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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원망하거나 근심하지 않는 이유

내가 죄를 지어 남쪽 변방으로 귀양간 후부터 비방이 벌떼처럼 일어나고 구설이 터무니없이 퍼져서 화가 측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아내는 두려워서 사람을 보내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평일에 글을 부지런히 읽으시느라 아침에 밥이 끓든 저녁에 죽이 끓든 간섭치 않아 집안 형편은 경쇠를 걸어 놓은 것처럼 한 섬의 곡식도 없는데, 아이들은 방에 가득해서 춥고 배고프다고 울었습니다. 제가 끼니를 맡아 그때그때 어떻게 꾸려나가면서도 당신이 독실하게 공부하시니 뒷날에 입신 양명(立身揚名)하여 처자들이 우러러 의뢰하고 문호에는 영광을 가져오리라고 기대했는데, 끝내는 국법에 저촉되어서 이름이 욕되고 행적이 깎이며, 몸은 남쪽 변방에 귀양을 가서 독한 장기(瘴氣)나 마시고 형제들은 나가 쓰러져서 가문이 여지없이 탕산..

[고전산문] 진리가 어지럽혀지고 사람의 도가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

요순(堯舜)이 사흉(四凶 요순 때에 죄를 지은 4명의 악한 즉 공공(共工)ㆍ환도(驩兜)ㆍ삼묘(三苗)ㆍ곤(鯀))을 벤 것은 그들이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은 좋게 꾸미면서 명령을 거스르고 종족을 무너뜨리기 때문이었다. 우(禹)도 또한 말하기를, “……말을 교묘하게 하며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자를 어찌 두려워하랴?” 하였으니, 대개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것은 사람의 본심을 잃게 하며, 명령을 어기고 종족을 무너뜨리는 것은 사람의 일을 망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제거하여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탕(湯 은(殷)왕조의 시조(始祖)다)과 무왕(武王 은(殷)왕조를 무너뜨리고 주(周)왕조를 세운 임금)이 걸(桀 하(夏)왕조 최후의 임금 폭군)ㆍ주(紂 은(殷)왕조의 최후의 임금ㆍ폭군)를 쳐부..

[고전산문] 따르는 사람(從者)을 보아서 그 선생을 안다

유가(儒家)의 류(流)인 담은선생(談隱先生)이 금남(錦南)에 살았다. 하루는 금남에 사는 야인(野人)으로 유(儒, 유학자, 선비)란 이름을 듣지 못한 자가 선생을 보려고 와서 선생의 종자(從者)에게 하는 말이, “나는 야인이라 비루하여 원대한 식견이 없으나, 들으니 ‘위에 거하여 나라의 정사를 다스리는 이를 경대부(卿大夫)라 하고, 아래에 거하여 밭을 가는 이를 농부라 하고, 기계를 만드는 이를 공인(工人)이라 하고, 화물을 사서 파는 이를 상인[商賈]이라 한다.’ 하는데, 이른바 유(儒)라는 것이 있는 줄은 몰랐더니, 어느 날 우리 고을 사람이 떠들썩하게 ‘유자(儒者)가 왔다, 유자가 왔다.’ 하기에 보니 바로 선생이었습니다. 선생은 무슨 업을 하고 계시기에 사람들이 유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였..

[고전산문] 사물로 인하여 성현이 누린 즐거움을 아는 일은 쉬운게 아니다

겸부(謙夫) 탁(卓) 선생 탁광무(卓光茂)가 광주(光州) 별장에 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못 가운데에 흙을 쌓아 작은 섬을 만들어 그 위에 정자를 짓고 날마다 오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다. 익재(益齋) 이 문충공(李文忠公 이제현(李齊賢)을 말함)이 그 정자를 경렴(景濂)이라고 이름하였는데, 이는 대개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호)의 연꽃을 사랑하는 뜻을 취하여 그를 경앙(景仰)하고 사모하고자 한 것이리라. 대저 그 물건을 보면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 반드시 그 물건에 마음을 쓰게 된다. 이것은 느낌이 깊고 후하기가 지극한 것이다. 일찍이 말하기를, ‘옛사람에게는 각기 사랑하는 화초가 있었다.’ 한다. 굴원(屈原)의 난초와, 도연명(陶淵明)의 국화와 염계의 연꽃이 그것으로 각각 그 마..

[고전산문] 재주와 재능만으로 사람됨을 알 수 없다

소인 중에는 재주가 몹시 뛰어난 자가 많아 군자도 혹 그만 못하다. 당나라의 소인으로는 이임보(李林甫), 노기(盧杞)만 한 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임보의 지략은 안녹산(安祿山)도 두려워하는 바였으니, 이임보가 죽지 않았더라면 안녹산은 틀림없이 반역하지 못했을 것이다. 노기가 덕종(德宗)에게 인정을 받은 것은 괵주(虢州)의 돼지 때문이었으니, 그의 말은 참으로 재상의 기국이 있었다. 송나라는 소인들이 모두 재주 있는 자들이었다. 정위(丁謂)가 조회하러 들어가자 진종(眞宗)이 크게 진노하여 어떤 이에게 심한 벌을 내리려 하였으나, 정위는 묵묵히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 진종이 그 까닭을 묻자 정위가 차분하게 대답하기를, “천노(天怒)가 진동하실 때에 신이 한마디 보탰다가는 저 사람이 그 자리에서 박살이 날 ..

[고전산문] 사지백체가 서로 높음을 다투다

머리가 발꿈치에게 그 높음을 자랑하여 말하기를, “온몸이 나를 높이고 그대는 또 몸의 아랫부분이니, 그대는 나의 종이 아닌가?” 하자, 발꿈치가 말했다. “그대는 하늘을 이고 있고 나는 땅을 밟고 있으니, 그대는 오히려 이고 있는 것이 있지만 나는 땅을 밟고 있으면서도 감히 무시하지 않는데, 그대는 어찌 홀로 스스로를 높이는가? 온몸이 그대를 높이는 것은 내가 받들어 주기 때문인데, 나의 공(功)을 잊고 도리어 나를 천대한단 말인가? 그대가 높은 것을 자랑한다면 그대 또한 아래에 있을 때가 없겠는가?” 이 말을 들은 머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입이 항문을 꾸짖어 말하기를, “나는 밥을 먹고 그대는 더러운 것만을 배설하니, 그대와 한 몸인 것이 나는 실로 부끄럽다.”하자, 항문이 말했다. “그대에게..

[고전산문] 올바른 본성에 맞게 사는 일

모든 물건은 속이 다 채워져 있는데 뱃속만은 비어 있어서 먹은 뒤에야 채워진다. 그런데 반드시 하루에 두 번은 먹어야 하니, 아침에 채워 넣은 것은 저녁이면 비고 저녁에 채워 넣은 것은 아침이면 비게 된다. 부드러운 것이나 딱딱한 것이 모두 뱃속으로 들어가니, 독해서 먹지 못하는 것은 약으로 만들어 병을 치료한다. 이것저것 아무거나 먹어서 세상의 재앙이 되니, 그 발단이 되는 것은 배만 한 것이 없다. 그러나 조물주가 세상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실로 여기에 달려 있으니, 이것이 없다면 하늘이 어떻게 사람을 제어할 수 있으며 임금이 어떻게 백성을 부릴 수 있겠는가. 열자(列子)가 말하기를, “사람이 입고 먹지 않으면 군신 간의 도가 종식된다.” 하였으니 어찌 군신 간뿐이겠는가. 오륜의 도도 아울러 종식..

[고전산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폐단과 군자삼계(君子三戒)

안숙화(安叔華 안석경(安錫儆))가 말하기를, “재물을 탐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것은 인(仁)의 폐단이고, 잔인하고 각박한 행동은 의(義)의 폐단이고,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빛은 예(禮)의 폐단이고, 권모술수는 지(知)의 폐단이고, 고집스럽고 편벽된 행동은 신(信)의 폐단이다.” 하였다.(옮긴이 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란 사람이 항상 갖추어야 하는 다섯 가지 道理(도리), 즉 어질고, 의롭고, 예의 있고, 지혜로우며, 믿음직함을 뜻한다. 이것을 오상(五常)이라고 한다.) 군자는 남의 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소인은 남의 악을 드러내기를 좋아한다. 현달한 사람은 항상 남도 현달하기를 바라고 곤궁한 사람은 항상 남도 곤궁하기를 바란다. 훌륭한 사람은 남의 장점을 듣기를 좋아하고 용렬한 사람은 남의 단점..

[고전산문] 내가 옳다는 마음을 갖지 말라

사람의 얼굴을 관상(觀相)하는 것은 사람의 말을 들어 보는 것만 못하고, 사람의 말을 들어 보는 것은 사람의 일을 살펴보는 것만 못하고, 사람의 일을 살펴보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만 못하다. 자그마한 은혜와 임시방편적인 정치는 군자가 잘할 수 없고, 자신을 뽐내는 행동과 너무 지나친 논의는 군자가 하지 않는다. 나약은 어진 것처럼 보이고, 잔인은 의로운 것처럼 보이며, 탐욕은 성실한 것처럼 보이고, 망언은 강직한 것처럼 보인다. 권세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명예를 구하고, 명예를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익을 탐한다. 안숙화(安叔華 안석경(安錫儆) )가 말하기를, “재물을 탐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것은 인(仁)의 폐단이고, 잔인하고 각박한 행동은 의(義)의 폐단이고,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

[고전산문]개한테 큰 절을 올리다

금강산의 어떤 중이 탁발(托鉢)을 하다가 북쪽 지방에 들어가 보니, 북도(北道 함경도) 사람들은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노끈을 얽어 만든 갓에 개가죽 옷을 입고 있었다. 중이 처음에는 양반에게는 절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자 그들을 똑같이 대했으나 사람들 역시 그를 꾸짖지 않았다. 마침 모임이 있는 곳을 지나다가 술통을 치며 동냥을 하는데, 무리 중에 옷차림이 조금 나은 자가 술에 취해 상석(上席)에 앉아 있었다. 그는 중이 자기에게 따로 절하지 않은 데 분노하여 잡아다가 꾸짖고 매를 치려 하였다. 이에 중은 싹싹 빌며 사죄하였고, 여러 사람들까지 말려 준 덕에 매질을 면하였다. 상석에 앉은 자는 좌중을 돌아보며 웃고는 의기양양하게 중을 불러 술을 주며 말했다. “네가 남쪽에서 왔으니 나와 조금은 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