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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게으름 병

내가 게으른 병이 있어서 이것을 객(客)에게 알리기를, “이렇게 바쁜 세상에 나는 게으름뱅이로 작은 몸 하나도 제대로 지탱해 나가지 못하며, 집이라고 하나 있는데도 게을러서 풀도 매지 아니하고, 책이 천 권이나 있는데 좀이 생겨도 게을러서 펴보지 아니하며, 머리가 헝클어져도 게을러서 빗지 아니하며, 몸에 병이 있어도 게을러서 치료하지 아니하며, 남과 더불어 사귀는데도 게을러서 담소하며 노는 일이 적으며, 사람들과 서로 왕래하는데도 게을러서 그 왕래가 적으며, 또 입은 말을 게을리하고, 발은 걸음을 게을리하며, 눈은 보는 것을 게을리하여, 땅을 밟든지 일을 당하든지 간에 무엇에든지 게으르지 않는 것이 없는데, 이런 병을 무슨 재주로 낫게 하겠는가?” 하고 말을 하니, 객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물러가더니..

[고전산문]슬견설(虱犬說): 한쪽으로만 치우친 감정에 대하여

어떤 손이 나에게 말하기를, “어제 저녁에 어떤 불량자가 큰 몽둥이로 돌아다니는 개를 쳐 죽이는 것을 보았는데, 그 광경이 너무 비참하여 아픈 마음을 금할 수 없었네. 그래서 이제부터는 맹세코 개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네.” 하기에, 내가 대응하기를, “어제 어떤 사람이 불이 이글이글한 화로를 끼고 이[虱]를 잡아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나는 아픈 마음을 금할 수 없었네. 그래서 맹세코 다시는 이를 잡지 않을 것이네.” 하였더니, 손은 실망한 태도로 말하기를, “이는 미물이 아닌가? 내가 큰 물건이 죽는 것을 보고 비참한 생각이 들기에 말한 것인데, 그대가 이런 것으로 대응하니 이는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닌가?” 하기에, 나는 말하기를, “무릇 혈기가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ㆍ말ㆍ돼지ㆍ양ㆍ곤충ㆍ개미..

[고전산문]미친 듯이 보이나 그 뜻이 바른 것

세상 사람들이 다 거사(居士)를 미쳤다고 하나, 거사는 미친 것이 아니요, 아마 거사를 미쳤다고 말하는 자가 더 심하게 미친 자일 것이다. 그 자들이 거사의 미친 짓 하는 것을 보았는가? 또는 들었는가? 거사가 미친 것을 보고 들었으면 어떠하던가? 알몸에 맨발로 물이나 불에 뛰어들던가? 이가 으스러지고 입술에서 피가 나도록 모래와 돌을 깨물어 씹던가? 하늘을 쳐다보고 욕을 하던가? 땅을 발로 굴려 제끼며 꾸짖던가. 산발머리를 하고 울부짖던가? 잠방이를 벗고 뛰어 다니던가? 겨울에 추위를 모르며, 여름에 더위를 모르던가. 바람을 잡으려 하고, 달을 붙들려 하던가? 이런 일이 있으면, 미쳤다 하겠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어찌 미쳤다 하느냐? 아, 세상 사람은 한가하게 지낼 때에는 용모와 언어, 의복 차림이 사..

[고전산문] 이상한 관상장이의 안목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어떤 관상장이가 있었는데, 그는 상서(相書)를 읽거나, 상규(相規)를 따르지도 않고서 이상한 상술로 관상하였다. 그래서 이상자(異相者)라 하였다. 점잖은 사람, 높은 벼슬아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앞을 다투어서 초빙도 하고 찾아도 가서 상을 보았다. 그 관상장이는 부귀하여 몸이 비대하고 윤택한 사람을 관상하면서는, “당신 용모가 매우 수척하니 당신처럼 천한 족속이 없겠습니다.” 하고, 빈천하여 몸이 파리한 사람을 관상하면서는, “당신 용모가 비대하니 당신처럼 귀한 족속은 드물겠소.” 하고, 장님을 관상하면서는, “눈이 밝겠소.”하고, 달음질을 잘하는 사람을 관상하면서는, “절름발이라 걷지 못하는 상이오.” 하고, 얼굴이 잘생긴 부인을 관상하면서는, “아름답기도 하고 추..

[고전산문]방선부(放蟬賦): 거미줄에 걸린 매미를 풀어 준 까닭

저 교활한 거미는 그 종류가 아주 많구나. 누가 너에게 교활한 재주 길러 주어 그물 만들 실로 둥근 배를 채웠는가. 어떤 매미가 거미줄에 걸려 처량한 소리를 지르길래 내가 차마 듣다 못하여 놓아 주어 날아가도록 했더니 옆에 서 있던 어떤 자가 나를 나무라면서, “오직 이 두 미물(微物)은 다 같이 하찮은 벌레들인데 거미가 자네에게 무슨 손해가 있으며 매미는 자네에게 무슨 유익이 있기에 오직 매미만 살리고 거미는 그만 굶겨 죽이려 하느냐? 이 매미는 자네를 고맙게 여길지라도 저 거미는 반드시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다. 매미를 놓아 보낸 것에 대해서 누구든 자네를 지혜롭다 하겠는가?”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이마를 찡그리고 대답조차 하지 않다가 얼마 후에 한마디의 말로써 그의 의아심을 풀어주되,..

[고전산문] 진정 두려워해야 하는 것

어떤 독관 처사(獨觀處士)란 분이 집에만 들어앉아 사는데 늘 무슨 두려움이 있는 듯이 자기 모습을 돌아보고 두려워하며, 그림자를 돌아보고 두려워하고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모조리 두려워한다. 충묵 선생(沖黙先生)이 그에게 찾아가 그런 이유를 물었다. 처사(處士)는 대답하기를, “이 넓은 천지에서 무슨 동물인들 두려움이 없겠느냐? 뿔 달린 놈, 이 [齒] 가진 놈, 날짐승, 길짐승, 굼틀거리기도 하고 법석대기도 하는 온갖 동물들이 한없이 많은데 모두 제 생명을 아껴 자기 유(類)가 아닌 것을 보면 다들 두려워한다. 새는 하늘에서 매를, 물고기는 물에서 물개를, 토끼는 사냥개를, 이리는 물소를, 사슴은 담비를, 뱀은 돼지를 두려워하고 가장 사나운 호랑이와 표범도 사자를 만나면 피해 도망친다. 왜 이런 따..

[고전산문] 벗의 도리

보내주신 편지에, “귀천을 막론하고 벗의 힘을 빌어 자신을 성취시켜야 한다(勿論貴賤 須友以成者).”고 하신 말씀은 참으로 틀림없는 말이지요. 신(信)이 오행(五行)에서는 토(土)에 속하고, 토는 또 사계절에 기왕(寄王)*하며, 신(信) 역시 인의예지(仁義禮智) 속을 통행하면서 그 모두에게 성실(誠實)을 기하는 것이지요. 붕우(朋友, 마음이 통하여 서로 가깝게 사귀는 사람)는 신(信)에 속하는데 나머지 사륜(四倫)이 붕우의 강마(講磨, 학문이나 기술을 갈고 닦음)로 인하여 밝아질 수 있는 것이고 보면, 그 의의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옮긴이 주: 원문은 則其義固不重耶 즉 변치 않는 의리(義理)의 중요성을 강조). 그런데 세상 도의(道義,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나 의리)가 몰락하여 서로 아는 자라..

[고전산문] 독서에 대하여

많이 읽지 않으면 그 의미를 알 수 없으며, 널리 보지 않으면 그 변화에 통달할 수 없다 글이란 옛 성현(聖賢)들의 정신과 심술(心術)의 운용이다. 옛 성현들이 영구히 살면서 가르침을 베풀 수 없었기 때문에 반드시 글을 지어서 후세에 남겨 후인들로 하여금 그 글 속의 말을 통하여 성현의 자취를 찾고 그 자취를 통하여 성현의 이치를 터득하게 하고자 한 것이니, 이 때문에 후세의 선비들이 한결같이 글을 읽어서 성현의 뜻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으면 그 의미를 알 수 없으며, 널리 보지 않으면 그 변화에 통달할 수 없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책 일만 권을 읽으면 붓끝에 신기가 어린 듯하다.[讀書破萬卷 下筆如有神]”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글을 일천 번을 읽으면 그 의미가 저절로 나타난다...

[고전산문] 덕(德)을 진취하려면 치지(致知)를 해야 한다

엊그제 그대의 큰형과 막내 아우가 나란히 적막한 물가에 사는 나를 찾아주었는데 난초 같은 인정을 거의 잊기 어려웠습니다. 그대의 큰형님이 오셨을 때 토론한 바가 많았는데 맞는 말을 하였는지의 여부는 논할 것도 없이 깊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대가 보낸 편지의 뜻을 보건대, 관례에 따라 쓴 세속의 편지가 아니고 충심에서 나온 것이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겠습니까. (중략)대체로 학문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고문(古文)을 널리 통달하고 반드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을 귀히 여깁니다. 그러나 고문을 널리 통달하려는 것은, 많이 듣고 말을 신중히 하며 많이 보고 행실을 신중히 하며 자세히 묻고 명확하게 분변하며 많이 알고 덕을 쌓는 것을 말한 것이지, 세상 사람처럼 괴벽한 일이나 찾고 기이한 설이나 주워다가 ..

[고전산문] 차라리 서툴지언정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다

내가 병이 든 6년 동안 문을 닫고 바깥 출입을 끊었으나 손님의 접대는 그래도 전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집안 식구들이나 손님들이 병이 심하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나 기운은 날로 줄어들고 혈기는 날로 쇠잔하여 정신과 의지가 점차 전만 못해지는 것이 저절로 느껴진다. 그러던 것이 올 봄 이후로는 형세가 비탈을 내려가는 것과 같아서 거의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의학상으로 보아 죽을 만한 증후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 이러고서야 어찌 이 세상을 오랫동안 볼 수 있겠느냐. 삶이란 이 세상에 잠깐 들른 것이요, 죽음이란 원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사실 슬퍼할 것은 없다. 그러나 슬퍼할 만한 일은 한 번 가면 다시 돌이킬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생각해 보건대 이 세상에서 살아온 48년 동안 칭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