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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에게서 배우는 지혜

암탉이 둥지에 있는데 한쪽 눈이 멀었다. 오른쪽은 눈동자가 완전히 덮였지만 왼쪽 눈은 감기지 않아 약간 사팔눈이었다. 낟알이 그릇에 가득 차 있지 않으면 쫄 수 없고 다녔다 하면 담장에 부딪혔다. 우왕좌왕하면서 슬슬 피하기나 하니 모두들 이 닭은 새끼를 기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날이 차서 병아리가 나왔기에 뺏어다가 다른 닭에게 주려고 하였는데 가엾어서 차마 그러지 못하였다. 얼마 지나서 살펴보니 달리 하는 일도 없이 항상 섬돌과 뜰 사이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는데, 병아리는 어느새 자라나 성장해 있었다. 다른 어미 닭을 보니 거의 상해를 입거나 잃어버리거나 해서 혹 반도 남아 있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 닭만 온전하게 둥지를 건사하였으니 어째서인가? 무릇 세상에서 잘 기른다는 것은 두 가지이다. 먹이..

소인의태(小人意態):소인의 생각과 행동

소인의 생각과 행동은 여자와 같다. 여자는 밤낮으로 생각하는 것이 얼굴 모습을 예쁘게 꾸미려는 것에 지나지 않아 머리에는 가발을 쓰고 낯에는 분과 기름을 바르는데, 이는 자기 눈에 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이다. 남들이 이 모습을 보고 모두 예쁘다 칭찬하고 부러워하면 아양떠는 웃음과 부드러운 말씨로 앞뒤를 재면서 스스로 만족하게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큰 수치로 생각한다. 대개 소인들은 자기 집에서는 험한 음식도 배부르게 먹지 못하고 남을 대할 때 떨어진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면서 혹 저자에 나갈 때면 반드시 좋은 의복을 입으려 하여 심지어 이웃집의 의복을 빌어 입고 남에게 뽐낸다. 혹 자기보다 더 낫게 입은 사람을 만나면 자기의 옷차림이 그만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 비록 집안 ..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까닭

듣지 못하는 것을 귀머거리, 보지 못하는 것을 소경이라 하는데, 이것은 천벌[天刑]이지만,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면 귀머거리ㆍ소경과 뭐 다르겠는가? 이런 자를 남들이 귀머거리와 소경이라고 하나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니 그 병통이 너무나 심하다. 비록 보고 들으려고 해도 형체와 소리가 멀리 막혀서 그 총명을 쓸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모두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진실로 정성만 있다면 또한 형체와 소리 밖의 것도 보고 들을 수 있는데, 사물(事物)의 진가와 길흉이 어찌 신령하고 미묘한 마음을 막아 가릴 이치가 있겠는가? 옛날에 아주 큰 귀머거리와 소경이 있었으니 걸(桀)과 주(紂)란 자이다. 처음에는 용봉(龍逢)과 비간(比干) 같은 충신이 있었으나 오히려 그들의 간하는 것..

마땅히 해야할 바를 외면해선 안된다

어린아이가 위태로운 때를 당하면, 그의 부모로서는 그를 구하기에 급급하여 어떠한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아무리 물불에 빠지는 위험이 뒤따른다 할지라도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강구할 뿐이요, 반드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하여, 가만히 앉아 죽는 것을 지켜보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느 곳을 꼭 가려고 할 때, 차가 있으면 차를 타고 갈 것이고, 차가 없으면 말을 타고 갈 것이고, 말이 없으면 도보(徒步)로 달려갈 것이고, 앉은뱅이일 경우에는 포복(匍匐)을 해서라도 갈 것이다. 일단 간다고 마음먹었다면 어찌 끝내 못할 리가 있겠는가? 지금 시기가, 백성이 한창 고난에 빠져서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보다 더 위태로운 형편인데,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방법이 없다고 ..

충신은 자신을 희생한다

사람이 병이 들려면 반드시 고기도 맛있지 않고, 나라가 망하려면 반드시 충성(忠誠)으로 간하는 말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吳) 나라가 망할 때에 먼저 공손성(公孫聖)을 죽였고, 백제(百濟)가 망할 때에 먼저 성충(成忠)을 죽였던 것이다. 그 임금을 간할 때는 나타나지 않은 자취를 미리 말하는 것인데, 임금은 어두워 앞을 내다보지 못하므로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죽이고서도 애석히 여기지 않는다. 후세 사람들이 볼 때에는 괴상히 여겨 탄식하지 않는 자가 없으나, 그 당시에 있어서는 형세와 광경이 반드시 시비의 참된 것에 미혹된 바가 있은 것이다. 사가(史家, 역사를 기록한 사람)들이 말한 것은 다만 한 편의 의론만을 내세운 것이요, 그 동(東)을 끌어대고 서(西)에 번쩍하며 참된 것을 현란..

교사(驕奢): 교만과 사치

귀히 되면 교만하지 않으려고 해도 교만이 절로 생기고, 부하게 되면 사치하지 않으려 해도 절로 사치하게 된다. 주(紂)가 상저(象箸, 상아로 만든 젓가락)를 만들었을 때, 기자(箕子)가 탄식한 것은 궁실(宮室)과 여마(輿馬, 왕이 타는 수레와 말)의 사치에 조짐이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가령 주가 마음대로 하도록 버려 두었다 하더라도 후세의 임금들과 비교하여 주의 사치가 미치지 못함이 있었을 것이다. 자공(子貢)은 “주의 악(惡)*이 이렇게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였고, 맹자도 “나는 무성(武成 《서경》 편명)에 대해서 두서너 대문만 취할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로 본다면 모든 악명(惡名)이 돌아가는 사람에게 무슨 말인들 이르지 않겠는가? 지금 사람도 나라를 멸망시킨 임금을 논할 때면 반드..

조선사군(朝鮮四郡)

한(漢) 나라가 조선(朝鮮) 땅을 빼앗아 사군(四郡)을 만들었으니, 사군은 본디 우리나라에 속한 것이다. 위(魏) 나라의 관구검(毌丘儉)이 현도(玄菟)에서 나와 고구려를 침범하자 왕이 옥저(沃沮)로 달아났다. 위 나라 장수가 숙신(肅愼) 남쪽 경계까지 추격하여 돌에 공적을 새겨 기록했다. 또 환도(丸都)를 무찌르고, 불내성(不耐城)에다 공적을 새기고서 낙랑으로부터 물러갔다. 환도는 국내성(國內城)인데, 병란을 겪어서 다시 도읍할 수 없었으므로 마침내 평양성(平壤城)으로 옮겼으니, 평양은 왕검성(王儉城)이다. 환도는 압록강 서쪽에 있는데, 현도로부터 나와 낙랑으로부터 물러갔으니, 두 군(郡)이 요동(遼東)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통고(通考)》에, “조선은 진번(眞番)을 역속(役屬 복속)시켰다.” 했으며..

개의 본성

옛날 예양(豫讓)이 조 양자(趙襄子)에게 죽음을 당한 것을 두고 선유(先儒)들은 조 양자가 예양을 죽여서는 안 되었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양은 양자에게 반드시 원수를 갚고자 하여 다섯 차례 복수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그의 의지는 원수를 갚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양자는 그를 의롭게 생각하면서도 죽였으니, 죽이지 않으면 또한 끝내 자신이 화를 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닥친 환란을 피하기 위해 의로운 선비를 차마 죽였으니, 사사로움을 좇아 도리를 저버렸던 것인가? 의리로 볼 때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겠다. 지금 만약 두 군대로 하여금 서로 싸우게 하면 목숨을 걸고 사지(死地)에 들어가 상대의 장수를 베고 상대의 군주를 사로잡는 것은 ..

진짜와 가짜는 뒤섞여 있기 마련이다

근거 없는 말을 믿고 임시변통하는 폐단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욱 심합니다. 비록 제멋대로 글을 지어 고인(古人)을 비방하는 자들과는 수준이 다르지만, 비난을 두려워 피하면서 시류(時流)에 따라 세상에 아첨하는 데서 오는 폐해는 더욱 심하니, 결국 경술(經術, 유학의 경서經書를 연구하는 학문, 즉 성인의 말씀을 연구하는 학문)이 어두워지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만약 한 세대에 제대로 된 학문이 없다면 이러한 부류가 학문을 창도(倡導 어떤 일을 앞장서서 주장하고 부르짖어 사람들을 이끌어 나감)할 것입니다. 성인(聖人)이 미워하는 부류는 무엇보다도 향원(鄕愿)입니다. 옳은 것 같지만 실제는 그르고 행동이 모호한 자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심술(心術)의 적(賊)은 살피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책을 저술하는..

겉과 속을 서로 바르게

겉과 속을 다같이 수양해야 하지만 속을 더 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러나 속이란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란 형상이 없어서 쉽게 잡아 지킬 수 없는 까닭에 성인(聖人, 공자)이 안연(顔淵)을 가르칠 때 사물(四勿)*에 지나지 않았으니, 다만 시(視, 보는 것)ㆍ청(聽, 듣는 것)ㆍ언(言, 말고 표현하는 것)ㆍ동(勳, 실행하고 지키는 것)에 공부를 더하도록 하였다. 이 시ㆍ청ㆍ언ㆍ동이란 것은 겉으로 하는 행동이다. 겉을 바르게 하면 속도 역시 바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자(程子)가 이 사물잠(四勿箴)을 짓는 데에도 역시 이와 같이 하였다. 시잠(視箴)에는 “보는 것을 법으로 삼아야 한다.” 청잠(聽箴)에는 “간사한 생각을 막고 성실한 마음을 길러야 한다.” 언잠(言箴)에는 “말을 입밖에 낼 때 조급하고 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