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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바가 적으면 괴상한 것이 많다

계서(季緖) 유협((劉勰, 465년~521년, 중국 남조시대 양나라의 문학자, 최초의 문학비평서라 할수 있는 문학이론과 평론의 고전 '문심조룡'의 저자)은 작가의 반열에 들지도 못했으면서 남의 글 헐뜯기를 좋아하여 당세 거공들의 비웃는 바가 되었다. 대저 다른 사람의 글을 망령되이 헐뜯어서는 안 된다. 그 편장과 체제, 자구와 색상이 갑자기 내 안목을 놀래키는 것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쉽게 평을 내려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읽은 책을 내가 다 읽은 것이 아니고, 내가 읽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이 다 읽지 않은 것도 아니다. 저 사람이 비록 명성이 낮고 배움이 부족하더라도 간혹 어쩌다 내가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을 알 수도 있거늘 하물며 박식하기가 나보다 나은 사람일 경우이겠는가? 인품의 높고 낮음과 문사..

재주는 부지런함만 못하고 부지런함은 깨달음만 못하다

사람이 아이 적에 책을 두세 번만 읽고도 곧바로 외우거나, 또 간혹 7, 8세에 능히 시문을 지어 입만 열면 그때마다 남들을 놀라게 하다가도 정작 나이가 들어서는 성취한 바가 남보다 특별히 나은 점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똘똘한 재주가 쉬지 않는 부지런함만 못함을 알게 되었다. 또 불을 밝혀 새벽까지 쉬지 않고 애를 쓰다가 흰머리가 흩날릴 지경이 되었는데도 스스로 일가의 말을 이루지 못하는 자가 있으니 그 까닭은 어째서일까? 겨우 백여 권의 책을 읽고도 붓을 내려 종이에 폄에 쟁그랑 소리를 내며 환히 빛나, 만 권을 외운 자가 뒤에서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한다. 똑같이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사람은 한 글자도 남김없이 외웠는데도 식견은 늘지 않고 저작에 볼 만한 것이 없으며, 한 사람은 반 넘어 잊어..

덕이 없어 깨닫지 못하는 것도 있다

지금 사람들은 문학과 사공(事功, 일의 업적, 공적)과 기술 등의 방면에서 남을 헐뜯어 비웃지 않으면, 자기가 익히던 것을 버리고 좋아 보이는 것으로 옮겨가곤 한다. 둘 다 잘못이다. 자기에게서는 좋은 것을 가려서 굳게 지키고, 남에게서는 장점을 취해 아울러 받아들이니, 이를 일러 군자라 한다. 세상에 기뻐할 만한 사람이 많으면 이는 내 덕이 날로 진보하는 것이고 천하에 미워할 사람이 많으면 이는 내 덕이 날로 줄어드는 것이다. 이것은 소식(蘇軾, 소동파)의 「강설剛說」에 나오는 격언이다. 내가 일찍이 스스로 내 마음에 시험해보았지만, 끝내 절실하게 깨닫지는 못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면 점점 인정함이 많아지고 배척함이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어찌 내 문장의 경지가 거칠게나마 예전보..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누구인가

두 사람이 똑같이《논어》 한 권을 다 읽었다고 하자. 한 사람은《논어》 전체를 마치 자기 말처럼 전부 외운다. 하지만 막상 어떤 상황에 닥쳐서는 생각과 그 헤아림이 책이 가르치는 바에 미치지 못한다. 그 행동하는 바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읽은 것과 반대로 행동한다.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한 두 장도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 하지만 화나는 일이 생기면, 곧 바로 《논어》에서 읽었던 한 구절을 생각한다. 그래서 말하기를, "《논어》 중에 한 구절이 있다. 그 말을 일일히 다 기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화가 날 때 제멋대로 행동하면 뒤에 반드시 어려움이 있다'는 그런 의미의 말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깊이 반성하여 마침내 화를 참고 분노심을 가라앉혔다. 뜻하지 않는 재물과 마주해서도 마..

섣부른 평가, 조급한 결론

오늘날의 사람들은 사람을 논하고 사건을 논함에 정해진 견해라고는 없고 대부분 성질이 조급하다. 이런 까닭에 오늘은 이처럼 이렇게 이야기하고 내일은 또 저렇게 이야기하면서, 어제 이야기한 것과 어긋난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않는 자도 있다. 어떤 사건의 시비도 시일이 경과하고 여론이 모아지면서 모두 같아진다. 이렇게 되면 조급한 자가 아니더라도 일세의 공론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처음에는 다른 의견이 들려오고, 곧 이어서 거기에 맞장구치는 자가 생긴다. 그러면 며칠 안 지나 시비가 반반이 된다. 그러니 몇 년 뒤엔 정론이 필경 어느 쪽에 속하게 될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맹자께서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어질다고 하거나 모두 불가하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한다’는 교훈을 남기신 까닭이..

말과 글은 끝까지 듣고 읽어봐야

조급한 사람은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이 일하는 것을 보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을 때 모두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의문을 제기하곤 한다. 내가 이미 여기에 대해 논한 적이 있다. 일찍이 이 같은 사람에게 고하여 말했다. “그대가 경전에 통하지 못한 까닭에 이 같은 병통이 있다 .가령 그대가 내개 를 배운다고 치세. ‘맹자께서 평륙(平陸)에 가서 그 대부(大夫)에게 이르기를’이라 한 대목에 이르면 그대는 분명히 ‘평륙’ 대부의 성명은 전해지지 않는가요?‘하고 물을 것이다. 나는 아무 대답 않고 그 아래 글을 읽게 하겠지. ’이것은 거심(距心)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라고 한 대목에 이르게 되면, 그대는 반드시 또 ’이름이 거심이면 성은 뭡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나는 또 대답하지 않고 그 아래 글..

육우당기(六友堂記): 지조를 변치 않는 것들과 벗하다

한산(寒山) 어른 송계신보(宋季愼甫)가 나와는 내외종(內外從)이 된다. 내가 일찍이 그 집에 가보니, 뒤로는 감악산(紺嶽山)을 등지고 앞으로는 큰 들을 임하여 초막집을 한 채 얽어 한가히 휴식하는 곳으로 삼았었다. 그 당명(堂名)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주인이 말하기를, “내가 ‘취한(就閑)’이라 이름하려고 하는데, 미처 써붙이지 못했다.”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한(閑, 고요하고 한가함)은 본디 이 당(堂)이 소유한 것이거니와, 우리 형은 나이 70세가 넘어 하얀 수염에 붉은 얼굴로 여기에서 즐기며 바깥 세상에 바랄 것이 없으니, 어찌 아무 도와주는 것 없이 충분히 그 운취를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보건대, 당 한편에 애완(愛玩)하여 심어놓은 것들이 있으니, 바로 대[竹]와 국화[菊]와 진송(..

귀에다 대고 말하는 까닭

내가 이르기를, “이자현(李資玄, 1061∼1125)으로 말하면 능히 세리(勢利)의 길에 초연하여 몸을 운수(雲水)에 의탁하고 거기에서 일생을 마쳤던 것이다. 퇴계(退溪)는 그를 위해 억울함을 밝혀 주고 그 사실을 영탄(咏嘆, 노래나 시를 지어 탄식함)했으며, 열경(悅卿, 김시습)은 국가 위난을 평정한 세상에서 임금을 섬기지 않았던 뜻을 높이 샀는데, 사실은 동방(東方)의 백이(伯夷)인 것으로, 그의 청고한 풍도와 모범을 남긴 행위는 백세의 스승이 되기에 족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번 길에 그 유적지를 찾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다만 내가 탄 말이 걸음이 더디고 바탕이 둔해서 외삼촌을 따라가야겠기에 마음대로 못하겠네.” 하고, 서로 말이 나쁘다고만 탓했다. 내가 웃으면서, 재상 상진(尙震,1493 ~1..

비슷하면서 진짜는 아닌 것

보원이 하는 말이, "금년 봄부터 큰 새가 어디에서 왔는지 몰라도 산 속에 날아다니고 있는데 생김새는 야학(野鶴) 모양이고 목이 길고 꼬리는 검고 다리는 적색이고 몸은 껑충한데, 사람들이 보고 싶다고 말하면 반드시 제 몸을 돌려가며 보여주고 소리는 학의 소리를 낸다. 아마 선학(仙鶴)인 것으로 지금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고 있지만, 이 산 속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학은 우는 소리가 길고 맑아서 하늘에까지 들린다는 것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시경》에서도, ‘학이 구고에서 우니 그 소리 하늘에까지 들리네’ 했고, 옛날 기록에도 역시 ‘난새와 봉황은 함께 무리 짓고 반드시 지대를 골라서 날며 때가 돼야 울기 때문에 그래서 선금(仙禽)이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

언설(言說): 해서는 안될 말 4 가지

옛날의 도리는 말을 적게 하는 것을 중하게 여겼다. 말이란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적게 하려고 하는 것이겠는가. 말할 만한 것을 말해야 하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지 않아야 할 뿐이다. 따라서 자신을 과시하는 말은 말하지 않아야 하고(矜己之言不可言), 남을 헐뜯는 말은 말하지 않아야 하며(敗人之言不可言), 진실이 아닌 말은 말하지 않아야 하고(無實之言不可言), 바르지 못한 말은 말하지 않아야(非法之言不可言) 하는 것이다. 말을 하는 데 있어 이 네 가지를 경계한다면 말을 적게 하려고 기필(期必,어떤 일을 꼭 이룰 것을 때를 정하여 약속함)하지 않아도 저절로 적게 하게끔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 사람이 말하기를, “군자(君子)의 말은 부득이한 경우에만 말한다(不得已而後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