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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방물장수와 어머니 / 강명관

은퇴한 지 오래된, 무척 존경하는 선배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다. 20대 초반 여름 친구들과 어울려 캠핑을 하면서 전국을 주유하던 중 어느 날의 일이었다. 오후 늦게 강가에 텐트를 치며 하루를 묵을 채비를 하고 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초로의 촌로 한 분이 걸음을 멈추고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하루를 자고 떠날 요량이라고 했더니, 펄쩍 뛰면서 우리 마을을 찾아온 사람들을 어찌 한데서 재우느냐며 빨리 텐트를 걷고 따라오란다. 실랑이 끝에 못 이기는 체 하고 따라갔더니 마을 공회당 넓은 방에 묵게 해 주고, 저녁까지 차려 주며 ‘없는 찬이나마 든든히 먹으라’고 호의를 베풀더라는 것이다. “아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그땐 그랬어, 요즘처럼 야박하지 않았거든. 꼭 그 마을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고전산문] 바보를 파는 아이(賣癡獃)

거리에서 아이들이 외치고 다니면서 팔고 싶은 물건이 하나 있다고 한다. 무엇을 팔려느냐 물어보았다. "끈덕지게 붙어 다녀 괴롭기만한 바보를 팔겠다"고 한다. 늙은이가 말하기를, "내가 사련다. 그 값도 당장에 치뤄 줌세. 인생살이에 지혜는 내 그리 바라지 않는다. 지혜란 원래 시름만 안길 뿐이다. 온갖 걱정거리 만들어 내 평정심을 깨뜨리고, 온갖 재주 다 부려 약삭빠른 이해타산에나 쓰일 따름이다. 예로부터 꾀주머니로 소문난 이들의 처세는 어찌 그리도 야박하고 구차했던가. 환하게 빛나는 기름 등불을 보라. 자신을 태워 스스로 없애지 않는가. 짐승도 그럴 듯한 문채가 있으면 끝내 덫에 걸려 죽고야 만다. 그러니 지혜란 없는 게 낫다. 더우기 바보가 된다면 더욱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네게서 바보를 사련다. ..

[고전산문]사람을 아는 것과 헤아리는 것은 다르다

지인(知人, 사람을 아는 것)과 측인(測人, 사람을 헤아리는 것)은 다르다 함께 일을 해 봐야만 비로소 사람을 알 수 있고 일을 함께 하기 전에는 단지 사람을 헤아릴 수 있을 뿐이다. 일을 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떠함을 알고 일을 한 뒤에 그 징험(徵驗)이 과연 어김이 없으면, 이것을 일러 사람을 알았다고 하는 것이다. 만일 끝내 증험한 것이 없는데도 사람을 알았다고 한다면, 누군들 사람을 알지 못하겠는가. 일을 하기 전에 그 사람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헤아리는 것은, 매양 그 사람이 이미 끝낸 일을 인하여 이 일을 미루는 것이다. 혹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운화(運化)의 기회를 미루어 종말의 돌아갈 형세를 미리 재보는 것은 추후의 증험을 바로 기필할 수 없으므로, 이를 일러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

[고전산문]물결의 흐름을 보고 그 근원의 맑고 흐림을 안다

추측록 서(推測錄序) 하늘을 이어받아 이루어진 것이 인간의 본성[性]이고, 이 본성을 따라 익히는 것이 미룸[推]이며, 미룬 것으로 바르게 재는 것이 헤아림[測]이다. 미룸과 헤아림은 예부터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말미암는 대도(大道)다. 그러므로 미룸이 올바르면 헤아림에 방법이 생기고 미룸이 올바르지 못하면 헤아림도 올바르지 못하다. 올바름을 잃은 곳에서는 미룸을 바꾸어 헤아림을 고치고 올바름을 얻는 곳에서는 원위(源委 근본과 말단)를 밝혀서 중정(中正)의 표준을 세울 것이다. 이에 지나치면 허망(虛妄)에 돌아가고, 이에 미치지 못하면 비색(鄙塞: 엉뚱한 곳으로 빠져 막힘)에 빠진다. 아득한 옛날 태호(太昊 상고 시대의 제왕 복희(伏羲)를 말함)가 위로는 하늘을 보고 아래로는 땅을 살펴, 가까이는 자기 몸..

[고[고전산문] 육체의 눈과 마음

눈은 색(色)을 보고 귀는 소리를 듣지만 그것을 분별하여 취하고 버리는 것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문견(聞見)의 주비아속(周比雅俗)은 다만 듣고 보는 것만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분별하여 취하고 버릴 줄 아는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편벽된 사람의 문견(聞見)이라고 어찌 언제나 두루 함께 미치지 못하며, 속된 사람의 문견이라고 어찌 언제나 고아함에 미치지 못하였겠는가? 이는 마음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같지 않으므로, 취사(取捨)하는 것 역시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 이목(耳目)이 채 미치지 못하여 선하게 되지 못한 사람도 있으니, 이는 배우지 않고도 잘하는 사람에게 비견하여 책망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미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도 끝내 선하게 되지 못한 자는 선입관(先入觀)에 ..

[고전산문] 속임을 당하고도 속은 줄 모르고 사는 것이 부끄러운 것

기만하는 말은 또한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잠시 실적(實蹟)을 빌려 속에 있는 재화를 유인하거나 귀와 눈을 현혹하여 그릇된 길로 끌어들이는 일은, 진실로 창졸간에 나온 속임수이니, 보통 사람이 범하기 쉬운 것인 동시에 또한 쉽게 깨달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속임을 당한 것을 깨달으면 돌이키는 길이 어렵지 않고 또한 복철지계(覆轍之戒 앞 수레가 넘어지면 뒷 수레는 이것을 보고 경계하는 것이니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음을 말한다)로 삼기에 족하다. 그러나 잘못된 문학(差誤之文學)을 널리 말함으로써 남의 자제를 해롭게 하거나, 백성을 괴롭히는 정령(政令)을 가지고 임금의 도타운 부탁을 저버리는 것은 크나큰 기만이다.(옮긴이 주:맥락상 여기서 '문학 ' 이란, 문(文)과 학(學) 각각의 의미 즉 언어로 표현된..

[고전산문] 남을 아는 것은 자기를 얼마만큼 아느냐에 좌우된다

자신을 아는 것의 천심주편(淺深周偏 얕고 깊음, 두루 넓거나 치우침)은 마땅히 남을 아는 것의 천심주편으로 그 우열(優劣)을 결정하여야 한다. 남을 아는 것이 깊은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아는 것도 깊고, 남을 아는 것이 얕은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아는 것도 얕으며, 두루하고 치우침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을 안다고 하는 것이 어찌 자기의 사정(事情)만 알고 남의 사정을 모르는 것이랴! 자기를 다하고(盡己 진기) 사물까지 다한(盡物 진물)뒤에야 바야흐로 자신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니, 만일 능히 남을 아는 도(道)를 다하지도 못하면서 문득 자신을 밝게 안다 하는 사람은 반드시 식견이 천박하고 치우친 사람이다. 능히 남을 아는 도(道)를 다하는 사람은, 혹 자신을 아는 것에 다하지 못한 것이 있..

[고전산문] 옳고 그름은 바른데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하늘을 이어받아 이루어진 것이 인간의 본성(性)이고, 이 본성을 따라 익히는 것이 미룸(推)이며, 미룬 것으로 바르게 재는 것이 헤아림(測)이다. 미룸과 헤아림은 예부터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말미암는 대도(大道)다. 그러므로 미룸이 올바르면 헤아림에 방법이 생기고 미룸이 올바르지 못하면 헤아림도 올바르지 못하다. 올바름을 잃은 곳에서는 미룸을 바꾸어 헤아림을 고치고 올바름을 얻는 곳에서는 원위(源委 근본과 말단)를 밝혀서 중정(中正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고 치우침이 없이 곧고 올바름)의 표준을 세울 것이다. 이에 지나치면 허망(虛妄, 거짓이 많고 근거가 없이 허무한 상태)에 돌아가고, 이에 미치지 못하면 비색(鄙塞, 속되고 천한 상태에 갇혀 버림)에 빠진다.(☞추측록 서) 악을 헤아림(測惡) 악한 말을 쉽..

[고전산문] 좋아하고 미워함을 진실되게 하라

좋아할 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일에 유익하기 때문이니 좋아하지 아니하면서 등용하면 반드시 일을 해치게 되고, 미워할 만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일에 해롭기 때문이니 미워하지 않으면서 물리쳐 내치면 반드시 일을 해치게 된다. 지위가 있는 사람은 직임(職任)으로 일(事)을 삼고, 직위가 없는 선비는 도학으로 일을 삼고, 범민(凡民)은 농업이나 공업이나 상업으로 일을 삼는다. 그러나 일용상행(日用常行, 일상적인 삶의 행위)이나 사람을 기다려서 성사할 수 있는 것(인간관계)에 이르러서는 귀천과 노소할 것 없이 모두 여기에 종사하는 것이니, 일(각자의 삶과 연관된 이해관계)에 따라 좋아하고 미워함은 절로 법칙이 있다. 사람의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은 각각 같지 않으니, 진실한 것을 숭상하는 사람은 진실한 것을 ..

[고전산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물리(物理)에 순응하여 법칙을 따르는 자는 적고, 언제나 자기 소견을 가지고 조작하여 그림자를 참모습으로, 껍데기를 실질로 아는 자가 많다. 그리하여 얻은 것이 잃은 것을 보상하지 못하고 말이 고상하고 난해할수록 도(道)는 더욱 천해져 고집스럽게 변쟁(辯爭)해도 결론이 정해지지 않으니, 어찌 그 근본에 돌아가 그 도를 세우겠는가?" (최한기, 기측체의/추측록서) 본원(本源)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본원(本源, 사물이나 일따위의 근원)을 확실하게 알면 그것을 고금(옛날이나 지금이나)에 물어도 의심이 없고 천하에 증험해도 어긋남이 없으며, 이것을 구명(究明,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이나 원인 따위를 깊이 따지고 연구하여 밝힘)하면 선에 지나치는 것을 찾으려 해도 그 지나침을 볼 수 없고 또한 부족한 점을 찾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