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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사람의 근본(原人) / 한유

위에 형상(形象)을 이루어 나타나 있는 것을 하늘이라 하고 아래에 형상을 이루어 나타나 있는 것을 땅이라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생명을 부여 받은 것을 모두 사람(人)이라 한다. 위에서 형상을 이룬 해와 달과 별은 모두 하늘에 해당한다. 아래에 형상을 이룬 풀과 나무와 산과 강 등은 모두 땅에 해당하는 것들이며,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이민족(夷)과 야만족(狄), 온갖 날짐승과 길짐승들(禽獸)은 모두 생명을 부여받은 것들로 사람에 해당한다. 그렇다고해서, 만일 내가 짐승(禽獸)을 사람이라 칭하면 되겠는가? "안 된다"고 할 것이다. 산(山)을 가리키며 “산인가?”라고 물으면 산이라고 말해도 된다. 산에는 풀과 나무와 새와 짐승이 있지만, 이를 모두 포함하여 말할 때는 산(山)이라 표현해도 된다. 그러나..

[고전산문]따라 짖는 개 / 이지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읽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나는 공자를 존경한다. 하지만 공자에게 구체적으로 존경할 만한 어떤 점이 있는지는 잘 몰랐다. 그야말로 난쟁이가 저잣거리의 난장에서 많은 사람들 틈에 끼여 광대놀음을 구경하려 애쓰다가, 사람들이 잘한다고 소리치면, 놀음은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남들이 하는 대로 덩달아서 잘한다고 소리 지르는 격이었다. 이처럼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진실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대었던 것과 다름없었던 까닭이다. 행여 남들이 짖는 까닭을 내게 물어오면 그저 벙어리처럼 멋쩍게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 오호라! 나는 이제야 비로소 공자를 제대로 이해했다. 이제 더 이상 예전..

[고전산문] 국민성을 잃으면 나라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의 유민(遺民) 김택영(金澤榮)은 그 나라의 선달(先達, 벼슬이나 학문이 자기보다 앞선 선배)의 글 중에서 우아하고 바른 것을 모아 ‘여한구가문(麗韓九家文)’이라 이름 짓고, 그의 벗 왕성순(王性淳)에게 주었더니, 왕씨는 다시 김씨가 지은 글을 보태어 십가(十家)로 만들고, 십가의 글 한 편씩을 베껴 장계직(張季直, 장건) 선생을 통해 나에게 서문을 청하였다. 나는 늘 전집을 읽지 않으면 시문을 평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겨우 이 열 편의 글로는 십가의 조예(造詣)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나라 문운(文運)의 성쇠(盛衰) 자취를 볼 수 없음이 더욱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것만 읽고서도 그 나라에 진실로 훌륭한 사람이 있음을 감탄하였고 이 열 편을 통하여 그 나라 사대부의 쌓고 숭상하고 펼..

[고전산문] 참으로 덕(德)이 있어 훌륭한 말을 한다

보내주신 문무순성악사(文武順聖樂辭)와 천보악시(天保樂詩)와 독채염호가사시(讀蔡琰胡笳辭詩)와 이족종(移族從)및 여경주서(與京兆書)를 받았습니다. 막부(幕府)에서 등주(鄧州) 북경(北境)까지의 거리가 모두 500여 리이고, 경자일(庚子日)에 출발하여 갑진일(甲辰日)에 도착하기까지 모두 5일이 걸렸는데, 5일 동안 손으로 피봉을 뜯어 눈으로 보며 입으로 그 시문(詩文)을 읊조리고 마음으로 그 뜻을 생각하노라니, 황공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마치 무엇을 잊은 것처럼 황홀하여, 말을 타는 괴로움도 길이 먼 것도 몰랐습니다. 저 골짜기 물은 깊이가 한 자에 지나지 않고, 작은 토산(土山)은 높이가 한 길도 되지 않으니, 사람들은 가벼이 여겨 함부로 대합니다. 그러다가 태산(泰山)의 높은 절벽에 오르고 대해(大海)..

[고전산문] 재능과 덕의 구분(才德論)

사마광(司馬光)이 말하기를, "지백(智伯)이 망한 것은 재능(才)이 덕(德)을 앞섰기 때문입니다. 재능과 덕은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잘 분별하지 않고서 재능과 덕을 아울러 ‘현(賢, 현명하고 똑똑함)’이라고 통칭합니다. 사람을 잃는 이유는 바로 이때문입니다. 무릇 잘 듣고 잘 살피며 강하고 굳센 것은 재능이라 합니다. 바르고 곧은 것에서 치우침이 없이 조화를 이루며 화합하는 것(中和)을 덕(德)이라고 합니다. 재능은 덕의 바탕입니다. 덕은 재능을 이끄는 장수(將帥)의 역할을 합니다. 운몽(雲夢)의 대나무는 천하에 강한 것이지만, 구부리고 펴고 다듬어 거기에 깃털과 화살촉을 달지 않으면 단단한 것을 뚫고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당계(棠溪)의 무쇠는 천하에 날카로운 것이지만, 거푸집에 ..

[고전산문] 호랑이에게 무늬가 없다면 그 가죽은 개가죽과 다름없다

성인의 글(聖賢書辭 성현서사)을 “문장(文章)”이라 총칭하니, 이는 글에 “문채(文采)”가 있음이 아니고 무엇이랴? 무릇 물의 속성이 텅빈 것처럼 투명해 보이나 잔물결이 일고, 나무의 몸체는 충실하여도 꽃이 피어나니 이는 형식이 내용에 종속됨을 말한 것이다. 호랑이와 표범에 무늬가 없다면 그 가죽은 개나 양의 것과 같을 것이다.(虎豹無文 則鞹同犬羊 호표무문 즉곽동견양). 코뿔소에게도 가죽이 있어서 색채에 붉은 칠감이 필요하니 이는 내용에 형식이 갖추어야 함을 뜻한다. 이처럼 인간의 정신을 풀어내고 사물의 형상을 그려내자면 문자 속에 마음을 새기거나 종이 위에다 말을 엮어 짜야한다. 그리하여 표범의 털빛과 같은 화려한 무늬를 드러내는 것을 가리켜 문채(文采)라 이름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문장을 구성하는 방법..

[고전산문] 문장을 조직(附會)하는 방법

무엇을 '문장의 조직(附會,부회)'이라 하는가? 문장의 조리를 체계화하여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을 서로 뜻이 통하게 하고 첨삭할 것을 정하고 서로의 경계부분을 융합시켜서 한 편의 작품으로 꾸미되 복잡한 요소가 지나치고 어긋남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집을 지을 때 반드시 기초를 튼튼히 구축하고 옷을 지을 때 바늘과 실로 잇는 것과 같다. 재능 있는 아이가 문장을 배울 때에는 마땅히 문장의 체제를 바르게 해야 한다. 반드시 감정과 사상을 문장의 중추로 삼고 소재를 골격으로 하며 언어의 수식을 피부로 하고 운율의 배치를 소리의 기운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한 뒤에 수사의 종류를 정하고 음악성을 배려하며 사용한 요소에 첨삭을 가해서 균형이 잡힌 형태로 다듬어가는 것, 이것이 '생각을 문장으로 엮는 원칙(..

[고전산문] 섭공호룡(葉公好龍): 실상은 진짜보다 사이비를 더 좋아하다

공자의 제자인 자장(子張)이 노(魯)나라의 애공(哀公)을 찾아갔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애공은 자장을 만나주지 않았다. 기다림 끝에, 자장은 애공의 하인에게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저는 왕께서 인재(人材)를 좋아하신다는 말을 듣고, 천리길을 멀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험하고 먼 길을 서리와 이슬, 티끌과 먼지를 무릅쓰고, 굳은살이 박이도록 쉬지 않고 걸어서 왕을 뵈러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주일이 지나도록 왕을 만나 뵐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왕께서 인재를 좋아하신다고 하는 말은 사실과 다른 것 같습니다. 이는 섭자고(葉子高)가 용(龍)을 좋아하는 것과 아주 비슷합니다(君之好士也, 有似葉公子高之好龍也). 섭자고는 용을 좋아하여 허리띠에도 용을 새겨 넣고, 도장에도 용을 새겨 넣고, 집의 온갖..

[고전산문] 위선은 악행보다 나을 것이 없다

♣악을 하되 두려운 줄을 알면 착한 길로 들어설 여지가 있고, 선행을 하되 위선에 흐르면 선 속에 악의 뿌리가 자란다. 세상에는 악한 짓을 하면서도 조금도 남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전혀 구제 받을 길이 없다. 그러나 악한 짓을 하면서도 남이 알까봐 몹시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악한 짓을 하기는 하되 그 가운데 한 줄기 양심의 빛이 남아 있으니, 그래도 착한 길로 들어설 여지가 있어 좋다. 반면에 세상에는 착한 일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착한 일을 하면서 그것을 행여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가 하여 애를 태우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 착한 일을 하기는 하되, 마음 가운데 공명심이 자리 잡고 있으니, 착한 체 하는 마음, 곧 이것이 악..

[고전산문] 서로 미루고 헤아려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일

사람들이 살아가는 개개인들의 형편과 사정들을 보면, 모든 것을 다 갖춘 이도 있고 또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이는 각각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시시각각 또 달라진다. 그럼에도 어찌하여 자기 혼자서만 모든 것을 다 갖추기를 바라겠는가? 또 자기 심정의 흐름을 보더라도 순리를 따를 때도 있고 마음과는 달리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이렇듯 자신의 마음마저 한결같지 않은 것임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다른 사람을 자신의 마음먹은대로 순하게 따르게 바랄 수 있겠는가? 이로써 서로 미루어 보고 또 헤아려 균형와 조화을 이루어 나가는 일은 세상을 편리하고 이롭게하며 살아가는 한 방법일 것이다.(채근담 53) -홍자성(洪自誠 1593~1665), '채근담(菜根譚)' 중에서( ※올재 '채근담' 송정희역을 참조하여 나름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