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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죄를 지으면 용서를 빌 곳이 없다

옛날에 장주(莊周 장자(莊子))가 그림자가 말을 한다고 하자 사람들이 괴이하다고 했고, 미불(米芾)이 ‘돌 어른〔石丈〕’이라고 부르자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다. 그림자는 말을 하지 않고 돌은 어른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매화와 말하면서 매화를 ‘군(君)’이라고 하니, 나는 과연 괴이하고 미쳤단 말인가. 군자는 괴이하고 미친 짓을 하지 않으니, 나는 과연 군자가 아니란 말인가. 아니면 장주와 미불이 소인이 아니니, 나는 과연 장주와 미불 같은 사람이란 말인가. ‘매군(梅君)’과 더불어 말한 것을 ‘연어(然語)’라고 이름 붙이니, 사람들이 나를 괴이하고 미쳤다고 말하는 것도 당연하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나로 하여금 괴이하고 미치게 하는 자는 또한 누구인가. - 이상은 제사(題辭, 머리글로 ..

사단칠정에 대하여

이(理)와 기(氣)는 비록 하나의 사물이 아니지만, 또한 두 가지 사물도 아니다. 기(氣)라고 말하자마자 이(理)가 있고, 이(理)라고 말하자마자 기(氣)가 있으니, 원래 기에서 분리된 이(理)가 없고 또한 이에서 분리된 기(氣)가 없다. 전(傳)에 이른 바 “기(氣)로 형체를 이루고 이(理) 또한 부여된다.”라는 것은 형체를 이룬 기(氣)가 홀로 행하여 스스로 이루고 이(理)가 금세 그 안에 타고 들어가 마치 소씨(蘇氏)가 '집은 사람의 몸이고 달은 사람의 본성'이라고 한 말과 같은 것이 아니다. 기(氣)가 형체를 이룰 수 있는 까닭은 원래 이(理)와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니, 이(理)가 스스로 이와 같기 때문에 이처럼 스스로 형체를 이루고 성(性) 역시 이와 같다. 이미 성(性)이 있어 감응에 따라 움..

원권(原權 ): 권도에 대하여

권(權)은 저울대에 추를 맞추는 명칭으로, 추이(推移 무게에 따라 눈금이 옮겨 간다.)하는 물건이다. 저울에 아직 물건이 없을 때에는 저울추가 정해진 눈금에 있어 저울대와 수평이 되니 바른 것 중의 바름이다.(이는 태극(太極)의 진(眞)이고 천만 가지에 대한 하나의 이치이며, 조화의 근본이고 인성(人性)의 근본이다.) 저울에 물건을 올릴 적에 물건의 무게가 1근이면 저울추가 1근으로 옮겨 가서 저울대가 1근과 수평을 이루면 바름이 된다. 물건의 무게가 2, 3근이면 저울추가 2, 3근으로 옮겨 가서 저울대가 2, 3근과 수평을 이루면 바름이 된다. 아주 미세하게 조금 옮겨 바르게 되는 경우도 있고, 어느 정도 분량(分量)을 옮겨 바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바르게 되는 이유는 애초 정해진 저울 눈금이 한 ..

개 돼지보다 못한 자

공자가 말하였다. “오직 지극히 지혜로운 자와 가장 어리석은 자는 변화시킬 수 없다.”(子曰 唯上知與下愚 不移) 어리석고 몽매하여 꽉 막힌 자는 당초 하늘에서 타고난 기(氣)가 지극히 탁하고 못나서 개나 돼지, 벌레들과 별반 차이가 없고, 오히려 말이나 소의 지각보다도 못한 자가 있다. 이들은 애당초 사람의 도리로써 슬기로운지, 어리석은지 그 부류조차도 논할 수가 없다. 이른바 ‘하우(下愚, 매우 어리석고 못남)’는 폭군인 걸주(桀紂) 및 나태한 부류이다. 지금 걸주에게 따져 묻기를 “너는 하우이다.”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화를 낼 것이다. 이처럼 하우란 진정 싫어하는 대상이다. 만일 싫어한다면 어찌하여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가? 싫어할 줄만 알고 어리석음을 없앨 방도를 생각하지도 않으니, 참으로 하우이다..

참된 사람이어야 참된 사물을 알아본다

만물에는 진짜도 있고 비슷한 것도 있다. 비슷한 것은 가짜이면서 진짜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어지럽힐 뿐만이 아니다. 진짜는 하나이지만 가짜는 백이니, 이를 어찌하겠는가. 사람의 사이비는 오직 순(舜)이 알고, 곡식의 사이비는 기(棄 후직(后稷))가 알며, 풀의 사이비는 신농(神農)이 안다. 그들이 알고서 버리고 취할 것을 판단해 주었기 때문에 망하지 않았고, 천하가 굶주리지 않았으며, 만민이 병들거나 요절하여 죽지 않았다. 그래서 거룩하며 신령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니 참된 사람이어야 참된 사물을 알아본다. 순이 아니면 어떻게 우(禹)를 알아보았겠으며, 후직(后稷)이 아니면 어떻게 벼나 기장을 알아보았겠으며, 염제(炎帝)가 아니면 어떻게 인삼과 백출(白朮)을 알아보았겠는가. 천지가 생긴 지 오래되었는데, ..

군자의 부(富)귀(貴)존(尊)영(榮)

더 이상 구할 것이 없는 것이 부(富)이고, 굽힐 데가 없는 것이 귀(貴)이다. 사람들이 모두 경애하고 추대하는 것이 존(尊)이고, 사람들이 감복하며 명예롭고 빛난다는 것이 영(榮)이니, 이것이 군자의 부ㆍ귀ㆍ존ㆍ영이다. 재물을 쌓아 두고 부(富)라고 여기고, 작위가 높은 것을 귀(貴)라고 여기고, 과시하며 뻐기는 것을 존(尊)으로 여기고, 사치와 방만을 영(榮)이라고 여기니, 이것이 소인의 부ㆍ귀ㆍ존ㆍ영이다. 소인의 부와 존은 더러는 중도에서 망가져서 몸이 죽는 데 이르기도 하지만, 군자의 부와 영은 이와 다르다. 사람의 힘으로 빼앗을 수 없고, 몸이 죽어도 끝내 없어지지 않는다. 크게는 천지(天地)와 함께 항상 존재하고, 작아도 수천 년, 수백 년 이상 간다. 이를 소인의 부ㆍ귀ㆍ존ㆍ영과 비교하면 고..

잉여(剩餘)에 대하여

‘잉여(剩餘)’라는 말은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베와 비단에 잉여가 없다면 옷을 만들 수 없고, 재목에 잉여가 없다면 집을 지을 수 없다. 하물며 솜씨 좋은 아녀자나 기술 좋은 장인이 잉여를 가지고 쓸모 있게 만들어 더욱 자신의 솜씨를 드러내는 경우에 있어서랴. 문장(文章)의 경우를 말한다면 이는 선비들에게 있어 잉여이다. 하지만 문장(文章)이 없으면 또한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옛사람이 이른 바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게 되는 것이 위대하도다.”라는 것이 어찌 이치를 통달한 말이 아니겠는가. 잉여옹(剩餘翁)*은 잉여라고 자호(自號)하여 쓸모없음을 자처하였으면서도 오히려 시 짓기를 좋아했으니, 이는 쓸모없는 늙은이가 또 쓸모없는 행동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인재를 잘 쓰는 신묘..

천진난만하게 노는 어린아이와 부끄러워하는 처녀의 심정으로

“고(藁, 글을 기록한 원고)를 영처(嬰處)라고 하였으니 고(藁)를 쓴 사람이 영처인가?” 하므로, “고를 쓴 사람은 20세가 넘은 남자이다.” 하였다. “영처가 고를 쓴 사람이 아닌데도 고를 유독 '영처'라고 하면 옳겠는가?” 하므로, “이는 스스로 겸손한 것에 가까우면서도 도리어 스스로 찬미한 것이다.” 하였다.(옮긴이 주: 영처(嬰處)는 이덕무의 호로 문자적으로 보면, '어린아이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외에도 형암(炯庵), 아정(雅亭)·청장관(靑莊館)·동방일사(東方一士)·신천옹(信天翁)등이 있다) “그렇지 않다. 숙성(夙成)한 어린이는 스스로 찬미하기를 ‘장자(長者)’라 해야 할 것이요 지혜로운 처녀는 스스로 찬미하기를 ‘장부(丈夫)’라 해야 할 것이지만, 20이 넘은 남자가 도리어 영처로 스스로 ..

벗을 사귀고 사람을 대하는 도리 (사소절, 交接 교접)

벼슬로 서로 유혹하는 사람은 벗이 아니요, 권세와 이익으로 서로 의지하는 사람은 벗이 아니요, 장기 바둑이나 놓고 술이나 마시고 해학하며 떠들썩하게 웃는 사람은 벗이 아니요, 시문(詩文)ㆍ서화(書畫)ㆍ기예(技藝)로 서로 잘한다고 허여하는 사람은 벗이 아니다. 아! 오늘날의 이른바 우도(友道)란 것을 내가 매우 슬퍼하는 바이다. 겸손하고 공손하며 아담하고 조심하며 진실하고 꾸밈이 없으며 명절(名節)을 서로 부지하고 과실(過失)을 서로 경계하며, 담박하여 바라는 바가 없고 죽음에 임하여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 참된 벗이다. 거짓된 인품은 사람을 많이 상대할수록 더욱 교활해지고, 참된 인품은 사람을 많이 상대할수록 더욱 숙련(신중하고 진지함)해진다. 진중순(陳仲醇)은 이렇게 말했다. “공자는 ‘대인(大人..

마음은 군(君)이요 몸은 신(臣)이다

남이 나를 칭찬한다 하여 후하게 대하지 말고 남이 나를 훼방한다 하여 박하게 대하지 말아야 하며, 한 가지의 칭찬을 들었다 하여 스스로 기뻐하거나 자부(自負)하지 말고 다만 나의 몸을 조심하여 더욱 힘써야 하고, 한 가지의 훼방을 들었다 하여 스스로 화내거나 자기(自棄,좌절하고 스스로 포기함)하지 말고 다만 나의 몸을 반성하여 잘못을 고쳐야 한다. 하늘과 땅이 있은 뒤에 사람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하늘과 땅의 부여(賦與)를 받았으니, 역시 하나의 하늘과 땅이 되는 셈이다. 하늘과 땅이 도수(度數)를 상실하면 오행(五行)이 뒤바뀌고 사람이 떳떳함을 상실하면 오륜이 무너진다. 하늘과 땅의 몸으로서 하늘과 땅의 도수를 법받아 그 떳떳함을 상실함이 없으면 거의 사람이 될 것이다. 말(言)은 어긋나게 할 것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