권부터는 한 번도 눈으로 보거나 만지지도 않기 때문에 첫권과 끝권이 판연히 다른 물건같이 된다. 그리하여 쥐오줌에 더럽히지 않으면 좀이 먹게 되니 서적의 곤액(困厄)이 심한 점이다. 또 근자에 어떤 사람의 집에서 보았는데《패해(稗海)》1질은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은 것같이 깨끗한데 《선실지(宣室志)》ㆍ《유양잡조(酉陽雜俎)》ㆍ《이문총록(異聞總錄)..

천하에서 가장 민망스러운 것

자기의 기호에 따라 경전(經傳, 경전(經典)과 그것의 해석서(解釋書). 성경현전(聖經賢傳)의 준말)과 성현(聖賢, 성인(聖人)과 현인(賢人))을 함부로 끌어대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장기 바둑을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논어》에 있는 ‘장기 바둑을 두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말을 이끌어대고, 해학을 잘 하는 자는 반드시 《시경》에 있는 ‘해학을 잘하도다.’라는 말을 끌어대고, 여색을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대학》에 있는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하듯 하라.’는 말을 끌어대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공자는 술을 마시되 양을 미리 정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끌어대고, 재리(財利)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자공(子貢)의 화식(貨殖, 공자의제자인 자공이 재력가로 재물을 증식하는 일에 능했음을 이르는 ..

교만과 망령됨을 경계하다

얼굴을 곱게 꾸미고 모양을 아양스럽게 굴면 비록 장부(사내)라도 부인(여인네)보다 못하며, 기색을 평온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면 비록 미천한 하인배라도 군자가 될 수 있다. 글을 읽으면서 속된 말을 하는 것은 닭과 개를 대하여도 부끄러운 일이요, 손(客, 손님)을 보내 놓고 시비를 논하는 것(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이러쿵저러쿵 뒷담화 하는 것)은 아마 귀신도 가증스럽게 여길 것이며, 말이 경솔하면 비록 재상의 지위에 있어도 노예나 다름 없고 걸음걸이가 방정맞으면 비록 나이 많은 늙은이라도 아이들보다 못하다. 내가 일찍이 이 말을 동쪽 벽에 붙여 놓고 그 끝 부분에 ‘명숙(明叔 이덕무의 자(字))이 명숙의 서실(書室)에 이 글을 썼는데 명숙이 어찌 명숙을 속이겠는가?’ 라고 덧붙였으니, 이는 깊이 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