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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읽고(讀老子): 물에 대하여

일찌기 듣건대, 공자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한다. "노자는 용이다. 훌륭하구나, 그모습이여! 용은 위로는 하늘에 있고, 아래로는 못에 있다. 그 자취는 신묘하고, 그 작용은 두루 거대하니, 항아리 속의 물고기가 아니로다." 내 경우에는 다만 그 물을 보았을 뿐 용을 보지 못했다. 크도다, 물이여! 물은 하지 않음도 없고 주장함도 없고, 부러워함도 없고 업신여김도 없지만, 천지의 장부(臟腑, 오장육부)요, 만물의 젖줄이다. 물은 한가롭고 여유롭게 흘러가지만, 요리사가 물을 취해, 매실을 넣으면 신맛이, 꿀을 넣으면 단맛이, 산초를 넣으면 매운 맛이, 소금을 넣으면 짠 맛이 나서 다섯 가지 맛의 장이 된다. 물은 아무 맛이 없지만, 결국 맛을 내는 것은 물이다. 염색공이 물을 취해 섞으면 치자에서는 ..

칠야(七夜): 일곱 가지 밤

어느 날 밤, 내가 등잔 기름이 다 닳은 뒤에 잠이 들었는데 실컷 자고 깨어 보니 아직 캄캄하더라고. 그래서 심부름하는 아이한테 물었지.“밤이 얼마나 됐느냐?” “아직 자정이 안 됐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잠이 들었어. 실컷 자고 깨어나서 또 아이한테 물었지. “밤이 얼마나 됐느냐?” “아직 닭 울 때가 안 됐습니다.그래서 또다시 억지로 잠을 청했지마는 잠이 와야 말이지. 몸을 뒤척뒤척하다가 일어나서 또 아이한테 물었어. “밤이 얼마나 됐느냐? 방 안이 환한 걸 보니 날이 샌 게지.” “아니, 아직 날이 새지 않았습니다. 방 안이 환한 것은 달빛이 지게문에 비쳐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소리쳤어. “아이고 참. 겨울밤이 길기도 하구나!” 그랬더니 아이가 뭐랬는지 알아? “무슨 밤이 길다고 그러십니까?..

지주부(蜘蛛賦): 거미의 충고

이 선생이 저녁 서늘한 틈을 타서 뜰에 나가 거닐다가, 한 마리 거미가 낮은 처마 앞에 거미줄을 날리고, 해바라기 가지에 망을 펼치는 것을 보았다. 거미는 거미줄을 가로로 치고 세로로 치고 수직으로 펴고 수평으로 펴는데, 그 너비는 한 자쯤 되고 그 형식은 컴퍼스에 맞았으며, 성글지 않고 조밀하여 실로 교묘하고도 기이하였다. 이 선생은 그것을 보고, 거미에게 기심(機心남의 것을 탐내는 욕심)이 있다고 여겨, 지팡이를 쳐들어서 그 거미줄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전부 걷어내어 없애고는 내려치려고 하는데, 거미줄 위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듯하였다. “나는 내 줄을 짜서 내 배를 채우려고 하오. 당신에게 무슨 관계가 있다고, 내게 해독을 끼치는 게요?” 이 선생이 노하여 말하였다. “기계를 설치하여 생명을 해치는 ..

유광억전(柳光億傳 ): 마음을 팔아먹은 사람

유광억(柳光億)은 영남(嶺南) 합천(陜川)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시를 아주 잘 하지는 못할지라도 과시(科詩, 과거 답안용의 독특한 시체)를 잘 하기로 남쪽에서 유명하였다. 그는 집안이 몹시 가난하고 지체도 낮았다. 그 당시 시골에서는 향시(鄕試)의 과시(科詩)를 팔아 생계를 잇는 자가 많았는데, 광억 또한 재력을 갖춘 양반 자제의 글을 대신 지어주고 거액의 돈을 버는가 하면, 때로는 말과 종을 거느리고 거드름을 피우기까지 하면서 정작 본인의 급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일찍이 영남 향시(道試, 지방에서 실시하던 시험, 초시)에 합격하여 장차 경시관(서울 고시관)에게 시험을 치르러 갔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부인이 타는 가마 한 채를 갖고 길에서 그를 맞이했다. 그 집에 이른즉 붉은 대문이 몇..

문학의 신에게 올리는 제문(祭文神文)

갑진년(1784)도 저물어 한 해를 마치는 섣달그믐 경술일 경금주인(絅錦主人, 이옥의 호)은, 이날 시신(詩神)에게 제사를 올리는 옛 사람의 의로운 일을 삼가 본받아, 글을 지어 문학의 신의 영전에 경건하게 고합니다. 아! 아! 문학의 신이여! 내가 그대를 저버린 일이 너무도 많구나! 나는 배냇니(젖니)를 갈기 전부터 글쓰는 일에 종사하였으므로 그대가 나와 동무가 된지도 어느덧 22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내 천성이 게을러 부지런하지 못한 관계로, 전후에 읽은 책 가운데 《서경(書經)》은 겨우 사백 번을 읽었고, 《시경(詩經)》은 전후에 일백 독(讀)을 하였는데 아송(雅頌)은 배를 더 읽었다. 《주역》은 삼십 독을 하였고, 공자,맹자,증자,자사가 지은 《사서(四書)》는 그보다 이십 독을 더하였다. ..

아름답지 않다면 오지 않았다

바람은 잔잔하고, 이슬은 맑고 깨끗하다. 가을은 정녕 아름다운 계절이다. 물은 흘러 움직이고 산은 고요하니, 북한산은 아름다운 경치를 이룬다. 친구들은 마음이 선량하고 소박하다. 모두 아름다운 선비들이다. 이런 아름다운 선비들과 함께 하여 이런 아름다운 경계에 노니는 것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자동(紫峒)을 지나니, 경치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세검정(洗劍亭)에 오르니 또한 아름답다. 승가사(僧伽寺)의 문루(門樓)에 오르니, 역시 아름답다. 문수사(文殊寺)의 문에 올라가도, 대성문(大成門)에 도착해도 여전히 아름답다. 중흥사(重興寺) 동구(峒口)에 들어가니 아름답고, 용암봉(龍岩峰)에 올라서 보니 이 또한 아름답다. 백운대(白雲臺) 아래 기슭에 다가가도 아름답고, 상운사(祥雲寺) 동구가 아름답..

인설(人說 ): 사람의 도리에 관하여

사람은 만물 중 하나이다. 팔과 다리의 운동, 코와 목구멍의 호흡, 눈과 귀의 보고 듣기, 입과 입술의 먹고 마시기, 암컷과 수컷의 교미 등은 사람과 개ㆍ돼지ㆍ승냥이ㆍ늑대가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만물 중에서 귀하고 가장 신령한 이유는 단지 그에게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네 가지가 없었다면 5만 4000년 동안 한 번 태어나 다행히도 사람이 되는 일이 개ㆍ돼지ㆍ승냥이ㆍ늑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사람이면서 저 많은 사물과 함께 천지 사이에 살면서 귀하지도 신령하지도 못하고 말이 문틈으로 지나가듯 잠깐 사이에 단지 따뜻하면 즐겁고 배부르면 기뻐할 줄만 알다가 인생 백 년을 지나자마자 새가 떨어지고 들짐승이 죽듯, 풀이 죽고 나무가 썩듯 할 것이니, 삶이라는 것이 어찌 허망하..

[맹자 고자상 10장 강해] 본심(本心)을 잃고 사는 삶

만약 무턱대고 의롭게 죽는 것을 삶보다 심하게 바랄 수 있다고 말했다면, 사람들은 분명 구차하게 큰소리치는 말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물고기나 곰 발바닥의 맛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물고기와 곰 발바닥으로 먼저 비유를 들었다. 진실로 완전한 바보이거나 지극히 완악(頑惡)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군들 ‘의(義)’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은 ‘의’를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가장 뛰어난 자는 이 말을 구실로 삼아서 ‘의’가 삶과 더불어 나란할 수도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의’의 아름다움이 삶의 즐거움보다 훨씬 뛰어나서, 마치 곰 발바닥과 물고기의 맛이 현격하게 차이가 있는 것처럼 여기겠는가? ‘의(義)’의 아름다운 맛이 곰 발바닥을 대신할 ..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한다.”라는 ‘무치지치(無恥之恥)’ 네 글자는 종신토록 외워서 반성할 만한 글이다. 성현의 도는 다만 부끄러움을 면하는 방법이다. 세밀하게 공부하면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갈 수 있고, 공효가 극진해지면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부끄럽지 않으며, 땅을 굽어봐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진심 상 6장] “부끄러움을 쓰는 바가 없다.”라는 ‘무소용치(無所用恥)’ 네 글자를 읽노라니 사람으로 하여금 등에 식은땀이 흐르게 한다. 그 병의 뿌리는 바로 ‘스스로 속임〔自欺〕’이다.[진심 상 7장] 배우는 자는 향원(鄕原)이 덕(德)의 적(賊)이라는 사실을 깊이 잘 안 연후에야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 진실로 “엄연히 세상에 아첨하는 자〔閹然媚於世也者〕”가 아니라면 절대로 온 고을 사람들이 원인(愿..

임진왜란의 의병(義兵) 김헌(金憲)

사람에게 보존되어 있는 것 가운데 충의(忠義)보다 큰 것은 없다. 명예가 한 시대에 드높고 훌륭한 이름이 백대 동안 전해지는 것을 어찌 사람마다 스스로 힘쓰고 즐겁게 실천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라가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만일 혹 고상하게 처신하고 은둔하는 뜻을 기른다면, 그 몸을 욕되지 않게 하여 성명(性命)을 보전하고 이런 명성을 오롯하게 누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작은 이해(利害)에 속박되어 제대로 처신할 수 있는 자는 매우 적다. 하물며 의리만 알고 제 몸을 돌보지 않으며 미소를 머금고 의연하게 흰 칼날을 밟으면서 한번 죽음으로써 지조를 지키는 자에게 있어서이겠는가? 아, 그 지극한 어려움이여!그렇지만 전투가 벌어졌을 때 아군의 북소리가 이미 잦아들고 적의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비분강개한 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