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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驕奢): 교만과 사치

귀히 되면 교만하지 않으려고 해도 교만이 절로 생기고, 부하게 되면 사치하지 않으려 해도 절로 사치하게 된다. 주(紂)가 상저(象箸, 상아로 만든 젓가락)를 만들었을 때, 기자(箕子)가 탄식한 것은 궁실(宮室)과 여마(輿馬, 왕이 타는 수레와 말)의 사치에 조짐이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가령 주가 마음대로 하도록 버려 두었다 하더라도 후세의 임금들과 비교하여 주의 사치가 미치지 못함이 있었을 것이다. 자공(子貢)은 “주의 악(惡)*이 이렇게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였고, 맹자도 “나는 무성(武成 《서경》 편명)에 대해서 두서너 대문만 취할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로 본다면 모든 악명(惡名)이 돌아가는 사람에게 무슨 말인들 이르지 않겠는가? 지금 사람도 나라를 멸망시킨 임금을 논할 때면 반드..

조선사군(朝鮮四郡)

한(漢) 나라가 조선(朝鮮) 땅을 빼앗아 사군(四郡)을 만들었으니, 사군은 본디 우리나라에 속한 것이다. 위(魏) 나라의 관구검(毌丘儉)이 현도(玄菟)에서 나와 고구려를 침범하자 왕이 옥저(沃沮)로 달아났다. 위 나라 장수가 숙신(肅愼) 남쪽 경계까지 추격하여 돌에 공적을 새겨 기록했다. 또 환도(丸都)를 무찌르고, 불내성(不耐城)에다 공적을 새기고서 낙랑으로부터 물러갔다. 환도는 국내성(國內城)인데, 병란을 겪어서 다시 도읍할 수 없었으므로 마침내 평양성(平壤城)으로 옮겼으니, 평양은 왕검성(王儉城)이다. 환도는 압록강 서쪽에 있는데, 현도로부터 나와 낙랑으로부터 물러갔으니, 두 군(郡)이 요동(遼東)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통고(通考)》에, “조선은 진번(眞番)을 역속(役屬 복속)시켰다.” 했으며..

개의 본성

옛날 예양(豫讓)이 조 양자(趙襄子)에게 죽음을 당한 것을 두고 선유(先儒)들은 조 양자가 예양을 죽여서는 안 되었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양은 양자에게 반드시 원수를 갚고자 하여 다섯 차례 복수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그의 의지는 원수를 갚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양자는 그를 의롭게 생각하면서도 죽였으니, 죽이지 않으면 또한 끝내 자신이 화를 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닥친 환란을 피하기 위해 의로운 선비를 차마 죽였으니, 사사로움을 좇아 도리를 저버렸던 것인가? 의리로 볼 때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겠다. 지금 만약 두 군대로 하여금 서로 싸우게 하면 목숨을 걸고 사지(死地)에 들어가 상대의 장수를 베고 상대의 군주를 사로잡는 것은 ..

진짜와 가짜는 뒤섞여 있기 마련이다

근거 없는 말을 믿고 임시변통하는 폐단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욱 심합니다. 비록 제멋대로 글을 지어 고인(古人)을 비방하는 자들과는 수준이 다르지만, 비난을 두려워 피하면서 시류(時流)에 따라 세상에 아첨하는 데서 오는 폐해는 더욱 심하니, 결국 경술(經術, 유학의 경서經書를 연구하는 학문, 즉 성인의 말씀을 연구하는 학문)이 어두워지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만약 한 세대에 제대로 된 학문이 없다면 이러한 부류가 학문을 창도(倡導 어떤 일을 앞장서서 주장하고 부르짖어 사람들을 이끌어 나감)할 것입니다. 성인(聖人)이 미워하는 부류는 무엇보다도 향원(鄕愿)입니다. 옳은 것 같지만 실제는 그르고 행동이 모호한 자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심술(心術)의 적(賊)은 살피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책을 저술하는..

겉과 속을 서로 바르게

겉과 속을 다같이 수양해야 하지만 속을 더 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러나 속이란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란 형상이 없어서 쉽게 잡아 지킬 수 없는 까닭에 성인(聖人, 공자)이 안연(顔淵)을 가르칠 때 사물(四勿)*에 지나지 않았으니, 다만 시(視, 보는 것)ㆍ청(聽, 듣는 것)ㆍ언(言, 말고 표현하는 것)ㆍ동(勳, 실행하고 지키는 것)에 공부를 더하도록 하였다. 이 시ㆍ청ㆍ언ㆍ동이란 것은 겉으로 하는 행동이다. 겉을 바르게 하면 속도 역시 바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자(程子)가 이 사물잠(四勿箴)을 짓는 데에도 역시 이와 같이 하였다. 시잠(視箴)에는 “보는 것을 법으로 삼아야 한다.” 청잠(聽箴)에는 “간사한 생각을 막고 성실한 마음을 길러야 한다.” 언잠(言箴)에는 “말을 입밖에 낼 때 조급하고 망..

거직 조왕(擧直錯枉):바른 자는 들어쓰고 굽은 자는 방치한다

“바른 자는 들어 쓰고 굽은 자는 방치해야 한다.”는 것을 성인(聖人)이 여러 번 말씀하셨으니 이것이 사람을 쓰는 요결이요,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이 나눠지는 한계가 되는 것이다. 까닭에 애공(哀公)의 물음에 대답하기를, “이같은 거조(擧錯)로 하면 백성이 복종하게 될 것이고, 이것을 반대로 하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옮긴이 주: 거조(擧錯)는 "들 擧, 둘 錯, 들어서 두다" 라는 의미로 , “바른 자는 들어 쓰고 굽은 자는 방치해야 한다.”는 앞서의 말을 전제한다.) 또 번지(樊遲)가 인(仁)을 물은 대답에,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하고, 지(知)를 물은 대답에는, “사람을 알아보아야 한다.” 하였다. 또 그 깨닫지 못하고 다시 물은 대답에는, “바른 자를 들어서 쓰고 굽은 자를 방..

지행합일(知行合一)

양명(陽明)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설은 또한 이유(理由)가 있다. 그러나 그의 말에, “무릇 행(行)이라 하는 것은 다만 착실히 그 일을 하는 것이니, 만일 착실히 학(學)ㆍ문(問)ㆍ사(思)ㆍ변(辨)의 공부를 한다면, 학ㆍ문ㆍ사ㆍ변이 곧 행(行)이다. 학(學)은 그 일을 배우는 것이요, 문(問)은 그 일을 묻는 것이요, 사(思)는 그 일을 생각하는 것이요, 변(辨)은 그 일을 변별(辨別)하는 것이니 행(行)도 또한 학ㆍ문ㆍ사ㆍ변이다. 만약 학ㆍ문ㆍ사ㆍ변을 한 연후에 행한다 한다면 어떻게 공중에 띄워 놓고 먼저 학ㆍ문ㆍ사ㆍ변을 할 수 있을 것이며, 행할 때에 또 어떻게 학ㆍ문ㆍ사ㆍ변 하는 일을 배울 것인가? 행(行)의 밝게 깨닫고 정하게 살피는[明覺精察] 것이 곧 지(知)이며, 지(知)의 참되고 간절하고..

논교[論交]:사귐을 논한다

옛사람은 친구와 사귈 즈음에 반드시 ‘사귐을 논한다[論交].’라고 했다. 이른바 사귐을 논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아마도 눈 앞의 즐거움만을 담론함에 그친 것이 아니고 반드시 서로 저버리지 않는 의리를 강론하였을 것이다. 만약 부귀한 자끼리 서로 만나 즐거움과 명리를 같이하는 경우라면 어찌 친구의 의리를 강론한 후에야 사귀어지겠는가? 《사기》에, “부자가 벗을 사귀는 것은 가난한 때를 위함이요, 귀한 자가 벗을 사귀는 것은 천(賤)한 때를 위한 것이다.” 했으니, 가난하고 천하게 되어도 저버리지 않아야만 비로소 친구인 것이다. 또 옛사람의 말에, “하나는 귀하고 하나는 천할 때에 친구의 정분을 볼 수 있고,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살았을 때에 친구의 정의를 알 수 있다.” 했으니, 이는 천고에 뼛속까지..

사람의 탈을 쓰고 있다고해서 다 사람은 아니다

마음을 논한 것이 하나가 아니니, 초목지심(草木之心)이라고 하는 것도 있고, 인물지심(人物之心)이라고 하는 것도 있고, 천지지심(天地之心)이라고 하는 것도 있다. 마음은 같은 것인데 같지 않은 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 완연(頑然)한 흙과 돌은 마음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초목(草木)이 생장(生長)하고 쇠락(衰落)하는 것은 마치 마음이 있어서 그렇게 하고 있는 듯하지만 지각(知覺)이 없으므로 생장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금수(禽獸)가 생장의 마음이 있는 것은 참으로 초목과 같지만, 또 이른바 지각하는 마음이 있다. 무릇 금수가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는데, 그중에 신체의 한 부분이나 털이나 깃은 보살핌을 받으면 충실해지고 손상되었다가도 다시 완전해지니, 이것은 초목의 마음과 조금도 ..

관점과 식견

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이 일찍이 여러 사람과 한자리에 모였는데, 어떤 사람이 “우리보다 먼저도 아니요 우리보다 뒤지지도 않았네(不自我先不自我後)*.”라는 말을 인용하여 어지러운 세상에 태어났음을 탄식하자, 현곡은 “이 난리가 우리보다 먼저 났으면 우리들의 조상이 당했을 것이요, 우리보다 뒤에 났으면 우리들의 자손이 당할 것이니, 차라리 우리들이 이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대처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니, 논평하는 자들이 이치에 통달한 말이라고 하였다. 또 학사(學士) 한 사람이 책을 절반도 보기 전에 땅에 던지면서 탄식하기를 “책을 덮으면 곧바로 잊어버리니 본들 또한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라고 하자, 현곡은 “사람이 밥을 먹으면 항상 뱃속에 머물러 있지는 않으나 그 영양분(營養分)이 또한 몸을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