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고전산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하여

선인들의 문자(글, 저술, 저서, 첵 등등)에도 직접 본 것과 못 본 것,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구분이 있다. 본 것과 아는 것에 대해 쓴 문자에도 오히려 후인들이 이해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모르거나 보지 못했던 문자에 대해서는 반드시 사류(事類, 사실적인 사례)를 널리 인용하고 전언(前言, 옛 사람이 한 말)을 많이 원용하여 문자로써 앎을 삼고 언어로 본 것을 삼고 있다. 후세의 초학들이 공부를 시작할 때 대부분 이러한 문자에 따르게 되므로 작자가 직접 보지 않았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연연하여 볼 수 있는 단서를 구하며, 작자가 모르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알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허욕과 망상이 여기에서부터 생기게 되고 견강 부회(牽強附會, 이치에 맞지 않는 말..

[고전산문] 두 종류의 귀머거리

모태(母胎)에서 태어날 때부터의 천성적인 귀머거리는 사람의 말도 물체의 소리도 들을 수 없으니, 적막한 천지요 들리는 것 없는 세계이다. 다른 사람편에서 보면,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없는 자는 불치의 병신이라 하여 푸대접하나, 사랑과 동정이 있는 이는 불쌍하게 여기고 그를 위해 답답해 하며 이르기를 ‘부모 형제의 말을 어떻게 들으며 물명(物名)이나 글자를 무엇으로써 배우느냐?’고 한다. 사람의 모양을 하고서도 사람의 행동을 못하고, 모든 감각 기관을 갖고도 그 때문에 모두 쓰지 못하게 된다. 귀머거리 쪽에서 보면 ‘사람은 원래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입으로 먹고 마시며, 대소변을 배설하고, 손으로 잡으며, 발로 다니니, 여느 사람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갖추고 있는 ..

[고전산문] 뜻이 같고 도가 합치되면 어울리고 다르면 공격한다

뜻이 같고 도(道)가 합치되면 서로 이끌어주는 보탬을 기뻐할 것이고, 뜻이 같지 않고 도가 합치되지 않더라도 서로 탁마(琢磨)하는 공(功)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로 이끌어주면서 애호의 정을 두는 것은 좋으나 과실을 감추고 잘못을 꾸며주는 습관을 들여서는 안 되며, 서로 탁마하면서 오직 좋은 것을 취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좋으나 처음부터 배척하고 거절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 무릇 예나 지금이나 학문이 같으면 어울리고 다르면 공격하는 자는 단지 학문함에 있어 스스로가 초라하고 치우친 점만을 보여줄 뿐, 절대 긍정이나 절대 부정을 넘어서는 넓은 아량은 가지고 있지 못한다. 학문의 본원(本源)을 천인(天人)의 경상(經常)*에 두어 위배하거나 넘어설 수 없게 한다면, 남이 공격한다 해서 근심할 것이 없..

[고전산문] 드러나 있는 것을 살펴서 안에 있는 애매한 것을 헤아린다

사람이 측인(測人, 사람을 헤아리는 것)에 대해 신중하지 않고 손쉽게 여기는 자가 있다. 한 가지 측인하는 말을 들으면 천고(千古)에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한 가지 측인하는 일을 보면 만성(萬姓)이 모두 같다고 여기며, 혹 한 말이라도 우연히 맞는 것이 있으면 기뻐서 견디지 못하고 맞지 않음이 있으면 버려두고 드러내지 않으니, 이는 변통에 통달하지 못한 헤아림이다.(중략)-'맞지 않음을 알면서 측인하는 것'(知不合而測人)- 뜻을 가슴 속에 품어 스스로는 비밀로 여기는 사람이라도 측인을 잘하는 사람은 그 행동과 기색을 바르게 관찰하여 반드시 알 수 있으니, 이것은 그 사람의 뜻이 밖으로는 반드시 일의 기회를 보는 것이 있고, 안으로는 반드시 일의 기미(機微)를 은연중에 추산하는 것이 있어, 말하지..

[고전산문]마음은 소리로 발하고 노래나 글로 표현된다

마음에 감동된 기(氣)가 구멍으로 나와 소리를 이루고, 사리(事理)의 용출(湧出, 치솟아 나옴)하는 소리가 말이 되고, 말이 장(章)을 이룬 것이 글(文)이 되니, 그 말을 듣고 그 글을 읽으면 그 마음에 온축(蘊蓄, 마음속에 깊이 쌓아둠)한 것을 헤아릴 수 있다. 싫어함이 간절하여 소리로 발한 것이 곡(哭)이고, 좋아함이 깊어 소리로 발한 것이 노래가 되니, 노래와 곡을 들으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의 천심(淺深, 깊고 얕음)과 성위(誠僞, 진정성과 꾸밈, 즉 거짓)를 분별할 수 있다. 일찍이 헤아린 바가 있는 것은 그 후에 비슷한 기미(낌새나 조짐)를 만나면 감동하는 것이니, 만약 전일에 헤아린 바가 없으면 어찌 제거(提擧, 어떤 문제에 대하여 말을 꺼냄)하는 것도 없이 발하겠는가? 감동하는 데 미쳐서..

[고전산문] 도둑질 하는 자

절도나 강도가 어찌 빈궁한 사람 중에만 있겠는가? 부귀한 사람 중에도 있다. 가난한 사람은 굶주리다 못하여 밤중에 남의 집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곡식이나 돈을 훔치다가 인기척을 들으면 깜짝 놀라 얼른 피신한다. 그러나 부귀한 사람은 탐욕에 빠진 나머지 위세(威勢)를 빙자해서 선량한 사람을 능멸해 대낮에 수많은 재물을 강탈한다. 그 정상(情狀, 있는 그대로의 사정과 형편)을 논할 것 같으면, 가난해서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오히려 불쌍한 생각이 들지만, 부귀한 사람의 강탈은 엄한 벌로 다스려야 할 것이나 그 위세를 두려워하여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온 나라 백성들의 마음에는 이런 자를 엄한 벌로 다스리기를 바라는데, 이것을 어찌 얼굴만 보고 다 알 수 있겠는가? 또 세상을 속여 이름을 도둑질하는 자..

[고전산문] 허위의 학문은 세상의 어리석은 자를 속일 뿐

실제 일로 세상을 속인다면 사람들이 다 믿지 않지만, 허위(虛僞)의 일로 세상을 속이면 아는 자는 믿지 않더라도 모르는 자는 믿으니, 성실의 학문은 세상을 속일 수 없으나 허위의 학문은 세상의 어리석은 자를 속일 뿐이다. 깜깜하게 어두워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혼자만 안다고 하고, 황홀하여 준칙(準則)이 없는 것을 헛된 즐거움으로 삼으면, 사세가(일이나 형편, 상황을 헤아리는데 있어서) 반드시 옛사람을 인용(引用)하여 방금 사람의 일은(현재의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형편은) 살피지 않고, 말마다 반드시 옛글을 일컬어(들먹이고 판단하여) 방금의 운화(세상의 다양한 상황들과 요소와 변수들이 현재의 일에 상호 간섭하고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것)를 알지 못한다. 스스로 옛사람에게 속임을 당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마..

[고전산문] 부귀와 빈천

부귀를 높이고 빈천을 낮추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보편적인 마음이다. 부귀를 싫어하고 빈천을 즐기는 것은 궁핍하고 가난한 선비가 마음에 가진 뜻을 지키고자 굳세게 다 잡은데서 나오는 격한 감정을 짐작하게 하는 말이다. 보통 사람이면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마음을 선비의 말에 견주어보면, 전자든 후자든 치우치고 막힌 도량을 각각의 마음으로 깨달은 이치라고 스스로 믿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어찌 천하 만물 인생사의 섭리가 끊임없이 상호 순환하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전체적으로 헤아려 보는 것만 하겠는가? 인생의 부귀 빈천은 때에 따라 옮겨지므로, 부귀가 빈천으로 바뀌는 수도 있고 빈천이 갑자기 부귀에 오르는 수도 있으니, 눈앞에 당한 높이거나 낮추는 것은 실로 잠시의 일인데 하필..

[고전산문] ‘귀먹을 농(聾)’ 이란 글자에 담긴 뜻

무릇 ‘농(聾, 귀먹을 농)’이란 한 글자를 사람들은 모두 병으로 여긴다. 그러나 나만은 홀로 아름답게 여기니 어째서인가? 귀가 먹으면 사람들에게 비록 선악과 시비가 있더라도, 나는 들은 게 없는 까닭에 다른 사람에게 말로 전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비록 장단과 득실이 있더라도, 들은 게 없는 까닭에 다른 사람에게 말로 전하지 않는다. 남의 악담과 패욕이 저절로 내 몸에 미치지 못하니, 내 몸은 이 때문에 저절로 편안해지고, 마음도 이 때문에 저절로 바르게 된다. 그래서 거처하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모두 합당하기 마련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남에게 모욕을 당하는 일도 내 입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것이요, 남에게 실패를 당하는 일도 내 혀로 인해 당하는 것이다. ‘농’이란 한 글자를 굳게 지키고 잃..

학문의 방법은 자기에게서 돌이켜 구하는 것일 뿐

맹자가 말했다. “학문의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자기에게서 돌이켜 구하는 것일 뿐이다.” 오늘 한 마디를 읽으면 반드시 이와 같이 하고, 내일 한 사람을 보면 반드시 이처럼 한다. 또 이튿날 한 가지 일을 들으면 꼭 그렇게 한다. 읽은 책이 나날이 더 많아지고 세상에서 듣고 본 것이 날로 더욱 넓어지면 고금과 천하의 좋은 점이 모두 내게 갖추어져서, 고금과 천하의 악함은 터럭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옛날에 위기지학(爲己之學), 즉 '자기를 위한 학문'이라고 일컬었던 것은 이 방법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성인이 거룩하게 된 까닭은 이것을 모았기 때문일 뿐이다. 군자는 배움에 있어 힘 쏟지 않는 곳이 없다. 하지만 반드시 중점을 두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거두는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