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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서기(風棲記): 세상 어디서나 바람은 분다

석릉자(石陵子 김매순)가 미수(渼水) 가의 파손된 집을 구해 수리하고서 거기에 거처하였다. 집은 본디 사랑방이 없었는데 중문(中門) 오른쪽에 기둥 셋을 세우고 그 반을 벽을 치고 방을 만들었다. 흙을 발라 놓긴 했지만 잘 고를 틈이 없고 나무는 톱질은 했어도 대패로 다듬을 겨를이 없었다. 기와, 벽돌, 섬돌, 주춧돌, 금속, 철재 등 집에 부속되는 것은 일체의 비용을 덜고 일을 빨리 하여 화려하고 견고한 것은 꾀할 겨를이 없었다. 터는 우뚝하고 처마는 나지막하게 위로 들려 있고 창문 하나에는 종이를 발라 울타리를 겸해 놓아, 바라보면 마치 높은 나무에 지어 놓은 새집처럼 간들간들 떨어질 것만 같다. 일하는 자가, “바깥 문을 만들지 않으면 바람 때문에 고생할 것입니다.”하여, 석릉자가 그렇겠다고 하였으나..

입으로 과장된 말을 하지 않고 손으로 헛된 일을 하지 않는다

지난번 장문의 편지를 보내셨는데 담긴 뜻이 극진하였습니다. 소홀하게 답장하여 바람에 만분의 일도 부응하지 못하였으니, 거칠고 허술함이 스스로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또 보내신 편지는 가득한 수백 글자가 모두 진작하여 스스로 새로워지는 뜻이며 몸으로 터득하여 위로 통달한 공효였으니, 어둡고 나약하여 스스로 폐해 버림을 경계하는 사람에게 거의 수많은 재물을 보내 준 것 이상이었습니다. 다만 일컫는 것이 실상을 벗어나고 비유한 것이 걸맞지 않으니, 안절부절 부끄러운 마음에 차라리 도망가 듣고 싶지 않게 하였습니다. 나는 또한 이 일에 전혀 뜻이 없는 자는 아니지만 뜻을 세운 것이 견고하지 못하고 마음 쓰는 것이 전일하지 못하여 의지할 만큼 힘을 얻은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나이는 먹어 늙고 정신은 혼미하며 식..

응객(應客): 의견의 병(病), 지기(志氣)의 병, 심술의 병

풍서주인(風棲主人 김매순(金邁淳)의 다른 호)이 평소에 사람을 접하는 일이 드물었고 또 사람을 접하더라도 말이 매우 간단하였으며, 시사(時事)를 논하는 일은 특히 크게 금기시하였다. 하루는 손으로 옛날부터 서로 친하였고, 근래에는 요직에 있는 사람들과 익숙한 사람이 길을 지나다가 방문하였는데, 의복과 말과 따르는 종들이 헌출하였다. 이야기하는 사이에 손이 시사를 말하여[言], 주인이 나는 모르겠다고 사절하니, 손이 노하여 말하기를, “예로부터 친하기 때문에 내가 공에게 숨김이 없는 것인데, 어찌 그리 굳이 거절하는가?” 하였다. 주인(김매순 본인)이 부득이하여 물음에 대해 응답하기를 여남은 번 오갔는데, 도리어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 주인이 웃으면서 손에게 말하기를, “공은 맞지 않는 이유를 아는가?”..

삼한의열녀전서(三韓義烈女傳序):글은 자기 뜻을 드러내는 것

글을 짓는 체가 셋이 있으니, 첫째는 간결한 것이요, 둘째는 진실한 것이요, 셋째는 바른 것이다. 하늘을 말할 때 하늘이라고만 하고, 땅을 말할 때 땅이라고만 하는 것을 간결하다 하고, 나는 것은 물에 잠길 수 없고 검은 것은 희게 될 수 없는 이것을 진실이라 하고,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는 것을 바른 것이라 한다. 그러나 미묘한 마음이 글로써 드러나는 것이니, 글이라는 것은 자기 뜻을 드러내어 남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간결하게 말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말을 번거롭게 하여 창달하고, 진실되게 말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사물을 빌려 비유하며, 바르게 말을 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뜻을 뒤집어서 깨닫게 하니, 번거롭게 하여 창달하는 것은 속됨을 싫어하지 않으며, 빌려..

취묵당기(醉默堂記): 망령된 말을 경계하다

무릇 세상 사람들은 술에 취해 있어도 침묵하지 않고 깨어 있어도 침묵하지 않는다. 이렇듯 말 때문에 재앙에 빠지는 조짐을 경계할 줄 모르니,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진실로 취해있어도 입을 다물어 침묵하고 깨어 있어도 침묵하여 입을 다물어, 마치 병의 마개를 막듯이 하여 일상의 습관으로 삼으면 반드시 재앙의 조짐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서 취해 있어도 침묵하지 않고 깨어나서도 침묵하지 않으면 재앙이 더불어 발생할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으리오. 만약에 취중에 침묵하지 못하고 술이 깬 다음에도 침묵하지 못한다면, 비록 몸이 재야에 은둔하더라도 도성(都城) 안에 거처하면서 말을 삼가지 않는 사람과 그 결과가 똑 같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구당(久堂) 박중구(朴仲久)가 임인년 여름에 네 번이나 ..

백이전의 해석 (伯夷傳解)

백이전은 아직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이 많이 있으니 학사와 대부들이 병통으로 여긴다. 내가 여러 해석한 글을 베껴 그 의문을 풀어 보겠다. “순임금이 농촌에 처한 지 30년 만에 요임금이 천하를 양위하고 순임금이 우(禹)로 하여금 수십 년을 관장하게 하고 공효가 흥한 연후에 천하를 양위하였으니 그 전함이 이와 같이 어려운 것이다.” 논설하는 자들은 “요임금이 천하를 허유(許由)에게 양위하였으나 허유가 받지 아니하였고, 하나라의 때에 미쳐서는 변수(卞隨)와 무광(務光)이 있었다.”라고 하였다. 그 말에 정도의 차이가 크게 있어 흡족치 못하여서 태사공 사마천(司馬遷)이 의심하였으나 그 아버지 태사공 사마담(司馬談)이 기산에 올라 허유의 무덤을 보았다는 것 때문에 믿고는 그 아버지 태사공 사마담(司馬談)의 말을..

독수기(讀數記): 백이전을 11만번 읽다

【이것은 문집 속에 굳이 쓸 것이 아닌데 일부러 기록하였다. 나태한 후손으로 하여금 곳곳마다 보게 하여 선조께서 부지런히 배운 것을 알아 그 만의 한 가지 뜻이라도 계승토록 하고자 한 것이다.】 「백이전(伯夷傳)」은 1억1만3천 번(당시의 1억은 만의 열배, 즉 십만을 의미, 11만3천번)을 읽었고 「노자전(老子傳)」, 「분왕(分王)」, 「벽력금(霹靂琴)」, 「주책(周策)」, 「능허대기(凌虛臺記)」, 「의금장(衣錦章)」,「보망장(補亡章)」은 2만 번을 읽었다. 「제책(齊策)」, 「귀신장(鬼神章)」, 「목가산기(木假山記)」, 「제구양문(祭歐陽文)」, 「중용서(中庸序)」는 1만8천 번, 「송설존의서(送薛存義序)」, 「송원수재서(送元秀才序)」, 「백리해장(百里奚章)」은 1만5천번, 「획린해(獲麟解)」, 「사설..

시능궁인변(詩能窮人辯):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는 것에 대한 논변

옛날 구양영숙(歐陽永叔, 구양수)이 매성유(梅聖兪)의 시를 논하며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시인은 출세한 사람이 적고 궁한 사람이 많다.’라고 하는데,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궁한 사람이라야 시가 공교로워진다(盖非詩能窮人 殆窮者而後工也).”라고 하였다. 매성유는 시에 능하여 세상에 크게 이름이 났으나 그의 지위가 남보다 앞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구양영숙이 이렇게 말하여 해명한 것인데, 이는 마음에 격발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시는 사람의 재주 고하에 따라 성정(性情)에서 발로된 것이므로 지력(智力)으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궁하게 살면서도 잘하는 사람도 있고 높은 지위에 앉아서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궁하게 살면서..

말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글이 되는 것

(상략)글(文)과 도(道, 도리, 이치, 도덕)의 관계를 과연 쉽게 말할 수가 있겠는가. 대저 글과 도는 상호 쓰임이 되니, 이러한 관계를 벗어난다면 그것은 글이 아니다. 삼대(三代) 이전에는 이러한 도가 크게 행해져서 글은 곧 말이요 말은 곧 법이었으며 법은 곧 말이요 말은 곧 글이었으니, 《서경(書經)》의 전(典)ㆍ고(誥)ㆍ모(謨)ㆍ훈(訓)이 모두 이러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삼대가 쇠하고 나서는 도(道)가 위에 있지 않게 되었으므로 우리 공자(孔子)께서 하늘이 내신 성인의 자질을 가지고 몸소 전술(傳述)하고 창작(創作)하는 일을 맡으셨다. 그리고 예컨대 “글을 지을 때에는 성실함에 입각해야 한다.(修辭立其誠)(주역/건괘(乾卦) 문언(文言))”라든가, “말은 의미를 통하게 하면 된다.(辭達而已矣)”(논..

사람닭

사람으로서 닭과 같은 짓을 하는 사람닭(인계설 人雞說) 이웃집에서 닭을 기르고 있는데, 그 닭이 자신의 새끼 닭을 몹시 사랑하여, 혹 자신의 어미 닭에게서 먹이를 빼앗아다가 자신의 새끼 닭에게 먹이기도 하였다. 그 다음해에 그 새끼 닭이 자라나서 다시 또 병아리를 깠다. 그러자 그 새끼 닭도 역시 자신이 깐 병아리를 사랑하기를 그의 어미 닭이 자기를 사랑하듯이 하였다. 어느 날 그 어미 닭이 부엌 부뚜막 위에 흘려져 있는 밥알을 발견하고 쪼아 먹으려고 하였다. 그때 그 새끼 닭이 달려와서 그 어미 닭과 싸워 밥알을 빼앗아다가 자기가 깐 병아리에게 먹이기를, 마치 작년에 그의 어미 닭이 자신에게 먹이기 위하여 자신의 어미 닭과 싸우듯이 하였다. 내가 그것을 보고는 탄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