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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졸(拙)을 길러 뜻을 저버리지 않는 편이 낫다 (養拙堂記) / 신개

나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소활(疏闊, 꼼꼼하지 못하고 어설픔)하여 항상 시장이나 조정의 기교*(서로 경쟁하여 명예나 이익을 다투어 머리를 굴리고 재간을 부리는 것)를 싫어하였다. 성 남쪽의 한가하고 궁벽한 곳, 누추하고 좁은 거리에 양졸당(養拙堂)을 짓고 일상의 동정(動靜)을 오직 졸(拙)과 함께하여 잠시라도 잊지 않았으니, 달 밝고 고요한 밤 뭇 동물들이 쉴 적이면 베개를 베고 누워 솔바람 소리를 듣곤 하였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내가 너무 오래도록 졸(拙)을 기르고 있다고 나무라는 이도 자못 있었고 나 또한 의문이 들기도 해서 이제 그만 끊어 버리고 떠나보내려 하였다. 그러나 졸(拙)은 또 애틋하게 미련을 둔 듯 기꺼이 떠나려 하지 않았으니, 마치 성난 기색이 있는 듯하였다. 내가 갑작스럽게 깨달은 듯 ..

[고전산문] 글의 진위(眞僞)를 구별하는 방법 / 이가환

무릇 글을 짓는 것은 초상화(肖像畵)와 같이 오직 비슷하게 할 뿐이다. 또 법률(法律)을 적용하는 것과 같이 마땅하게 할 따름이다. 내가 풍악록(楓嶽錄, 금강산 여행기)을 많이 보았는데, 대개는 과장(誇張)하여 진면목을 잃은 것이 열에 아홉이었다. 또 더러는 깎아 내려서 들은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겨지는 것이 있었다. 그 의도를 살펴보면, 진짜로 보고나서 그것을 칭찬하고 감탄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기이한 이론을 세우고자 하여 특이한 것을 찾는 것이었다. (『詩文艸』秋, '宗人熙天東遊錄後跋' 부분) 나는 성품이 우매해서 세상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오직 문장(文章)에 대해서만은 오랜 경험으로 익숙하다. 그래서 남이 쓴 글을 보면 어렵지않게 그 진위(眞僞)를 구별할 수 있었다. 문장의 진위를 ..

[고전산문] 글을 귀로 먹는 자들 / 허균

무릇 문장과 서화는 공벽(拱璧, 큰 옥석, 즉 진귀한 물건)이나 장주(掌珠, 손에 쥔 진주)와 같아서 정해진 제 값이 있는 것이나(즉, 안목과 식견을 갖춘 사람만이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다는 의미), 세상이 파사호(波斯胡, 서역인, 즉 페르시아 상인)가 아닌 이상 어찌 그 고하(高下, 값어치의 높고 낮음)를 알겠는가? 오늘 날 눈 어두운 자들이 모두 시문(詩文, 시와 글)도 세태를 따라 오르내린다 하여 눈으로 본 것은 배척하고, 귀로 들은 것만 귀히 여겨 모두 다 고인(古人, 옛 현인들)을 절대 따를 수 없다 하니, 아아, 큰 물이 밀어닥쳐 공중까지 넘실대어 산호가 잠긴 곳이 어느 곳인지도 모르면서, 맥모르고 스스로 나불나불 가리켜 구하는가. 이는 귀로 먹는 자들과 무엇이 다르랴!(이하생략) -허균(許..

[고전산문] 사물의 부림을 받지 않으려면 / 조귀명

천하의 근심은 항상 사물(物)에서 그 만족을 채우고자 하는 데서 생긴다. 구차스럽게 그 족함을 사물에서 애써 구한다면, 만족스럽지 않을 때 눈은 그 때문에 두려워하게 되고, 마음은 그 때문에 허둥지둥하며, 정신은 그 때문에 쉬이 피로해지고 만다. 내 온몸이 외물의 부림을 당하는 까닭에 족(足) 함에 이르지 않는다면, 근심은 그치지 않기 마련이다. 또한 내가 접하는 세상 사물(物)은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내가 그 족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 또한 그와 더불어 무궁하다 하겠다. 하나에 만족하더라도 반드시 둘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몸 또한 둘에 부림을 당하여 족함을 구한다. 동쪽에 족한다 할지라도 반드시 서쪽에 족하지 않는다면, 몸 또한 서쪽에 부림을 당하여 족함을 구한다. 부귀영화와 명성(富貴榮名)과 찬란한 ..

[고전산문] 명성만으로 호불호가 엇갈리는 속물들에 대하여(倭驢說 왜려설) /조귀명

하생(河生)의 이름은 징(澄)으로 대구 사람이다. 그의 이웃 집에 말이 한 마리 있었는데 모양새가 몽땅하고 왜소하여 타고 다니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내어다 팔려고 하였으나 다리까지 절었으므로 사려는 사람도 없었다. 이에 하생이 300전의 돈을 지불하고 시험삼아 길러보기로 하였다. 해를 넘기자 절던 다리도 나았고 재주도 예사롭지 않은 점이 있었다. 그 말을 타고 서울을 가는데 700리 길을 겨우 4일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무릇 객주(客主)에라도 들게 되면 함께 쉬어 가거나 말에게 먹이를 먹이고 있던 나그네들이 모두들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신기한 구경거리로 여겼다. 어떤 이들은 말이라고 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당나귀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노새와 같이 생겼다고 하였다. 하생에게 진지하게 물어왔으므로 ..

[고전산문] 소인(小人)이 소인됨은 소인 스스로 아는 것 / 김시양

참찬 백인걸(白仁傑)은 늦게 과거에 급제하여 정언(正言, 사간원의 하위 관직, 왕에게 간언하는 간관직책)으로서 창평 현령(昌平縣令)이 되었다. 늙은 어머니를 위하여 날마다 잔치를 베풀어서 드디어 백성을 잘 다스리지 못했다는 나무람을 듣게 되자, 감사 최보한(崔輔漢)이 파면시켰다. 그런데 최보한이 일찍이 백인걸에게 탄핵을 당했으므로 사람들은 대부분 그 보복이라고 말하였다. (참고: 참찬은 국정에서 3 정승을 보좌하는 고위 직책이다. 오늘 날의 국무조정실장에 해당하는 장관급) 인종(仁宗) 서거 당시 최보한은 국상(國喪) 때에 기생을 끼고 놀았다고 하여 죄를 받고 파면되었다. 명종이 즉위하면서 대사령(大赦令)을 내리니, 최보한이 다시 채용되었다. 대간이 그를 탄핵하려고 하니, 백인걸이 그때 헌납(사간원의 관직..

[고전산문] 왜 비슷한 것을 실물의 진짜보다 더 귀하게 여길까? / 김시양

명(名, 평판, 명성, 명예 등등)이란 것은 실(實, 실제를 이루는 근본적인 것)의 손(賓, 손님 즉 실질의 것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거의 다 손(賓)을 귀하게 여기고 실(實)을 천하게 여긴다. 이제 사람이 한 개의 옛 그릇을 얻으면 반드시 굳이 어느 시대의 물건이라고 이름을 붙인 뒤에야 남들이 다 그것을 귀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비록 기와처럼 천한 물건이라도 아름다운 구슬과 동등하게 여긴다. 이제 모래와 돌도 다 혼돈(混沌)의 태초(太初)에 형체가 이루어진 것인데 그것은 귀하게 여기지 않음은 무슨 까닭인가. 사람이 그림을 취하는 것은 그것이 실물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에 괴이하게 생긴 소나무와 이상한 대나무나, 기이한 꽃, 오묘한 풀로 세상에 드문 것도 그다지..

[고전산문]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보다 더 큰 것은 없다 / 유성룡

(상략) 옛날 소동파(蘇東坡)는 일찍이 화(和)와 동(同) 두 글자를 논하기를, “동(同, 한가지, 같음, 함께함, 같은 것들이 무리를 이룸)은 물에 물을 탄 것 같고, 화(和, 조화, 화합, 합침, 화해, 같거나 다른 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룸)는 국에 양념을 한 것과 같다.” 하였다. 그러므로 신하들의 습성에 조화롭게 지내는 것은 좋으나, 부화 뇌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마다 진실로 부화 뇌동하는 것을 숭상한다면 천하는 또한 위태하다고 하겠다. 천하의 사리(事理)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보다 더 큰 것은 없다. 옳고 그름을 가린 뒤에야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밝힐 수 있고,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밝힌 뒤에야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자신에게 행한다면 ..

[고전산문] 구이지학(口耳之學) / 유성룡

‘홍범(洪範)’에 말하기를, “생각한다는 것은 예지를 말함(思曰睿)이며, 예지란 성인(聖人)을 만든다(睿作聖).”고 했으니, 엄숙ㆍ조리ㆍ지혜ㆍ도모는 생각하지 않으면 설 수 없다. (옮긴이 주: 睿(예)는 깊고 밝은 예, 슬기 예의 뜻으로, 즉 '생각한다는 것'은 곧 사려깊게 분별하여 깊은 뜻을 찾아내어 밝히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다.) 오행(五行)에서는 토(土)에 속하여, 금(金)ㆍ목(木)ㆍ수(水)ㆍ화(火)에 토기(土氣)가 없는 데가 없다.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실제로 얻어지는 것이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 말하였다. 《중용》의 박학(博學)ㆍ심문(審問)ㆍ신사(愼思)ㆍ명변(明辨)ㆍ독행(篤行) 다섯 가지는 생각이 주가 되기 때문에 그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 맹자는, “..

[고전산문] 사람의 말을 하는 앵무새 / 김만중

구마라습(鳩摩羅什, 인도의 승려, 중국에 포로로 잡혀가 많은 불경을 번역하여 중국불교 보급에 큰 공헌을 함 )이 말하기를, "인도사람(天竺人)의 풍속은, 사물이 아름다운 색조로 표현된 것(文彩)을 가장 숭상하기 때문에, 특히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는 글이나 노래(讚佛詞)는 매우 아름답다. 그런데 이를 중국어로 번역하면 단지 그 뜻만 알 수 있고, 그 말과 글에 담겨있는 진정(眞情)과 감동(感動)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이치가 정녕 그럴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입으로 표현된 것이 말이요, 말을 가락에 담아 표현한 것이 시가문부(詩歌文賦)이다. 온 세상의 지역과 나라마다 사용하는 말이 비록 같지는 않더라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실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그 말에 따라 가락에 맞춰 표현하였다면,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