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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마음의 밭이 깨끗해야

마음의 밭이 맑고 깨끗해야 바야흐로 책을 읽고 옛 것을 배워도 좋을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의 착한 행위를 보고는 훔쳐다가 그것으로써 사리(私利,개인적인 사사로운 이익)를 건지고, 하나의 착한 말을 듣고는 빌려서 써 단점(短點)을 덮어버린다. 이것은 또한 적에게 병기를 빌려 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대어 주는 것이 된다. 학문을 하는 데는 먼저 옛 성현의 훌륭한 말씀을 받아들일 정성 어린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고요히 마음의 눈을 떠 스스로의 마음자리를 구석구석 둘러보고, 행여 名聞(명문) 利慾(이욕)에 대한 잡초가 뿌리박혀 있지 아니한가 살피며, 깨끗이 쓸고 닦아 비단결 같은 마음의 밭을 이루어놓는 일이다. 그런 뒤에 책을 읽고 옛 성현의 가르침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서, 마음자리..

[고전산문] 가장한 선(善)과 숨은 악(惡) 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악을 듣고서 곧 미워해서는 안 된다. 참소하는 사람의 분풀이가 될까 두려운 것이다. 선을 듣고서 급하게 친해서는 안 된다. 간사한 사람이 몸을 나아감을 꾀할까 두려운 것이다. 몇몇 사람들이 아무개는 나쁜 사람이라고 험담을 하더라도 그 말을 그대로 믿고 그들과 입을 모아 함께 미워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별의 별 참소꾼이 다 많으니 이 틈을 타고 혹 어느 못된 참소꾼이 자기의 사사로운 감정을 풀기 위해서 공연한 사람을 악인으로 몰아 욕을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이 아무개는 착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아 칭찬을 하더라도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성급하게 그와 친하려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출세를 위해서 별 잔꾀를 부리는 간사한 무리들이 많으니 그 가운데는 혹 이름에 출세에 눈이 어두운 간사한..

[고전산문] 선한 생각 속의 흉기

부귀를 가벼이 여겨도 부귀를 가벼이 여기는 마음을 가벼이 여기지 못하고, 명분과 의리를 중히 여기면서도 명분과 의리를 중히 여기는 마음까지 중히 여긴다면, 이는 사물로 치자면 티끌과 먼지를 쓸어내지 못한 것이며, 마음에 있어서는 그 맺힌 것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뽑아서 깨끗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거추장스런 돌을 치우고 나서 오히려 거기에 잡초가 다시 자라날까 두려워해야 한다. 어제의 잘못은 남겨두지 마라. 이를 그대로 남겨두면 뿌리가 타다 남아 다시 싹이 돋아난다. 그리하여 깨끗하지 못한 속된 마음이 다시 자라나서 도리를 추구하는 뜻(理趣)에 끝까지 누를 끼친다. 오늘의 옳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마라. 집착했다가는 찌꺼기가 제거되지 않아 오히려 이취(理趣)가 반전하여 욕심의 뿌리..

[고전산문] 마음에 번민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

수레를 뒤엎는 말(泛駕之馬 봉가지마)이라도 몰아서 빨리 달리게 할 수 있고, 용광로 속에서 뛰쳐나오는 쇠붙이(躍冶之金 약야지금)도 마침내는 주형(鑄型) 속으로 돌아가게 된다. 다만 하나같이 우유(優柔)해서 떨치고 일어나지 않는다면, 문득 몸을 마치도록 하나의 진보도 없을 것이다. 백사(白沙)가 말하기를, “사람이 되어서 병이 많은 것은 족(足)히 부끄럽지 않으나 한평생 병이 없는 것이 나의 근심이라.”하니, 참말로 확실한 말이라 하겠다 몸에 병이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마음에 번민이 없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수레를 뒤엎는 난폭한 말이라도 잘 가르쳐서 길들이면 훌륭한 말이 될 수 있다. 용광로 속에서 튕겨져 나오는 다루기 힘든 질 나쁜 쇠붙이라도 잘 다루기만 하면 마음대로 주형(鑄型) 속에 ..

[고전산문] 마음의 병과 마음의 장애물

욕심나는 대로 달리는 병은 고칠 수 있으나, 이치를 고집하는 병은 고치기 어렵다. 사물의 장애는 제거할 수 있으나 의리의 장애는 제거하기 어렵다. (채근담-160/ 송정희 역, 올재 2012)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병중에는 육체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도 잇다. 그러한 병들의 양태와 종류도 가지가지다. 병을 앓아 본 사람은 육체와 마음이 겪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적절하고 좋은 약을 쓴다면 고칠 수 있는 병이 있는 반면, 백약이 무효인 병도 있기 마련이다. 괴로운 병을 앓더라도 그 원인을 알고 치료할 수 있는 약 혹은 처방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회복의 희망으로 사람은 그 병의 고통을 능히 견뎌낼 수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알수 없어 고칠 수 없는 병만큼 사람을..

[고전산문] 마음을 해치는 좀벌레

이욕(利欲)이 다 마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의견(意見)이 곧 마음을 해치는 좀벌레요, 소리와 색(色)이 반드시 도(道)를 막는 것이 아니라 총명이 곧 도(道)를 막는 울타리와 병풍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흔히 이욕이 사람의 본심을 좀먹는 것인 줄로 안다. 그러나 이욕이 있다고 해서 다 반드시 본심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무서운 것은 자기의 그릇된 의견을 모르고 여기에 집착하여 자기만을 내세우는 것이다. 이 그릇된 의견이야말로 본심의 뿌리를 갉아먹는 마음의 좀벌레인 것이다. 이욕은 사람마다 경계할 줄을 알지만, 한 번 그릇된 의견에 사로잡히고 보면 자신이 미처 깨닫지를 못하니 그래서 더욱 무서운 것이다. 또 사람은 흔히 아름다운 노랫소리와 여색(女色)이 도(道)를 닦는 데 전적으로 방해가..

[고전산문] 사람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

옛날 한(漢)나라의 적공(翟公)이 정위 벼슬을 그만두자, 찾아오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 뒤에 다시 벼슬을 하자 손님들이 다시 찾아오려 하였다. 이에 적공은 그의 집 대문에 이렇게 크게 써 붙였다.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어 보아야만(一死一生일사일생) 사귀던 정을 알 수가 있고(乃知交情 내지교정), 한 번 가난해졌다 한 번 부해져 보아야만(一貧一富 일빈일부) 사귀던 실태를 알 수가 있고(乃知交態 내지교태), 한번 귀한 자리에 있었다가 한 번 천한 신분이 되어보아야(一貴一賤 일귀일천) 사귀던 정이 드러나게 된다(交情乃見교정내현).” 세상에서는 이것을 이야기거리로 삼았었다. 그러나 나는 일찍이 적공의 사람됨을 천박하게 보았다. 이런 까닭에 적공을 찾았던 손님들도 하나같이 비루하고 용렬하기는 하나 적공이 ..

[고전산문]술을 마시다(飮酒)

我不如陶生 나는 도연명보다 못해서世事纏綿之 세상 살아가는 일에 늘 얽매여 있네云何得一適 어떻게 한번이라도 훌훌 털어내고亦有如生時 도연명처럼 살 수 있을까村田無荊棘 한 뙈기의 밭이라도 잡초가 없다면佳處正在玆 그곳이 바로 좋은 곳從心與事往 마음을 따라서 세상 일을 하며 살아도所遇無得疑 마주치는 것마다 더 이상 의심치 않을 것을.偶得酒中趣 가끔은 술 마시는 즐거움이라도 있어空杯亦常持 빈 술잔이나마 들고 다닌다네 -소식(蘇軾) 漢詩, '술을 마시다(飮酒)', 全文*『蘇東坡詩集권35 '和陶飮酒二十首'』

송궁문(送窮文): 가난을 멀리 떠나 보내다

원화 육년 정월 을축날 저녁에, 주인이 하인 성으로 하여금 버드나무를 얶어 수레를 만들고 풀을 묶어 배를 만들게 한 다음, 미수가루와 양식을 싣고서 멍에 밑에 소를 매고 돛대 위에는 돛을 달고 궁귀(窮鬼, 가난귀신)에게 세 번 읍하며 그에게 말하였다.“듣건대 그대에겐 떠나야 할 날이 있다고 합니다. 비루한 내가 감히 갈 길은 묻지 못하겠으나, 몸소 배와 수레를 마련하고 비수가루와 양식도 모두 실어놓았소. 날짜 길하고 시절도 좋은 때라서 사방으로 떠나도 이로울 것이니, 그대는 밥 한 그릇을 먹고 술 한 잔 마신 다음, 친구와 무리들을 이끌고 옛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도록 하오. 먼지 일으키며 수레 달리고 빠른 바람 타고 배 몰아 번개와 앞 다투며 간다면, 그대에게는 머물러 있다는 허물이 없게 ..

사설(師說): 스승에 대하여

옛날의 학자에게는 반드시 스승이 있었으니, 스승이라 하는 것은 도를 전하고 학업과 배움의 방법을 가르쳐 주고 의혹을 풀어주기 위한 방편으로 존재한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아닐진대 누가 능히 배움에 의문과 의심이 없을 수 있으리오. 학업에 있어서 의문을 갖고 의심을 하면서도 스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의혹된 것은 끝내 풀리지 않는다.누구든 나보다 먼저 나서 그 도를 들음이 진실로 나보다 앞선다면, 나는 그를 좇아서 나의 스승으로 할 것이요. 나보다 뒤에 났다 하더라도 그 도를 들음이 또한 나보다 앞선다면 이 또한 나는 그를 쫓아 스승으로 삼을 것이다. 나는 도를 스승으로 삼기 때문에 어찌 그 나이를 따져서 나보다 먼저 나고 나중에 난 것에 연연해하리오. 이런 까닭에 스승을 삼음에는 귀한 것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