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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백성을 위하고 염려하는 일 / 이현일

왕이 된 자는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거리를 하늘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인성(仁聖)한 임금은 백성과 먹을거리를 중하게 여기지 않은 적이 없어서 재물을 만들어 내고 식량을 풍족하게 하는 방도에 그 힘을 다하지 않은 바가 없었고, 또 반드시 예비로 저축하여 어렵고 위급할 때를 대비하였다. 주(周)나라에서 현(縣)과 도(都)에 축적해 둔 것과 수(隋)나라와 당(唐)나라에서 의창(義倉)에 비축해 둔 것이 모두 흉년과 재해를 대비하는 것이었으니, 백성을 위해 염려한 것이 치밀하고 극진하지 않은가. 천재(天災)가 유행하여 사방이 번갈아 가며 흉년이 들어 새 곡식이 나오기 전에 묵은 곡식이 떨어져 공사(公私) 간에 모두 고갈되었고, 심지어 전답을 팔고 자식을 팔아도 먹고살 수 없어서 쪽박을 들고 ..

[고전산문] 기뻐서 움직이고 움직여 기뻐하는 것은 그 끝이 흉하기 마련이다 / 이현일

“귀매괘(歸妹卦)는 소녀(少女)가 장남(長男)을 따르는 괘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따르는 것이 꼭 안 좋은 것은 아니지만, 괘덕(卦德)으로 말해 보면 기뻐서 움직이고 움직여 기뻐하는 뜻이 있기 때문에 ‘가면 흉하다.(征凶 정흉)’라는 경계가 있는 것입니다. 무릇 기뻐서 움직이고 움직여 기뻐하는 것은 부부로 말하자면 정욕(情欲)과 연안(宴安, 몸이 한가하고 마음이 편안하게 즐기는 것, 안일, 방탕의 뜻을 포함)의 사사로움이 있고 엄격하고 공경하며 장중하고 엄숙한 덕은 없는 것이며, 붕우로 말하자면 비위를 잘 맞추고 입에 발린 말만 잘 하는 해악이 있고, 정직하고 진실하고 간곡하게 권면해 주는 보탬은 없는 것이며, 군주와 신하로 말하자면 아부하고 영합하고 순종하여 따르는 태도만 있고 충심으로 곧은 말을 하여 ..

[고전산문] 학문에 해를 끼치는 6가지 / 이현일

갑신년(1644, 인조22), 내 나이 이미 18세이다. 이제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이에 무어라 일컬을 만한 것이 없는 지난날을 두려운 마음으로 점검해 보고, 인하여 보잘것없는 나의 행적에 탄식하였다. 이에 경계하는 글을 짓는다. 옛사람들은 학문을 할 때에 아주 짧은 시간도 아껴서, 잠시만 느슨해져도 항상(恒常, 언제나 변함없이 일정하고 한결같음 )이 아니고, 잠깐만 멈추어도 유종(有終, 시작한 일의 끝 혹은 결실)이 없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 때문에 삼가고 조심하는 마음을 종일토록 지니고 있었고, 밤에도 그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았다. 한 사람의 몸에 만 가지 이치가 갖추어져 있으니, 이 이치를 따르면 옳게 되고 이 이치를 어기면 어그러지게 된다. 하늘이 이것으로 명하고 사람이 이것을 받은 것이 성..

[고전산문] 사악한 사람도 책을 읽는다 / 박이장

다음과 같이 논한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어, 온몸이 검은데 손가락 하나가 희다면, 희다고 말하면 되겠는가? 안 된다. 손가락 하나가 흰 것이 온몸의 검은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검다고 말하면 되겠는가? 역시 안 된다. 흰 것을 아름답게 여겨 검은 것을 숨기면 안 된다. 검은 것을 싫어하여 흰 것을 배척하는 것도 안 된다. 검으면 나는 그것이 검다는 것을 알고 희면 나는 그것이 희다는 것을 안다. 전신을 언급하여 논하면 검고, 손가락 하나를 가리켜서 논하면 희다. 어찌 전신이 검다고 손가락 하나가 흰 것을 가릴 수 있겠는가. 사람의 선악을 논하는 것도 이와 같다. 악한 짓을 하는 사람이라도 한 가지 일이 착하면 이 또한 착한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착하지 않다고 그 한 가지 착한 것을 아울러 배..

[고전산문] 덕(德)의 도적 / 맹자

만장이 물었다. “공자께서 진(陳) 나라에 계실 때 말씀하시기를, ‘어찌 노(魯) 나라로 돌아가지 않으랴. 그곳에 있는 내 문하의 선비들은 뜻은 높으나 행하는 데는 서툴러, 진취적이면서도 그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옮긴이 주: 이 문장의 번역은 공자가 말한 원문의 본래 내용과는 약간 다르다. 공자는 번역처럼 말하지 않았다. 이는 번역자가 나중에 나오는 맹자의 해석과 기타 여러 주해의 일반적 풀이를 번역으로 앞서 삽입한 까닭이다. 덕분에 바로 이어지는 질문의 문장과 맥락상 맞지 않는다. 원문의 내용을 원문과 본문의 맥락에 맞게 나름 다시 번역하면 이렇다. "어찌 (내 고향) 노나라로 돌아가고 싶지 않겠는가. 함께 어울렸던 노나라의 선비들은 뜻이 크고 진취적이며, 처음 품은 뜻을 결코 잊지 않는데..."..

[고전산문] 눈물이 있어도 감히 울지 못하는 심정 / 이익

기축옥사(己丑獄事, 선조 22년(1589)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을 계기로 일어난 옥사)에 정승 정언신(鄭彦信)이 조정에서 매를 맞고 갑산(甲山)으로 귀양을 가게 되니, 그 아들 율(慄)이 단식(斷食) 끝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이때에 자칫하면 연루죄(連累罪)가 파급되므로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였고, 심지어 집안사람들이 장사조차 예(禮)대로 하지 못하였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은 당시에 문사랑(文事郞)이 되었던 까닭으로 그 원통함을 알고서 바야흐로 관(棺) 뚜껑을 덮을 적에 시 한 수를 지어 비밀히 관 속에 넣었는데, 집안사람들도 몰랐던 것이었다. 급기야 그 아들이 장성하자, 천장(遷葬, 유골을 수습하여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하게 되어 관을 열어보니, 세월이 이미 30년이 지났는데도 종이..

[고전산문] 문장의 4가지 폐단 / 홍석주

사람의 말로써 표현되는 것, 즉 문장(文, 문채, 무늬)은 하늘과 땅이 본연의 선명한 무늬(文彩)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마음속에 정(情)이 없는 사람은 없다. 마음에 담긴 정(情)은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이다. 정(情)이 드러나 겉으로 표현된 것이 말이다. 표현된 말은 그 뜻이 전달되지 않을 수 없다. 표현된 말의 뜻이 전달되면 그것이 곧 문장이 된다. 그러나 그 말이 조리 있게 질서를 갖추지 않으면 문장이라 할 수 없다. 말이 부족하여 사람들이 그 뜻을 분명하게 알 수 없는 것, 이 또한 문장이라 할 수 없다. 말이 전해져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살펴볼만 한 것이 없다면, 이 역시 문장이라 할 수 없다. 말을 신중하게 삼가지 않아 사람의 마음을 산만하게 하는 것, 말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그 뜻..

[고전산문] 내게 달린 것에 최선을 다할 뿐 / 홍석주

모계위(茅季韋, 밭을 갈며 생활했다는 高士, 포박자외편에 나온다)가 한 여름에 들에 나가 김을 매다가 틈이 나자 밭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밭두둑 사이에 그늘이 좋은 큰 나무가 있었는데, 아침에 그늘이 서쪽으로 지면 사람들이 앞다투어 그 아래로 가고, 얼마 뒤에 해를 따라 그늘이 동편으로 옮겨가면, 모두들 떠들썩하게 동편으로 몰려갔다. 뒤처져 온 이들 중에는 자리다툼에 신발을 잃거나 발꿈치를 상한 자도 계속 이어졌다. 그러던 와중에 그늘에 다닥다닥 모여 앉은 자들이 들판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모계위(茅季韋)를 일제히 바라다보았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모계위에게 말하기를, “저번에 그대는 동편에 홀로 서 있더니 이제 서편에 홀로 서 있다. 군자라고 자부하는 이가 어찌 그리도 지조가 없는가?” 이 ..

[고전산문] 타인이 행한 일에서 선한 점을 인정하는 기준 / 홍석주

그 마음이 옳으면 행여 그 말이 잘못되었더라도, 군자는 그 마음을 보아 그 말을 용서해 준다. 비록 그 마음이 그릇되었다할지라도 그 말이 옳으면, 군자는 그 말을 취할 따름이다. 이것이 군자가 타인이 행한 일에서 선한 점을 인정하는 기준이다(此君子所以與人爲善也차군자소이여인위선야, 옮긴이 註: 그래서 논어에 군자는 긍지를 지니면서도 다투지 않고 두루 섞이어 조화를 이루되 패거리를 이루거나 편을 가르지 않고, 너그럽고 태연하며 교만하지 않다고 특정한다. 군자와 달리 소인은 그렇지 않다, 그 반대다. 옛 선진들은 소인중에서도 특히 그속을 드러내지 않는 용렬한 소인을 가장 경계하였다.). 한 나라 원제(元帝)가 풍야왕(馮野王)을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고자 하여 석현(石顯; 한 원제 때의 환관, 내시)에게 물어..

[고전산문] 무명변(無命辯) / 홍석주

그렇게 해야 할 것이 그렇게 되는 것은 의(義)이고,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되는 것은 명(命)이다. 성인(聖人)은 의를 말미암는데 명이 그 가운데 있고, 군자는 의로써 명에 순종하고, 보통 사람 이상은 명으로써 의를 단정하고, 중인 이하는 명(命)을 알지도 못하고 그 의도 잊어버리고 있다. 이 때문에 명을 알지 못하고서 의에 편안할 수 있는 자는 드물고, 의에 통달하지 못하고서 명에 편안할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러나 명(命)은 말을 하지 않을 때가 있으나, 의는 어디를 가나 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효로써 어버이를 섬기면서 그 명은 따지지 않고, 충(忠)으로써 임금을 섬기면서 그 명은 따지지 않고, 경(敬)으로써 자기 몸을 닦으면서 그 명은 따지지 않고, 부지런히 행실을 닦으며 그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