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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예가 아닌 것에 귀를 막는다

귀가 맡은 것은 듣는 일로, 들을 때는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이로써 오사(五事, 모습, 말, 봄, 들음, 생각함)*에 통달하고 만 가지 변화에 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밝게 듣는 것이 지나치면 때때로 덕을 해치고 마음에 병이 되니, 지나치게 번거로우면 어지럽고, 들리는 것이 패악하면 번뇌가 쌓인다. 들을 때는 치우치지도 않고 잡박하지 않아서 오직 선(善)을 택해야 하니, 이것을 일러 “덕을 밝히고 어긋난 것을 막는다.”라고 하는 것이다. 때문에 국군(국왕 國王)은 주광(黈纊)*의 장식이 있고 가옹(家翁, 집주인)은 치롱(癡聾, 어리석고 귀먹은 사람)의 풍송(諷誦)*이 있으며 군승(郡丞)같은 미관(微官, 보잘것 없는 직책의 벼슬자리)에 이르러도 하상(何傷)의 설*이 있으니, 귀가 먹음은 진실로 수..

[고전산문]오직 마음으로 거울을 삼을 뿐

눈이 남은 보지만 자신을 보진 못하니 밝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의 의관이 바르지 못하면 자기가 그것을 보지만, 자기가 자신의 의관을 바르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거울로 비추어 보아야 하니, 거울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돌이켜 보게끔 한다. 지금 저 방에 등불을 밝히면 불빛이 반드시 새어나오지만 방안에 있는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나와서 밖에서 보아야만 드러나니, 보는 것에 현혹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착한 것도 있고 착하지 못한 것도 있는데 그것은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라다니듯 드러난다. 오늘 한 가지 일을 행하면 내일 사방의 이웃들이 그것을 알게 되고, 또 그 다음날은 온 나라 사람이 알게 되고, 천하가 알게 되고 만세토록 알게 되기에 이른다. 그런데도 자기만 스스로 알지 못..

[고전산문]지난 날을 애석해 함 (惜往日)

젊은 시절에는 내일이 많았고늙어버린 지금에는 어제가 많아지는구나 내일이 모두 다 어제가 되어버리니오늘이란 어쩌면 그저 찰나와도 같은 것만고 세월이 하나같이 이처럼 쌓여가고거침없이 흘러가니 어느 때에나 그칠거나황하의 물은 거꾸로 흐르지 않고 밝은 해는 서쪽에서 뜨지 않는데 먼저 깨닫고 일찍 아는 것도 마찬가지라덕과 학문을 닦는 방법도 오직 하나의 방도만은 아닐터통달한 사람은 세상에 업적을 이루고뛰어난 학자는 저술에 힘쓰는데 외연을 수양하는게 마침내 무슨 보탬이 될까거리낌 없는 말과 행동도 실질은 없는 법하늘이 내게 참된 마음 주었는데어찌하여 스스로 방종하게 내버려두었는가지금 거울 속에 보이는 수천 가닥의 흰 머리칼은아침 나절엔 검은 칠한 것처럼 보였는데애석한 마음 탄식하며 일어나 서성대니한 밤중의 귀뚜라미..

[고전산문] 서파삼우설(西坡三友說)

서파삼우(西坡三友)란 나의 벗 이이립(李而立)이 스스로 지은 별호이다. 이립은 사람들 중에서 호걸이다. 소년에 육적(六籍, 육경, 즉 시경, 서경, 역경, 춘추, 예기, 악경)에 통하여 우리 유학에 명성을 독차지 하였고, 을유년 과거에 급제하여 대간(臺諫)을 역임하고 인물을 전형하는 직임을 맡아 10년을 벼슬길에 있으면서 공로와 이름이 현저하니, 하늘이 낸 재능이라 이를만 하다. 기해년 가을에 벼슬에서 물러나 남방으로 돌아와 영천(永川)의 서파리(西坡里)에 살면서 스스로 호하기를 서파삼우(西坡三友)라 하니, 세 벗이란 양수(陽燧, 구리로 만든 불꽃을 지피는 도구)와 뿔 술잔과 쇠칼이다. 그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벗과 떨어져 혼자서 사니, 사람들이 나에게 벗을 구하려하지도 않고, 나도 굳이 사람들에게 ..

[고전산문] 바보를 파는 아이(賣癡獃)

거리에서 아이들이 외치고 다니면서 팔고 싶은 물건이 하나 있다고 한다. 무엇을 팔려느냐 물어보았다. "끈덕지게 붙어 다녀 괴롭기만한 바보를 팔겠다"고 한다. 늙은이가 말하기를, "내가 사련다. 그 값도 당장에 치뤄 줌세. 인생살이에 지혜는 내 그리 바라지 않는다. 지혜란 원래 시름만 안길 뿐이다. 온갖 걱정거리 만들어 내 평정심을 깨뜨리고, 온갖 재주 다 부려 약삭빠른 이해타산에나 쓰일 따름이다. 예로부터 꾀주머니로 소문난 이들의 처세는 어찌 그리도 야박하고 구차했던가. 환하게 빛나는 기름 등불을 보라. 자신을 태워 스스로 없애지 않는가. 짐승도 그럴 듯한 문채가 있으면 끝내 덫에 걸려 죽고야 만다. 그러니 지혜란 없는 게 낫다. 더우기 바보가 된다면 더욱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네게서 바보를 사련다. ..

[고전산문]사람을 아는 것과 헤아리는 것은 다르다

지인(知人, 사람을 아는 것)과 측인(測人, 사람을 헤아리는 것)은 다르다 함께 일을 해 봐야만 비로소 사람을 알 수 있고 일을 함께 하기 전에는 단지 사람을 헤아릴 수 있을 뿐이다. 일을 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떠함을 알고 일을 한 뒤에 그 징험(徵驗)이 과연 어김이 없으면, 이것을 일러 사람을 알았다고 하는 것이다. 만일 끝내 증험한 것이 없는데도 사람을 알았다고 한다면, 누군들 사람을 알지 못하겠는가. 일을 하기 전에 그 사람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헤아리는 것은, 매양 그 사람이 이미 끝낸 일을 인하여 이 일을 미루는 것이다. 혹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운화(運化)의 기회를 미루어 종말의 돌아갈 형세를 미리 재보는 것은 추후의 증험을 바로 기필할 수 없으므로, 이를 일러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

[고전산문]물결의 흐름을 보고 그 근원의 맑고 흐림을 안다

추측록 서(推測錄序) 하늘을 이어받아 이루어진 것이 인간의 본성[性]이고, 이 본성을 따라 익히는 것이 미룸[推]이며, 미룬 것으로 바르게 재는 것이 헤아림[測]이다. 미룸과 헤아림은 예부터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말미암는 대도(大道)다. 그러므로 미룸이 올바르면 헤아림에 방법이 생기고 미룸이 올바르지 못하면 헤아림도 올바르지 못하다. 올바름을 잃은 곳에서는 미룸을 바꾸어 헤아림을 고치고 올바름을 얻는 곳에서는 원위(源委 근본과 말단)를 밝혀서 중정(中正)의 표준을 세울 것이다. 이에 지나치면 허망(虛妄)에 돌아가고, 이에 미치지 못하면 비색(鄙塞: 엉뚱한 곳으로 빠져 막힘)에 빠진다. 아득한 옛날 태호(太昊 상고 시대의 제왕 복희(伏羲)를 말함)가 위로는 하늘을 보고 아래로는 땅을 살펴, 가까이는 자기 몸..

[고[고전산문] 육체의 눈과 마음

눈은 색(色)을 보고 귀는 소리를 듣지만 그것을 분별하여 취하고 버리는 것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문견(聞見)의 주비아속(周比雅俗)은 다만 듣고 보는 것만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분별하여 취하고 버릴 줄 아는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편벽된 사람의 문견(聞見)이라고 어찌 언제나 두루 함께 미치지 못하며, 속된 사람의 문견이라고 어찌 언제나 고아함에 미치지 못하였겠는가? 이는 마음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같지 않으므로, 취사(取捨)하는 것 역시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 이목(耳目)이 채 미치지 못하여 선하게 되지 못한 사람도 있으니, 이는 배우지 않고도 잘하는 사람에게 비견하여 책망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미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도 끝내 선하게 되지 못한 자는 선입관(先入觀)에 ..

[고전산문] 속임을 당하고도 속은 줄 모르고 사는 것이 부끄러운 것

기만하는 말은 또한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잠시 실적(實蹟)을 빌려 속에 있는 재화를 유인하거나 귀와 눈을 현혹하여 그릇된 길로 끌어들이는 일은, 진실로 창졸간에 나온 속임수이니, 보통 사람이 범하기 쉬운 것인 동시에 또한 쉽게 깨달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속임을 당한 것을 깨달으면 돌이키는 길이 어렵지 않고 또한 복철지계(覆轍之戒 앞 수레가 넘어지면 뒷 수레는 이것을 보고 경계하는 것이니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음을 말한다)로 삼기에 족하다. 그러나 잘못된 문학(差誤之文學)을 널리 말함으로써 남의 자제를 해롭게 하거나, 백성을 괴롭히는 정령(政令)을 가지고 임금의 도타운 부탁을 저버리는 것은 크나큰 기만이다.(옮긴이 주:맥락상 여기서 '문학 ' 이란, 문(文)과 학(學) 각각의 의미 즉 언어로 표현된..

[고전산문] 남을 아는 것은 자기를 얼마만큼 아느냐에 좌우된다

자신을 아는 것의 천심주편(淺深周偏 얕고 깊음, 두루 넓거나 치우침)은 마땅히 남을 아는 것의 천심주편으로 그 우열(優劣)을 결정하여야 한다. 남을 아는 것이 깊은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아는 것도 깊고, 남을 아는 것이 얕은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아는 것도 얕으며, 두루하고 치우침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을 안다고 하는 것이 어찌 자기의 사정(事情)만 알고 남의 사정을 모르는 것이랴! 자기를 다하고(盡己 진기) 사물까지 다한(盡物 진물)뒤에야 바야흐로 자신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니, 만일 능히 남을 아는 도(道)를 다하지도 못하면서 문득 자신을 밝게 안다 하는 사람은 반드시 식견이 천박하고 치우친 사람이다. 능히 남을 아는 도(道)를 다하는 사람은, 혹 자신을 아는 것에 다하지 못한 것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