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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소로우면서 경계가 될 만한 일

명예를 탐하고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사람의 상정(常情, 보편적으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정)에 면할 수 없는 것이나, 또한 가소로우면서 경계가 될 만한 일이 있다. 문장에는 본래 고하(高下)와 우열(優劣)이 있어서 알 만한 자가 알아보는 것이니, 과장한다 하여 더 좋아지지 않고 겸손하다 하여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그렇지 않아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 종이 값이 갑자기 높아지고, 깊이 상자 속에 넣어 두면 변변찮은 사람으로 불리게 된다. 그리하여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자 하는 자는 집에 있을 때 나그네가 찾아오면 반드시 꺼내어 큰 소리로 읽으며 득의양양하고, 이르는 곳마다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읊조려 여러 편을 외워 마지않으니, 듣다 보면 진준(陳遵)이 좌중을 진동시키고*, 전하다 보면 ..

제 몸을 홀로 잘 지킬 뿐

어떤 객이 나를 찾아와 물었다. “오늘날 인심과 세도는 여지없이 무너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백성이 바로 삼대(三代)의 백성인데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단 말입니까?” “교화가 밝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이 항성(恒性)을 따르지 않고, 사단과 칠정이 다 무너져 오직 사욕만을 따르다가 점점 캄캄한 방이 되고 만 것이니 괴이할 것이 없소이다.” “공자께서 다시 일어나신다면 만회할 방도가 있겠습니까?”“공자께서는 지위를 얻지 못하셨으니, 어찌 만회할 수 있겠소.”“지위를 얻으면 어떻겠습니까?” “손바닥 뒤집듯 쉬웠을 것이오. 마음에 편당(偏黨)이 없으면 천하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편당이 없을 것이고, 마음에 기교(機巧, 이것저것 재주와 지혜를 짜냄)가 없으면 천하의 마음도 모두 기교가 없을 것이오. 대공지정(大公..

[노자강독] 사람을 건드리지 마라

『큰 나라 다스림이 작은 생선 지짐 같다. 도를 가지고 천하에 디늘면(다다르면, 다스리면) 굿것(귀신)도 재주를 부리지 못한다. 굿것이 재주가 없음 아니라, 그 재주가 사람을 상하지 않는 것이다. 그 재주가 사람을 상치 않음 아니라, 거룩한 이(聖人)가 또한 상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둘이 서로 상치 않으니,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일이 서로 서로 돌아간다.』(老子 60장, 원문생략) 생선을 지지는 법인즉 건드리면 못쓴다. 건드리면 다 부스러져 그 맛을 잃어 버리기 때문이다. 작은 생선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작은 생선을 지지는 사람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나라는 큰 것이지만, 잘못하면 상하기 쉬운 것이 작은 생선 같으니, 정치하는 사람이 특별히 마음을 써서 국민을 절대로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말..

자기 마음에 물어보라

풀은 바람이 동쪽으로 불면 동쪽으로 향하고 바람이 서쪽으로 불면 서쪽으로 향한다. 다들 바람 부는 대로 쏠리는데 굳이 따르기를 피하려 할 이유가 있겠는가? 내가 걸으면 그림자가 내 몸을 따르고 내가 외치면 메아리가 내 소리를 따른다. 그림자와 메아리는 내가 있기에 생겨난 것이니 따르기를 피할 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따르지 않은 채 혼자 가만히 앉아서 한평생을 마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어째서 상고 시대의 의관(衣冠,남자의 웃옷과 갓이라는 뜻으로, 남자가 옷을 정식으로 갖추어 입음)을 따르지 않고 오늘날의 복식(服飾,옷과 장신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따르며, 중국의 언어를 따르지 않고 각기 자기 나라의 발음을 따르는 것일까? 이는 수많은 별들이 각자의 경로대로 움직이며 하늘의 법칙을 따르..

육체의 눈과 마음의 눈

눈에는 두 가지가 있다. 외안(外眼) 즉 육체의 눈과, 내안(內眼) 곧 마음의 눈이 그것이다. 육체의 눈으로는 사물을 보고, 마음의 눈으로는 이치를 본다(外眼以觀物 內眼以觀理). 사물 치고 이치 없는 것은 없다(而無物無理). 장차 육체의 눈 때문에 현혹되는 것은 반드시 마음의 눈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쓰임새가 온전한 것은 마음의 눈에 있다 하겠다. 또 육체의 눈과 마음의 눈이 교차되는 지점을 가리워 옮기게 되면, 육체의 눈은 도리어 마음의 눈에 해가 된다. 그런 까닭에 옛 사람이 처음 장님이었던 상태로 나를 돌려달라고 원했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정재중(鄭在中)은 올해로 마흔 살이다. 40년 동안 본 것이 적지 않을 터이다. 비록 지금부터 80살이 될 때까지 본다하더라도 지금까지 보다..

남과 나는 평등하며 만물은 일체이다

나와 남을 마주 놓고 보면, 나는 친하고 남은 소원(疏遠,서로 사이가 두텁지 아니하고 거리가 있어서 서먹서먹함)하다. 나와 사물을 마주 놓고 보면 나는 귀하고 사물은 천하다. 그런데도 세상에서는 도리어 친한 것이 소원한 것의 명령을 듣고, 귀한 것이 천한 것에게 부림을 당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욕망이 그 밝은 것을 가리고, 습관이 참됨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이에 좋아하고 미워하며 기뻐하고 성냄과 행하고 멈추며 굽어보고 우러러봄이 모두 남을 따라만 하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하지 못하는 바가 있다. 심한 경우에는 말하고 웃는 것이나 얼굴 표정까지도 저들의 노리갯감으로 바치며, 정신(精神)과 의사(意思, 사유 또는 사고 즉 무엇을 헤아리고 판단하고 궁리함)와 땀구멍과 뼈마디 하나도 나에게 속한 것이 없게 되니..

구도(求道)란 생각을 바꾸는 것

행교유거기(杏嶠幽居記 행교유거기) 늙은 살구 나무 아래 작은 집 한 채가 있다. 방에는 시렁과 책상 등속이 3분의 1을 차지한다. 손님 몇이 이르기라도 하면 무릎을 맞대고 앉는 너무도 협소하고 누추한 집이다. 하지만 주인은 아주 편안하게 독서와 구도(求道)에 열중한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이 작은 방에서 몸을 돌려 앉으면 방위가 바뀌고 명암이 달라진다네. 구도(求道)란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바뀌면 그 뒤를 따르지 않는 것이 없다네. 자네가 내 말을 믿는다면 자네를 위해 창문을 열어주겠네. 웃는 사이에 벌써 밝고 드넓은 공간으로 오르게 될 걸세." 차거기(此居記) 이 거처는 이 사람이 사는 이곳이다. 이곳은 바로 이 나라 이 고을 이 마을이고, 이 사람은 나이가 젊으나 식견이 높으며 고문..

진정한 소유

시와 문장(詩文)을 지을 때 남의 견해를 베끼는 사람도 있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견해를 내는 사람도 있다. 남의 견해를 베끼는 것이야 저급하여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신만의 독창적인 견해를 내더라도 고집이나 편견이 섞이지 말아야 참된 견해(眞見)가 된다. 또 거기에다 반드시 진재(眞材, 타고난 재능, 개성)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일가를 이루게 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찾은 지 몇 년 만에 송목관(松穆館) 주인 이군 우상(虞上. 이언진의 字)을 얻었다. 군(君)은 문학의 도(道)에 있어서 식견(識見)이 높고 사유의 깊이가 심오하다. 먹 아끼길 금(金)처럼 하고 글 다듬길 단약(丹藥, 신선이 만든 영약)만들어 내듯 하여 붓이 한번 종이에서 떨어질라 치면 펼쳐낸 그대로 능히 세상에 전할 만 하다. 그러나 세상에..

문장을 가늠하는 마음 거울

시(詩)라 하면 당시(唐詩)가 아니면 시(詩)로 취급하지 않는 것은 요즘의 폐단이다. 너도 나도 한결같이 그 체제를 배우고 언어를 본받으니 똑같은 피리소리에 가깝다. 그것은 마치 꾀꼬리(百舌鳥)들이 하루종일 시끄럽게 울어도 자신만의 소리가 없는 것과 같으니 나는 그것을 매우 싫어한다.(惠寰雜著卷6, 李華國遺草序) 사람은 원래 자기의 국량을 타고 나는 법이다. 어찌 한당(漢唐)의 시문(詩文)에 구걸하겠는가. 문장을 가늠하는 마음 거울은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게 있다. 그럴진대 내 어찌 그대를 위하여 바꿀 수 있겠는가. (惠寰詩鈔, 文有感作) 당(唐)의 문심(文心)이 높은 것도 아니고 한(漢)의 문심(文心) 또한 깊은 것도 아니다. 단지 우러나오는 자신의 성정(性情)을 스스로 읊조릴 뿐이다. 혼미..

환아잠(還我箴): 참된 나로 돌아오다

옛날 내 어렸을 땐 하늘의 이치(天理)가 순수했다. 지각(知覺)이 생기면서 이를 해치는 것 일어나 식견이 오히려 해(害)가 되고 재능도 해가 되어 버렸다. 부지런히 마음을 닦고 세상일을 배우고 익혀도 얽키고 설켜 풀어낼 길이 없다. 이름깨나 난 다른 사람에게 굽신대며 떠받들길 아무 씨, 아무개 공하며 각별히 추켜세워 뭇 멍청이들 혼을 뺐었는데, 옛 나를 잃고 나자 참된 나도 어디론가 숨어 버렸다.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겉사람 나를 타고 가버리곤 돌아오지 않는다. 이에 떠나가고픈 마음 생겨 오래도록 궁리하다 마침내 꿈에서 깨어났다. 눈 떠보니 해가 떠있고, 훌쩍 몸 돌리니 어느 새 집에 돌아왔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전과 같이 변한게 없지만, 몸 기운은 맑고도 평온하다. 나를 가둔 잠금 풀고 굴레 벗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