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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할 때는 행할 것을 돌아보아야 한다

사마우(司馬牛)가 인(仁)을 묻자, 공자는 “인자(仁者)는 그 말이 참아지느니라(仁者其言也訒).”고 일러주었는데 사마우는 “그 말이 참아지면 그것을 인(仁)이라 이릅니까?” 하고 다시 물었다. 공자는 “실천하기가 어려우니 말이 참아지지 않겠는가?(爲之難言之得無訒乎, 논어, 안연편)”라고 말하였으니, 이것은 다만 말을 할 때는 행할 것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포함된 뜻이 넓지 않아서 곧 인(仁)에 꼭 맞지 않다. 대개 인자(仁者)는 자기(己)로써 남에게 미쳐서 남의 허물을 자기의 허물로 알아야 하는 것인데, 사마우의 사람됨을 상고(相考, 서로 견주어 고찰함)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자기를 책(責)하는 것은 가볍고 남을 책망하는 것을 중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가령 사마우가 남과 처지를 바꾸어 깊이 생각하..

먼저 깨닫고 대처함이 현명한 것

논하는 자들은 권모 술수를 쓰는 것은 손무자(孫武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목적 달성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는 온갖 모략이나 술책을 부리는 것을 가리켜 권모술수라 한다. 그 정도(正道)를 버리고 기발하고 교묘한 계책(奇謀)에 집착하며, 의(義)를 등지고 상대를 속이는 기술(詐術)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도(正道)와 의(義)를 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권모술수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써야 할 상황이 있고, 또 반드시 사용해서는 안되는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성인의 말에도, “남이 나를 속일 것을 미리 짐작하지 말아야 하고, 남이 믿지 않을 것이라 억측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지라도, 먼저 깨닫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고 하였다. 내가 아무리 정도를 지키더라도, 나와 ..

벌레와 짐승에게서 배운다 (雜說 三)

거미이야기 거미는 공중에 그물을 쳐서 날것들이 걸리기를 기다리는데, 몸집이 작은 모기ㆍ파리로부터 몸집이 큰 매미ㆍ제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거미줄로 잡아서 배를 채운다. 한 번은 벌이 거미줄에 걸렸다. 그런데 거미가 그 벌을 급히 거미줄로 동이다가 갑자기 땅에 떨어져 배가 터져 죽었다. 벌침에 쏘인 것이다. 어떤 아이가 벌이 거미줄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것을 보고 손으로 풀어 주려고 하는데 벌이 또 침을 쏘았다. 그러자 아이는 화가 나서 벌을 발로 밟아 뭉개 버렸다. 아, 거미는 날아다니는 온갖 것을 다 거미줄로 잡는 솜씨만 믿고 벌이 침을 쏠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하였고, 벌은 침 쏘는 것만을 능사로 여겨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과 구해 주려는 사람을 막론하고 만나는 족족 예외 없이 쏘는 바람에 구해 주..

천하의 강함은 부드러움에 있다

천하에서 지극히 부드러운 것을 들어 보자면 몸에 있어서는 혀만 한 것이 없다. 음식을 먹을 때나 말을 할 때 모두 이것을 쓰니, 의당 쉽게 닳아버릴 것 같지만 죽을 때까지 닳지 않는다. 사물에 있어서는 물만 한 것이 없다. 물은 성질이 흘러가고 스며드니 의당 힘이 없을 듯하지만, 만곡(萬斛, 아주 많은 분량, 매우 큼을 뜻함)의 배를 띄우고 천 길의 절벽을 무너뜨리고도 여유롭다. 이 두 가지는 천하에서 아무리 강한 것을 가져와 대치한다 하더라도 감당해낼 수가 없다. 가령 혀가 강하다고 한다면 그 자리에서 닳는 것을 볼 수 있고, 물이 강하다고 한다면 힘에 반드시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한 것은 강할 수 없고 부드러워야 강할 수 있으니, 부드러움의 덕이 지극하다 하겠다. 그러므로 입술을 놀리고 입..

본 바탕이 물들어서는 안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색이다. 하늘과 땅, 사람과 만물, 자연의 색이 있고 복식(服飾)과 기용(器用)과 회화(繪畵)의 색이 있다. 그런데 숭상하는 색이 시대마다 다른 것은 무슨 까닭인가. 자색(紫色)*을 싫어하는 것은 붉은 색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이고, 황색(黃色)*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중색(中色)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정색(正色)이 간색보다 우월하고, 중색(中色)이 오색 가운데 으뜸이라고 생각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물은 바탕이 있고 난 뒤에 색이 있으니 바탕은 색의 근본입니다. 그리고 백색은 또 색 가운데 바탕이 되는 색입니다.저는 색 중의 바탕을 먼저 말한 뒤에 다른 색을 언급하고자 하니, 그래도 되겠습니까? 백색의 속성은 깨끗하게 태소(太素)의 바탕을 가지고서 천연적으로 한 ..

밥벌레와 사람의 차이

《서경(書經)》에 이런 말이 있다. “배우지 않은 사람은 담장에 얼굴을 대고 서 있는 것과 같다.〔不學墻面〕” 이 때문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주남(周南)〉ㆍ〈소남(召南)〉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담장에 얼굴을 바로 대고 서 있는 것과 같다.〔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墻面而立也與〕” 주자(朱子)는 이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담장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한 물건도 보이지 않고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卽其至近之地 而一物無所見 一步不可行〕” 예로부터 배우기를 권면하고 배우지 아니함을 경계한 말이 많았지만, 이처럼 비근(卑近)한 말로 잘 빗대어 말한 경우는 없다. 그러나 너에게 말해 주어서 네가 혹시라도 두려운 마음으로 뜻을 세울 수 있게 하려면 네 몸의 일을 가지고 비유해서 절실하게 ..

첨설(諂說):아첨에 대하여

아첨이란 남을 기쁘게 해 주어 자기를 이롭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하가 임금에게 아첨하는 것은 임금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이고, 천한 자가 귀한 자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에게 도움을 받고자 해서이며,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부유함에 의지하고자 해서이다. 이는 모두 아래에서 위에 붙고,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구하는 것이다. 만일 정직하고 방정하여 이욕(利欲)을 초월한 사람이 아니면 상정(常情)으로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지만, 이것은 이로움을 꾀하고 환난을 면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이한 것은, 남의 아첨을 좋아하며 진정 자신을 사랑한다고 여기고, 남의 직언을 싫어하며 필시 자신을 소원하게 대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남이 높여 주는 말을 해주면 스스로 잘난 체하고, 남이 칭찬하는 모습..

관주설 (觀舟說)

나는 요즘 탁영정(濯纓亭)에 ☞우거(寓​居)하고 있는데, 탁영정은 도성 서쪽에 위치하여 긴 강을 굽어보고 있다. 강을 오르내리는 돛단배들이 아스라이 처마를 스치며 지나가는데 크고 작고 높고 낮은 모습들이 헛것인 듯, 그림인 듯 은은하다. 날마다 난간에 기대어 이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맞아 기분이 좋아진다. 배는 일개 ☞무정물(無情物)에 불과하건만 어쩌면 이리도 우리네 학문 수양과 닮았는지! 튼튼하고 질박한 모습은 인(仁)에 가깝고, 밀물과 썰물에 따라 오가는 것은 신(信)에 가깝다. 가운데를 비워 외물(外物)을 받아들이는 것은 군자의 넓은 도량이 아니겠는가? 무거운 것을 싣고 멀리 가는 것은 죽은 뒤에야 그만두는 군자의 공부가 아니겠는가? 가까이는 물가에서 움직이고 멀리는 수평선까지 가..

마땅히 좋아해야 할 것을 좋아한다

사람의 마음에 유난히 즐기고 혹심하게 좋아하는 것을 벽(癖)이라고 한다. 벽(癖)은 병이란 의미인가? 벽(癖)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벌써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從吾所好, 원래 문장은 공자가 “부를 구해서 이룰 수 있다면, 말을 끄는 마부라도 내가 또한 하겠다. 그러나 만일 구하여 이룰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 즉 내가 좋아하는 바는 의리에 따라 떳떳하게 사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하는 정도(正道)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벽은 보통 사람의 편벽됨일 뿐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땅히 좋아해야 할 것을 좋아하면, 좋아하는 것이 깊어질수록 아름다워지므로 벽(癖)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아해서 안 되는 것을 좋아하면, 좋아하는 것이 깊어질수록 병이 되..

작사지법(作史之法):역사서를 짓는 방식

역사를 쓰는 법은 그 요점이 그 사실을 기록하는 데 있을 뿐이다. 사실을 기록하면 사람의 선악(善惡), 사실의 시비(是非), 세상의 치란(治亂)을 상고하여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흑백(黑白)이 뒤바뀌고 주자(朱紫)가 뒤섞여 후세 사람들이 무엇을 근거로 당시의 진면목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공자께서 《춘추(春秋)》를 지으셨으니, 그 문장은 역사이고, 그 의의는 포폄(褒貶, 옳고 그름이나 착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의 뜻을 붙여 천자의 일을 사실의 기록 속에 행하였다. 그러나 사실을 기록한 노나라 역사서가 없었다면 어찌 이와 같이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노나라 역사서의 사실을 따라 필삭(筆削)을 가한 데 불과한 것이지, 사실을 기록한 이외에 따로 자신의 뜻대로 헤아려 법칙을 삼은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