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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유정부서(答劉正夫書):뛰어난 문장이란

유(愈)는 진사(進士) 부군(劉君) 족하(足下)에게 아룁니다. 주신 편지를 받아보니 나의 부족한 곳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미 두터운 은혜를 입었고 또 부끄럽게도 나의 부족한 점이 진실로 지적하신 것과 같으니, 매우 다행입니다. 주현(州縣, 지방)의 천거를 받아 진사과(進士科)에 응시(應試)한 자는 어느 선진(先進)의 집엔들 찾아가지 않겠습니까? 선배의 문하에 후배가 찾아오면 선배가 어찌 그 성의에 보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찾아오면 접대하는 것은 온 성안의 사대부가 모두 그렇게 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나만이 불행하게도 후배를 접대한다는 명성이 났으니, 명성이 있는 곳은 비방이 돌아오는 곳입니다. 찾아와서 묻는 자가 있으면 감히 성실히 대답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어떤 자가 와서 “문장을 지을 때 누..

답풍숙서(答馮宿書)나의 허물을 일러주는 사람은 나의 스승

편지를 보내어 나의 과오를 일러주셨으니, 나에 대한 우정(友情)이 지극한 그대가 아니라면 내가 어디에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벗 사이의 도리가 끊어진 지 오래여서, 서로 바른말로 충고(忠告)하거나 도덕과 학문을 서로 권면(勸勉)하는 일이 없는데, 나는 무슨 행운으로 그대 같은 벗을 만난 것입니까? 나는 세속 사람들이 귀가 있으면서도 자기의 허물을 듣지 못하는 것을 항상 딱하게 여기면서 나도 자신의 허물을 듣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는데, 오늘 이후로는 그대에게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족하(足下)는 나와 사귄 지 오래이니, 내가 지키는 바는 족하도 잘 아실 것입니다. 내가 경사(京師, 수도)에 있을 때에 시끄럽게 떠드는 무리들의 비방이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였는데, 그때 족하께서 나와 거..

의란조(猗蘭操)

蘭之猗猗 揚揚其香 난 향기 그윽한데 아름답기 또한 그지없어라不採而佩 於蘭何傷 꺽어 품에 차는 이 없어도 서러워하지 말아라今天之旋 其曷為然 소용돌이치는 오늘의 세상, 어찌하다 이리되었는가 我行四方 以日以年 내가 세상을 떠도니 하루 한해 세월도 함께 떠돌았구나雪霜貿貿 薺麥之茂 눈서리 사방에 날리는데 냉이와 보리는 왕성하게 올라오네子如不傷 我不爾覯 공자께서 상처받지 않았다면 내 어찌 그대를 만났으리오 薺麥之茂 薺麥之有 냉해에 냉이와 보리가 왕성해짐은 그들이 가진 속성일지니君子之傷 君子之守 군자가 마음의 상처를 입음은 그가 지키고자 하는 것 때문이리 -한유(韓愈 768 ~824), ' 의란조(猗蘭操)'- [옮긴이 주] 의란조(猗蘭操)에 관한 기록은 漢나라 사학자요 문장가인 채옹(蔡邕 133~192)의 글 에서 ..

답위지생서(答尉遲生書): 문장(文章)이란 반드시 내면에 쌓인 것이 있어야 한다

유(愈, 한유)는 위지생(尉遲生) 족하(足下)께 아룁니다. 이른바 문장(文章)이란 반드시 내면에 쌓인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도덕의 수양과 학문의 연마에 성심(誠心, 성실하고 참된 마음, 진정성)을 다하니, 이는 도덕의 수양과 학문의 연마를 잘하고 못한 것이 문장에 그대로 드러나 가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깊으면 가지가 무성하고, 형체가 크면 소리가 우렁차며, 행동이 고결하면 말이 준엄하고, 마음이 순후(醇厚, 순박하고 맑음)하면 기운이 화평하며, 사리에 밝은 사람의 문장은 의심스러운 곳이 없고, 마음이 한가롭고 편안한 사람의 문장은 여유가 있습니다. 지체(肢體, 팔다리와 몸)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완전한(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고, 문사(文辭, 생각이나 뜻을 문장으로 풀어 표현하는..

시능궁인변(詩能窮人辯):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는 것에 대한 논변

옛날 구양영숙(歐陽永叔, 구양수)이 매성유(梅聖兪)의 시를 논하며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시인은 출세한 사람이 적고 궁한 사람이 많다.’라고 하는데,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궁한 사람이라야 시가 공교로워진다(盖非詩能窮人 殆窮者而後工也).”라고 하였다. 매성유는 시에 능하여 세상에 크게 이름이 났으나 그의 지위가 남보다 앞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구양영숙이 이렇게 말하여 해명한 것인데, 이는 마음에 격발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시는 사람의 재주 고하에 따라 성정(性情)에서 발로된 것이므로 지력(智力)으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궁하게 살면서도 잘하는 사람도 있고 높은 지위에 앉아서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궁하게 살면서..

말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글이 되는 것

(상략)글(文)과 도(道, 도리, 이치, 도덕)의 관계를 과연 쉽게 말할 수가 있겠는가. 대저 글과 도는 상호 쓰임이 되니, 이러한 관계를 벗어난다면 그것은 글이 아니다. 삼대(三代) 이전에는 이러한 도가 크게 행해져서 글은 곧 말이요 말은 곧 법이었으며 법은 곧 말이요 말은 곧 글이었으니, 《서경(書經)》의 전(典)ㆍ고(誥)ㆍ모(謨)ㆍ훈(訓)이 모두 이러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삼대가 쇠하고 나서는 도(道)가 위에 있지 않게 되었으므로 우리 공자(孔子)께서 하늘이 내신 성인의 자질을 가지고 몸소 전술(傳述)하고 창작(創作)하는 일을 맡으셨다. 그리고 예컨대 “글을 지을 때에는 성실함에 입각해야 한다.(修辭立其誠)(주역/건괘(乾卦) 문언(文言))”라든가, “말은 의미를 통하게 하면 된다.(辭達而已矣)”(논..

붕당론(朋黨論): 소인배의 붕당은 거짓이다

신(臣)은 듣기에, 붕당(朋黨)이라는 말이 예부터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한 것은 오직 임금이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릇 큰 군자는 군자와 더불어 도(道)를 함께 함으로서 붕(朋, 뜻을 함께하는 벗의 무리)을 만들고, 소인은 소인과 더불어 이익(利益)를 함께함으로써 붕(朋)을 만듭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그러나 신은 생각건대 소인은 붕이 없고, 오직 군자라야 그것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이렇습니다. 소인은 좋아하는 것이 이익과 녹봉(보수)이고, 탐내는 것은 재물과 화폐입니다. 그 이로움이 같을 때를 당해서 잠시 서로 끌어들여 당(黨,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무리)을 만들어 그것을 붕(朋)이라고 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그 이로움을 보고..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 사람이 곤궁하게 된 후라야 시가 공교로워진다

내가 세상 사람들이 “시인은 영달하는 사람이 적고, 곤궁한 사람이 많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무릇 어찌 그러하겠는가? 이는 세상에 전해지는 시는 대체로 옛날의 곤궁했던 사람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선비가 재능을 간직하고도 세상에 그 뜻과 재능을 펼 수 없게 되면, 대부분 스스로 산이나 물가로 나가, 벌레` 물고기` 초목` 바람` 구름` 새` 짐승` 등을 보고 종종 기이한 것을 찾아낸다. 또 마음 속에 슬픈 마음과 분개한 감정이 쌓이면 곧 원망하고 그것을 풍자하여, 쫓겨난 신하나 과부의 한탄 등을 통해 인정상 쉽게 말하기 어려운 것을 써내게 된다. 대개 곤궁하면 곤궁할수록 더욱 공교한 시가 된다. 그러니 시가 사람을 곤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곤궁하게 된 후라야 시가 공교로워진다. 내 친구..

송서무당남귀서(送徐無黨南歸序):사람된 삶의 우선순위

풀 나무 새 짐승 등의 사물됨과 여러 사람들의 인간됨의 성격은 그들이 사는데 있어서는 비록 서로가 다르나 죽는데 있어서는 서로 같다. 한결같이 썩어문들어져 결국은 그 존재가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 중에는 성현(聖賢, 성인과 현인)이란 사람이 있는데, 역시 그들도 세상에 살고 있다가 죽어버린다. 그러나 풀 나무 새 짐승 및 보통 사람들과 유독 다른 점은 비록 몸은 죽어도 그 이름은 사라지지 않고 오래 갈수록 더욱 그 존재가 두드러지는 것이다. 그들이 성인과 현인이라 불리게 되는 까닭은, 수신(修身, 마음과 몸을 닦음)하여 덕행을 실천하고(修之於身 수지어신), 중요한 일에 종사하여 공업(공적인 업적)을 이루고(施之於事 시지어사), 또 그것을 말로 표현하여 글로 적어놓았기(見之於言 견지어..

쉬파리가 밉다

쉬파리야, 쉬파리야, 네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나는 슬퍼한다. 벌이나 전갈같이 독있는 꼬리도 없고, 또 모기나 등에처럼 날카로운 부리도 없어서, 다행히 사람들이 무서워하지는 않지만, 어찌하여 사람들이 좋아하는 존재가 되지 못하는가? 네 모양이 지극히 작으니 네 욕심도 쉽게 채워진다. 술잔에 남은 찌꺼기나 도마 위에 남은 버린 고기 정도에도 족하지 않나? 네가 발로 디딛는 바가 아주 미소하여 너무 많으면 감당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무엇이 부족하길래, 대체 무엇을 구하길래 종일토록 괴롭게 윙윙거리며 쫒아 다니느냐? 냄새 따라 향내 찾아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구나. 아주 잠깐 사이에 떼거지로 모여드는 것은 누군가가 서로 일러주기 때문인가? 생물들 중에서 비록 미미한 존재이긴 하나, 그것이 끼치는 해는 지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