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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용(庸)이라는 글자에 담긴 '한결같음'의 의미/ 홍석주

용(庸, 떳떳할 용, 쓸 용)과 구(久, 오랠 구)는, '언제나 일정하여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공히 가지고 있다. 이는 그 속성이 변함없이 '한결같음'(常, 항상 상, 떳떳할 상)을 뜻한다. 한결같음(常)의 속성이 바탕이 되어야 오래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래감' (久)의 뜻(訓)이 비로소 통한다. 주역(周易)에 “한결같이 떳떳한 덕(庸德)을 행하고, 한결같이 떳떳한 말(庸言)하기를 힘써 조심하라"(庸德之行 庸言之謹)”는 가르침이 이와 같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중용(中庸)의 덕은 지극하고도 지극하도다"(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라고 하셨다. 용(庸)이 '한결같음(常)'의 뜻을 가졌다는 데에는 다른 논의가 있을 수 없다. 천하 만물을 담고 품어서 태어나 자라게 하는 것은 천지(天地) 대자연의 '한..

[고전산문] 국민성을 잃으면 나라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의 유민(遺民) 김택영(金澤榮)은 그 나라의 선달(先達, 벼슬이나 학문이 자기보다 앞선 선배)의 글 중에서 우아하고 바른 것을 모아 ‘여한구가문(麗韓九家文)’이라 이름 짓고, 그의 벗 왕성순(王性淳)에게 주었더니, 왕씨는 다시 김씨가 지은 글을 보태어 십가(十家)로 만들고, 십가의 글 한 편씩을 베껴 장계직(張季直, 장건) 선생을 통해 나에게 서문을 청하였다. 나는 늘 전집을 읽지 않으면 시문을 평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겨우 이 열 편의 글로는 십가의 조예(造詣)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나라 문운(文運)의 성쇠(盛衰) 자취를 볼 수 없음이 더욱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것만 읽고서도 그 나라에 진실로 훌륭한 사람이 있음을 감탄하였고 이 열 편을 통하여 그 나라 사대부의 쌓고 숭상하고 펼..

[고전산문]정성을 다하여 할말을 분명하게 하되 애매모호하게 해서는 안된다

연와(然窩, 매천의 고모부 최우정(崔遇禎)의 호) 주인은 자신의 움집 이름을 ‘연(然)’으로 명명(命名)한 지 30년이 되었다. 오랫동안 그에 대한 기(記, 옛 문체의 한 형식으로, 어떤 내용의 쓰임에 대한 이유와 배경을 설명한 글)가 없었는데, 늘그막에 그는 스스로 의문을 품기를, ‘움집〔窩 움집 '와'〕이라 한 것은 내가 본래 그렇게 여겨서이지만, 사람들도 기꺼이 그렇게 여길까? 하나라도 그렇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나오면, 장차 따져 묻기를, 「주인이 연(然)이라 한 것은 그런 것을 그렇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하는 것인가? 내가 그렇게 여기기에 남도 그렇게 여기리라 단정하는 것인가?, 아니면 남이 그렇게 여기기에 나도 그렇게 여기고자 하는 것인가? 나는 그렇게 여기지 ..

[고전산문] 시속(時俗)에 아첨하거나 침묵하는 것은 그르다

일은 군자가 행한 것이라고 해서 다 옳다고 할 수는 없으며, 성현(聖賢)이 논정(論定, 토론하여 사물의 옳고 그름을 결정함)한 것이라 해도 다 맞다고 할 수 없다. 대체로 일은 그때그때 벌어지므로 성인이 아니면 진선(盡善, 선을 다함, 온전한 선)할 수 없으며, 그게 지난 일이 되고 나서야 말깨나 하는 선비들도 다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렇기에 종종 그 속내를 따져 보고 그 일을 들추어내어 자초지종을 규명한 뒤에 힘써 최고 극치의 이론(理論)을 펼쳐 옛사람이 다시 살아나도 참견하거나 변명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후세의 선비가 어떤 이의 성공과 실패를 상고하여 논했더라도, 그 말이 성현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하여 다 그르게 여길 수는 없으리라. 나는 《맹자(孟子)》를 읽으면서 백리해(百里奚)의 일을 논한..

[고전산문] 글의 요체는 얽매이지 말되 그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여 깨닫는 것

(상략)삼가 생각건대, 문학(文學)이란 분야는 무엇보다 풍기(風氣,작가가 생존했던 당대의 조류와 역사적 조건, 즉 그 시대의 정치 현실과 역사적 상황)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고금(古今)의 경계(境界)가 매우 분명합니다. 역대의 추앙받는 걸출한 작가들 중에서 한번 살펴봅시다.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의 경우도 각각 그 상황에서 나름의 글을 지었기에 한(漢)나라나 위(魏)나라의 글이라고 해서는 안 되며,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도 각각 그 상황에서 나름의 글을 지었기에 사마천(司馬遷)이나 반고(班固)의 글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따져 보면 이백, 두보, 한유, 유종원이 그 당시에 어찌 옛글에서 법(法)을 취하지 않았겠습니까만, 결국에는 자신의 시와 문을 지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된 것은 하..

[고전산문] 뜻은 추구하되 그 행적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성인(聖人)은 배워서 같아질 수 있는가? 배울 수는 있어도 같아질 수는 없다. 만약에 배워서 모두 꼭 같아지려고 한다면 장차 그 가식(假飾 속마음과 달리 언행을 거짓으로 꾸밈)을 금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배우는 사람은 성인의 본뜻을 구하지 그 행적에는 얽매이지 않는데, 또 어찌 같아지기를 일삼겠는가. 성인을 건성으로 존모하여 멍청하게 그 행적에만 구애된다면 자지(子之)*도 요순(堯舜)과 같아질 수 있으며, 조조(曹操)도 문왕(文王)과 같아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서로 가식으로 이끄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중인(衆人)은 성인과 같아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비록 성인으로서 성인을 배우더라도 같아지기를 추구하지 않는 법이다.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은..

[고전산문] 정부공사 총감독관 강복구(姜福九)씨

(상략) 관직매도가 시작될 때에는 시골 사람들이 재산을 바치고라도 출세를 원했지만, 오랜 시일이 지난 후에는 자주 좋지 않은 일을 보았기 때문에 서로 싫어하였다. 이에 부랑배들은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집안을 망치려고 하고 혹은 그로 인한 이익을 노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강제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관문으로 독촉하는 사례가 매우 엄하였으므로 지방관들은 자기의 상납이 늦을까 두려워서 늑탈한 것에다가 또 자기 재산을 더하여 충당하였다. 이것을 벼락감투(별악감투)라고 한다. 우리말로 풀면 벽력을 벼락(별악)이라 하고, 관리의 모자를 감투(감투)라고 한다. 이것은 한 번 관직에 임명되면 가산을 탕진하는 것이 벼락을 맞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중략) 호서의 어느 강변에 강(姜)씨라는 늙은 과부가 살고 있었..

[고전산문] 속물근성(俗氣)을 치유하는 것은 오직 책밖에 없다

모든 병을 고칠 수 있으나 속기(俗氣 세상시류에 쉽게 요동하고 영합하는 조잡하고 속물적인 기운 또는 마음)만은 치유할 수 없다. 속기를 치유하는 것은 오직 책밖에 없다. 현실 생활과는 거리가 있어도 의기(義氣)가 드높은 친구를 만나면 속물 근성을 떨어버릴 수가 있고, 두루 통달한 친구를 만나면 부분에 치우친 성벽(性癖)을 깨뜨릴 수가 있고, 학문에 박식한 친구를 만나면 고루함을 계몽받을 수 있고, 높이 광달(曠達)한 친구를 만나면 타락한 속기(俗氣)를 떨쳐 버릴 수가 있고, 차분하게 안정된 친구를 만나면 성급하고 경망스러운 성격을 제어할 수 있고, 담담하게 유유자적하는 친구를 만나면 화사한 쪽으로 치달리려는 마음을 해소시킬 수가 있다. 명예심을 극복하지 못했을 때에는 처자의 앞에서도 뽐내는 기색이 드러나..

[고전산문] 인생은 잠시 붙여사는 나그네 삶일 뿐

가지고 있으면서 그 가진 것을 독차지하려고 하는 자는 망령된 자이고, 가지고 있으면서 마치 가지고 있고 싶지 않은 듯이 하는 자는 속임수를 쓰는 자이며,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잃을세라 걱정하는 자는 탐하는 자이고, 가진 게 없으면서 꼭 갖고 싶어하는 자는 너무 성급한 자이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고 있거나 없거나 집착할 것도 없고 배척할 것도 없이 나에게는 아무 가손(加損)이 없는 것, 그것이 옛 군자(君子)였는데, 기재(寄齋) 영감(寄齋 朴東亮 1569-1635) 같은 이는 그에 대하여 들은 바가 있는 이라고 할 것이다. 붙인다(寄, 부칠 기)는 것은 붙여 산다(寓, 머무를 우)는 말이다. 즉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가고 오고가 일정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살고..

[고전산문] 덕(德)을 세우는데에는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이 최상이다

천하의 일을 보건대, 옳은 것이 그른 것으로 변화할 수도 있고 그른 것이 옳은 것으로 변화할 수도 있으며, 은인이 원수로 바뀔 수도 있고 원수가 은인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정상적인 상황에 처해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몸은 적연(寂然,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한 상태로 놔 두어야 하고, 마음은 통연(洞然, 명료하게 투명한 밝은 상태)한 상태로 놔 두어야 하고, 세상은 혼연(混然, 여러가지가 뒤섞인 상태)한 상태로 놔 두어야 하고, 일은 자연적(自然的)인 상태로 놔 두어야 한다.(委身寂然。委心洞然。委世混然。委事自然。) 천명(天命)을 따르고 천도(天道)를 따르고 천시(天時)를 따르고 천리(天理)를 따라야 한다. 천도를 따르면 외물(外物)에 응할 수 있고, 천명을 따르면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