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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명성만으로 호불호가 엇갈리는 속물들에 대하여(倭驢說 왜려설) /조귀명

하생(河生)의 이름은 징(澄)으로 대구 사람이다. 그의 이웃 집에 말이 한 마리 있었는데 모양새가 몽땅하고 왜소하여 타고 다니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내어다 팔려고 하였으나 다리까지 절었으므로 사려는 사람도 없었다. 이에 하생이 300전의 돈을 지불하고 시험삼아 길러보기로 하였다. 해를 넘기자 절던 다리도 나았고 재주도 예사롭지 않은 점이 있었다. 그 말을 타고 서울을 가는데 700리 길을 겨우 4일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무릇 객주(客主)에라도 들게 되면 함께 쉬어 가거나 말에게 먹이를 먹이고 있던 나그네들이 모두들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신기한 구경거리로 여겼다. 어떤 이들은 말이라고 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당나귀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노새와 같이 생겼다고 하였다. 하생에게 진지하게 물어왔으므로 ..

[고전산문] 소인(小人)이 소인됨은 소인 스스로 아는 것 / 김시양

참찬 백인걸(白仁傑)은 늦게 과거에 급제하여 정언(正言, 사간원의 하위 관직, 왕에게 간언하는 간관직책)으로서 창평 현령(昌平縣令)이 되었다. 늙은 어머니를 위하여 날마다 잔치를 베풀어서 드디어 백성을 잘 다스리지 못했다는 나무람을 듣게 되자, 감사 최보한(崔輔漢)이 파면시켰다. 그런데 최보한이 일찍이 백인걸에게 탄핵을 당했으므로 사람들은 대부분 그 보복이라고 말하였다. (참고: 참찬은 국정에서 3 정승을 보좌하는 고위 직책이다. 오늘 날의 국무조정실장에 해당하는 장관급) 인종(仁宗) 서거 당시 최보한은 국상(國喪) 때에 기생을 끼고 놀았다고 하여 죄를 받고 파면되었다. 명종이 즉위하면서 대사령(大赦令)을 내리니, 최보한이 다시 채용되었다. 대간이 그를 탄핵하려고 하니, 백인걸이 그때 헌납(사간원의 관직..

[고전산문] 왜 비슷한 것을 실물의 진짜보다 더 귀하게 여길까? / 김시양

명(名, 평판, 명성, 명예 등등)이란 것은 실(實, 실제를 이루는 근본적인 것)의 손(賓, 손님 즉 실질의 것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거의 다 손(賓)을 귀하게 여기고 실(實)을 천하게 여긴다. 이제 사람이 한 개의 옛 그릇을 얻으면 반드시 굳이 어느 시대의 물건이라고 이름을 붙인 뒤에야 남들이 다 그것을 귀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비록 기와처럼 천한 물건이라도 아름다운 구슬과 동등하게 여긴다. 이제 모래와 돌도 다 혼돈(混沌)의 태초(太初)에 형체가 이루어진 것인데 그것은 귀하게 여기지 않음은 무슨 까닭인가. 사람이 그림을 취하는 것은 그것이 실물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에 괴이하게 생긴 소나무와 이상한 대나무나, 기이한 꽃, 오묘한 풀로 세상에 드문 것도 그다지..

[고전산문]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보다 더 큰 것은 없다 / 유성룡

(상략) 옛날 소동파(蘇東坡)는 일찍이 화(和)와 동(同) 두 글자를 논하기를, “동(同, 한가지, 같음, 함께함, 같은 것들이 무리를 이룸)은 물에 물을 탄 것 같고, 화(和, 조화, 화합, 합침, 화해, 같거나 다른 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룸)는 국에 양념을 한 것과 같다.” 하였다. 그러므로 신하들의 습성에 조화롭게 지내는 것은 좋으나, 부화 뇌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마다 진실로 부화 뇌동하는 것을 숭상한다면 천하는 또한 위태하다고 하겠다. 천하의 사리(事理)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보다 더 큰 것은 없다. 옳고 그름을 가린 뒤에야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밝힐 수 있고,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밝힌 뒤에야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자신에게 행한다면 ..

[고전산문] 구이지학(口耳之學) / 유성룡

‘홍범(洪範)’에 말하기를, “생각한다는 것은 예지를 말함(思曰睿)이며, 예지란 성인(聖人)을 만든다(睿作聖).”고 했으니, 엄숙ㆍ조리ㆍ지혜ㆍ도모는 생각하지 않으면 설 수 없다. (옮긴이 주: 睿(예)는 깊고 밝은 예, 슬기 예의 뜻으로, 즉 '생각한다는 것'은 곧 사려깊게 분별하여 깊은 뜻을 찾아내어 밝히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다.) 오행(五行)에서는 토(土)에 속하여, 금(金)ㆍ목(木)ㆍ수(水)ㆍ화(火)에 토기(土氣)가 없는 데가 없다.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실제로 얻어지는 것이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 말하였다. 《중용》의 박학(博學)ㆍ심문(審問)ㆍ신사(愼思)ㆍ명변(明辨)ㆍ독행(篤行) 다섯 가지는 생각이 주가 되기 때문에 그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 맹자는, “..

[고전산문] 사람의 말을 하는 앵무새 / 김만중

구마라습(鳩摩羅什, 인도의 승려, 중국에 포로로 잡혀가 많은 불경을 번역하여 중국불교 보급에 큰 공헌을 함 )이 말하기를, "인도사람(天竺人)의 풍속은, 사물이 아름다운 색조로 표현된 것(文彩)을 가장 숭상하기 때문에, 특히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는 글이나 노래(讚佛詞)는 매우 아름답다. 그런데 이를 중국어로 번역하면 단지 그 뜻만 알 수 있고, 그 말과 글에 담겨있는 진정(眞情)과 감동(感動)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이치가 정녕 그럴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입으로 표현된 것이 말이요, 말을 가락에 담아 표현한 것이 시가문부(詩歌文賦)이다. 온 세상의 지역과 나라마다 사용하는 말이 비록 같지는 않더라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실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그 말에 따라 가락에 맞춰 표현하였다면, 언..

[고전산문] 한갓 문장만을 가지고서 그 사람됨을 인정할 수 없는 일 / 이색

맹자(孟子)가 상우(尙友 옛사람과 벗하는 것)에 대해서 논하여 말하기를, “그의 시를 낭송하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의 사람됨을 모른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그래서 그의 당세의 삶을 논하게 되는 것이다.(맹자, 萬章下)” 라고 하였는데, 문장을 논할 때에도 이와 같이 해야 마땅하다고 내가 일찍부터 생각해 왔다. 문장이란 사람의 말 가운데에서도 정련(精鍊, 정성들여 고르고 다듬고 잘 훈련함)되어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이라는 것은 모두가 꼭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할 수도 없고, 일을 행한 실상을 모두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와 양자운(揚子雲 양웅(揚雄)), 그리고 당(唐)나라의 유종원(柳宗元)이나 송(宋)나라의 왕안석(王安石) 같..

[고전산문] 나를 판단하고 비난하는 사람에게 답함 / 허균

갓을 쓴 풍채가 좋고 의기가 당당해 보이는 사람이 나에게 힐문하였다. "그대는 문장을 지녔고 벼슬은 높은 지위에 이르렀다. 높은 지위에 걸맞는 관과 넓은 띠를 하고 임금님을 모실 적에는, 큰 길에 나서면 종자들이 구름처럼 옹위하여 뭇 행인들을 호령하며 앞길을 정리(呵導)했다. 공적인 사귐에 있어서는 지위에 걸맞게 당연히 공경 재상과 한 무리가 되어 서로 어울려 나라 위한 모의(謀議)를 함께 하였다. 이럴진대 그대가 마음만 먹는다면 서열과 단계를 뛰어 넘어 권력을 붙잡고 일신에 호화로운 생활 누릴 수 있었건만, 어찌하여 조회만 마치면 입 다물고 바보처럼 하고 다니는가?세상 이치에 밝고 명성있는 현명한 사람은 자네를 찾아 오는 일은 없고, 천박하고 기이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느니 어찌된 일인가. 게중엔 얼굴..

[고전산문] 밖에서 온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려서야 / 신익성

보내준 편지를 받으니 논란하는 내용이 종이에 가득한데 억양이 반복되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으니, 이른바 은하수의 끝을 알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팽조(彭祖)의 윤정(輪井)은 지극한 보신책이요, 공자의 불혹(不惑)은 성대한 도덕이며, 맹자가 주읍(晝邑)으로 나간 일과 증자의 어머니가 베틀북을 던진 일은 모두 상황에 따른 당연한 이치입니다*. 위험한 담장 아래 서지 말라는 훈계와 후환에 대한 염려*는 모두 이유가 있어서 하신 말씀이니, 후세 사람으로서는 가슴에 새기고 따라야 마땅합니다. 공자는 위대한 성인이고 증자와 맹자는 성인에 버금가는 사람이며 팽조는 지인(至人)입니다. 만약 옛 성인과 지인의 출처와 언행을 갑자기 보통 사람에게 요구한다면, 어찌 구릉이 태산처럼 높아지지 못하고 냇물이 바다처..

[고전산문] 세상사는 바둑판과 같다 / 윤기

문(問): 사람들은 늘상 ‘당국자는 판단이 흐리다(當局者迷, '바둑을 두는 당사자는 살피지 못하는 것일지라도 옆에서 훈수두는 사람은 그것을 살필 수 있다'(當局者迷, 旁觀見審)라는 고사에서 유래)’라고 말들 한다. 판국을 맡아서 판단이 흐려진다면, 반드시 당국자가 아닌 뒤에야 사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인가? (옮긴이 주: 당국자(當局者), '그 일을 직접 맡아 처리하는 자리에 있는 당사자') 답(答): 사람들은 모두 ‘당국자는 판단이 흐리다.’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저는 남들과 달리 ‘당국자라야 판단이 흐리지 않으니, 당국자가 아닌 몸으로서 당국자를 두고 판단이 흐리다고 하는 자가 사리에 어두운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사는 바둑판과 같습니다. 판이 갈려 새 판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