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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누구인가

두 사람이 똑같이《논어》 한 권을 다 읽었다고 하자. 한 사람은《논어》 전체를 마치 자기 말처럼 전부 외운다. 하지만 막상 어떤 상황에 닥쳐서는 생각과 그 헤아림이 책이 가르치는 바에 미치지 못한다. 그 행동하는 바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읽은 것과 반대로 행동한다.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한 두 장도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 하지만 화나는 일이 생기면, 곧 바로 《논어》에서 읽었던 한 구절을 생각한다. 그래서 말하기를, "《논어》 중에 한 구절이 있다. 그 말을 일일히 다 기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화가 날 때 제멋대로 행동하면 뒤에 반드시 어려움이 있다'는 그런 의미의 말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깊이 반성하여 마침내 화를 참고 분노심을 가라앉혔다. 뜻하지 않는 재물과 마주해서도 마..

섣부른 평가, 조급한 결론

오늘날의 사람들은 사람을 논하고 사건을 논함에 정해진 견해라고는 없고 대부분 성질이 조급하다. 이런 까닭에 오늘은 이처럼 이렇게 이야기하고 내일은 또 저렇게 이야기하면서, 어제 이야기한 것과 어긋난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않는 자도 있다. 어떤 사건의 시비도 시일이 경과하고 여론이 모아지면서 모두 같아진다. 이렇게 되면 조급한 자가 아니더라도 일세의 공론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처음에는 다른 의견이 들려오고, 곧 이어서 거기에 맞장구치는 자가 생긴다. 그러면 며칠 안 지나 시비가 반반이 된다. 그러니 몇 년 뒤엔 정론이 필경 어느 쪽에 속하게 될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맹자께서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어질다고 하거나 모두 불가하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한다’는 교훈을 남기신 까닭이..

말과 글은 끝까지 듣고 읽어봐야

조급한 사람은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이 일하는 것을 보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을 때 모두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의문을 제기하곤 한다. 내가 이미 여기에 대해 논한 적이 있다. 일찍이 이 같은 사람에게 고하여 말했다. “그대가 경전에 통하지 못한 까닭에 이 같은 병통이 있다 .가령 그대가 내개 를 배운다고 치세. ‘맹자께서 평륙(平陸)에 가서 그 대부(大夫)에게 이르기를’이라 한 대목에 이르면 그대는 분명히 ‘평륙’ 대부의 성명은 전해지지 않는가요?‘하고 물을 것이다. 나는 아무 대답 않고 그 아래 글을 읽게 하겠지. ’이것은 거심(距心)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라고 한 대목에 이르게 되면, 그대는 반드시 또 ’이름이 거심이면 성은 뭡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나는 또 대답하지 않고 그 아래 글..

육우당기(六友堂記): 지조를 변치 않는 것들과 벗하다

한산(寒山) 어른 송계신보(宋季愼甫)가 나와는 내외종(內外從)이 된다. 내가 일찍이 그 집에 가보니, 뒤로는 감악산(紺嶽山)을 등지고 앞으로는 큰 들을 임하여 초막집을 한 채 얽어 한가히 휴식하는 곳으로 삼았었다. 그 당명(堂名)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주인이 말하기를, “내가 ‘취한(就閑)’이라 이름하려고 하는데, 미처 써붙이지 못했다.”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한(閑, 고요하고 한가함)은 본디 이 당(堂)이 소유한 것이거니와, 우리 형은 나이 70세가 넘어 하얀 수염에 붉은 얼굴로 여기에서 즐기며 바깥 세상에 바랄 것이 없으니, 어찌 아무 도와주는 것 없이 충분히 그 운취를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보건대, 당 한편에 애완(愛玩)하여 심어놓은 것들이 있으니, 바로 대[竹]와 국화[菊]와 진송(..

귀에다 대고 말하는 까닭

내가 이르기를, “이자현(李資玄, 1061∼1125)으로 말하면 능히 세리(勢利)의 길에 초연하여 몸을 운수(雲水)에 의탁하고 거기에서 일생을 마쳤던 것이다. 퇴계(退溪)는 그를 위해 억울함을 밝혀 주고 그 사실을 영탄(咏嘆, 노래나 시를 지어 탄식함)했으며, 열경(悅卿, 김시습)은 국가 위난을 평정한 세상에서 임금을 섬기지 않았던 뜻을 높이 샀는데, 사실은 동방(東方)의 백이(伯夷)인 것으로, 그의 청고한 풍도와 모범을 남긴 행위는 백세의 스승이 되기에 족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번 길에 그 유적지를 찾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다만 내가 탄 말이 걸음이 더디고 바탕이 둔해서 외삼촌을 따라가야겠기에 마음대로 못하겠네.” 하고, 서로 말이 나쁘다고만 탓했다. 내가 웃으면서, 재상 상진(尙震,1493 ~1..

비슷하면서 진짜는 아닌 것

보원이 하는 말이, "금년 봄부터 큰 새가 어디에서 왔는지 몰라도 산 속에 날아다니고 있는데 생김새는 야학(野鶴) 모양이고 목이 길고 꼬리는 검고 다리는 적색이고 몸은 껑충한데, 사람들이 보고 싶다고 말하면 반드시 제 몸을 돌려가며 보여주고 소리는 학의 소리를 낸다. 아마 선학(仙鶴)인 것으로 지금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고 있지만, 이 산 속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학은 우는 소리가 길고 맑아서 하늘에까지 들린다는 것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시경》에서도, ‘학이 구고에서 우니 그 소리 하늘에까지 들리네’ 했고, 옛날 기록에도 역시 ‘난새와 봉황은 함께 무리 짓고 반드시 지대를 골라서 날며 때가 돼야 울기 때문에 그래서 선금(仙禽)이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

언설(言說): 해서는 안될 말 4 가지

옛날의 도리는 말을 적게 하는 것을 중하게 여겼다. 말이란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적게 하려고 하는 것이겠는가. 말할 만한 것을 말해야 하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지 않아야 할 뿐이다. 따라서 자신을 과시하는 말은 말하지 않아야 하고(矜己之言不可言), 남을 헐뜯는 말은 말하지 않아야 하며(敗人之言不可言), 진실이 아닌 말은 말하지 않아야 하고(無實之言不可言), 바르지 못한 말은 말하지 않아야(非法之言不可言) 하는 것이다. 말을 하는 데 있어 이 네 가지를 경계한다면 말을 적게 하려고 기필(期必,어떤 일을 꼭 이룰 것을 때를 정하여 약속함)하지 않아도 저절로 적게 하게끔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 사람이 말하기를, “군자(君子)의 말은 부득이한 경우에만 말한다(不得已而後言).”..

풍서기(風棲記): 세상 어디서나 바람은 분다

석릉자(石陵子 김매순)가 미수(渼水) 가의 파손된 집을 구해 수리하고서 거기에 거처하였다. 집은 본디 사랑방이 없었는데 중문(中門) 오른쪽에 기둥 셋을 세우고 그 반을 벽을 치고 방을 만들었다. 흙을 발라 놓긴 했지만 잘 고를 틈이 없고 나무는 톱질은 했어도 대패로 다듬을 겨를이 없었다. 기와, 벽돌, 섬돌, 주춧돌, 금속, 철재 등 집에 부속되는 것은 일체의 비용을 덜고 일을 빨리 하여 화려하고 견고한 것은 꾀할 겨를이 없었다. 터는 우뚝하고 처마는 나지막하게 위로 들려 있고 창문 하나에는 종이를 발라 울타리를 겸해 놓아, 바라보면 마치 높은 나무에 지어 놓은 새집처럼 간들간들 떨어질 것만 같다. 일하는 자가, “바깥 문을 만들지 않으면 바람 때문에 고생할 것입니다.”하여, 석릉자가 그렇겠다고 하였으나..

입으로 과장된 말을 하지 않고 손으로 헛된 일을 하지 않는다

지난번 장문의 편지를 보내셨는데 담긴 뜻이 극진하였습니다. 소홀하게 답장하여 바람에 만분의 일도 부응하지 못하였으니, 거칠고 허술함이 스스로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또 보내신 편지는 가득한 수백 글자가 모두 진작하여 스스로 새로워지는 뜻이며 몸으로 터득하여 위로 통달한 공효였으니, 어둡고 나약하여 스스로 폐해 버림을 경계하는 사람에게 거의 수많은 재물을 보내 준 것 이상이었습니다. 다만 일컫는 것이 실상을 벗어나고 비유한 것이 걸맞지 않으니, 안절부절 부끄러운 마음에 차라리 도망가 듣고 싶지 않게 하였습니다. 나는 또한 이 일에 전혀 뜻이 없는 자는 아니지만 뜻을 세운 것이 견고하지 못하고 마음 쓰는 것이 전일하지 못하여 의지할 만큼 힘을 얻은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나이는 먹어 늙고 정신은 혼미하며 식..

응객(應客): 의견의 병(病), 지기(志氣)의 병, 심술의 병

풍서주인(風棲主人 김매순(金邁淳)의 다른 호)이 평소에 사람을 접하는 일이 드물었고 또 사람을 접하더라도 말이 매우 간단하였으며, 시사(時事)를 논하는 일은 특히 크게 금기시하였다. 하루는 손으로 옛날부터 서로 친하였고, 근래에는 요직에 있는 사람들과 익숙한 사람이 길을 지나다가 방문하였는데, 의복과 말과 따르는 종들이 헌출하였다. 이야기하는 사이에 손이 시사를 말하여[言], 주인이 나는 모르겠다고 사절하니, 손이 노하여 말하기를, “예로부터 친하기 때문에 내가 공에게 숨김이 없는 것인데, 어찌 그리 굳이 거절하는가?” 하였다. 주인(김매순 본인)이 부득이하여 물음에 대해 응답하기를 여남은 번 오갔는데, 도리어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 주인이 웃으면서 손에게 말하기를, “공은 맞지 않는 이유를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