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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아는 만큼 보인다 / 유한준

그림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 아끼는 사람, 보는 사람, 소장하는 사람이 있다. 중국 동진(東晉)의 고개지(顧愷之)의 그림을 부엌에 걸거나, 왕애(王涯)의 그림을 벽에다 꾸미는 것은 오직 소장한 것일 뿐, 단지 소장한 것만으로는 능히 그 그림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설령 본다 해도 어린애가 보는 것과 비슷하다. 그림을 보며 입을 벌리고 흐뭇해 하지만, 붉고 푸른 색깔 외에 다른 것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능히 그 그림을 아끼고 사랑할 수가 없다. 설령 사랑하고 아낀다 해도 오직 붓과 종이의 색깔만 가지고 취하는 사람, 또는 그림의 형상과 배치만 가지고 구하는 사람은 능히 그 그림을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은 외형이나 법도 같은 것은 잠시 접어두고, 먼저 오묘한 이치와 아득한 조..

[고전산문] 글을 짓는 방법 3가지 / 심익운

글(文)을 짓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가 있다. 도(道)와 법(法)과 신(神)이다. 도(道)는 본체며, 신(神)은 작용이고, 법(法)은 그 틀(器)이다. 이것을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도(道)는 그 사람됨의 근본이다. 법(法)은 눈·코·입·귀·몸 등등처럼 바꿀수 없는 것이며, 신(神, 정신)은 그 지각운동의 영민함(정신활동, 즉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는 일체의 정신활동)이다. 그러므로 도(道)로써 그 학문의 근본을 세우고, 법(法)으로써 그 바탕을 바르게 하며, 신(神)으로써 깨달음을 오묘하게 하는 것이다. 도(道)는 항상 주(主, 주인, 근본)가 되고, 법(法)과 신(神)은 서로 번갈아 그 뒤를 따르기에, 그로부터 기(奇, 독특함, 즉 독창성 혹은 창의성을 뜻함)와 정(正, 누구가 다 아는 원칙으로서의..

[고전산문] 중도(中道)는 일을 합당하게 처리하는 것 / 기대승

(상략) 근래에는 대소의 일에 대해 말하는 자가 있으면 과격하다고 하면서 중도(中道)를 얻어야 한다고 합니다. 아랫사람들이 어찌 중도(中道)를 배우고 싶지 않겠습니까마는 ‘중(中)’ 자는 가장 알기 어렵습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똑같이 대해 주는 것이 중도가 아니고 선을 드러내고 악을 막는 것이 바로 중도(中道)입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모두 거두어 함께 기르려고 하면 이것은 자막(子莫)의 집중(執中)*입니다. 도에 귀중한 것은 중도(中道)이고 중도에 귀중한 것은 권도(權道)입니다. 한 자 되는 나무를 가지고 말한다면 다섯 치가 중(中)이 되지만, 하나는 가볍고 하나는 무거운 물건을 가지고 말한다면 물건에 알맞은 것이 중도가 됩니다. 모든 일을 과격하게(냉정하고 엄격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고전산문] 비록 초라하게 살지라도 / 이가환

만약 현실에서 마주하는 '이것(是, 여기에선 '상황' '처지'를 특정하고 있음, '거시기')’을 능히 즐길 수 있다면, 비록 달팽이집처럼 작고 누추한 집에 살고, 새끼줄 띠를 두른 허름한 옷을 입고, 부스러기 쌀 하나 들어있지 않은 초라한 나물국을 먹더라도 모두 다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능히 ‘이것(是)’을 즐길 수 없다면, 무기고와 같은 넓은 터에 튼튼하게 벽을 쌓아 큰 집을 짓고,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날마다 온갖 맛있는 음식을 갖추어 먹는 부유하고 풍요로운 상황에 처할지라도 오히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 집의 주인은 비록 두어 칸 밖에 안 되는 보잘 것 없는 집이라도 비바람을 가릴 수 있으면 족하고, 비록 삼베와 갈포로 만든 옷일지라도 추위와 더위를 막..

[고전산문] 역사서를 읽는 방법 / 이이

○ 《사기(史記), 여기선 역사의 기록, 즉 역사서를 말함, 이하 '역사서'로 대체》를 읽으면, 모름지기 치란(治亂)의 기틀과 현인 군자의 출처(出處)와 진퇴(進退)를 보아야 할 것이니, 이것이 곧 격물(格物, 사물의 이치와 도리를 헤아려 규명함)이다. 《정씨유서(程氏遺書)》 ○ 이천(伊川) 선생의 말씀이다. 정자가 말하기를, “대개 역사서를 읽을 때에는 한갓 사적(事迹)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그 치란(治亂)과 안위(安危)와 흥폐(興廢)와 존망(存亡)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또 〈한고조 본기(漢高祖本紀)〉를 읽는다면 한나라 4백 년의 시종(始終)과 치란이 어떠하였던가를 알아야 할 것이니, 이것 역시 배우는 것이다.” 하였다. ○ 또 말하기를, “나는 역사서를 읽을 때마다 반쯤 읽으면 곧 책을 덮고 생각하..

[고전산문] 역사 인물의 평가 기준 / 기대승

대답하겠습니다. 천지 사이의 한 유생(儒生,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으로 만고의 일을 두루 살펴보매 한스럽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인의 자취를 상상하고 전현(前賢, 옛 현인)의 뜻을 추구하여, 높은 난간에 기대고 경침(警枕, 공처럼 둥글게 깍아 만든 나무 베게 )*에서 잠을 깨는 회포를 한번 시원하게 펴 보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집사 선생께서 시장(試場, 시험장)에 책문(策問)을 내시되 특히 "고인(옛 사람)의 은현(隱見, 드러나지 않은 것과 드러난 것)과 지업(志業, 뜻을 세워 그것을 이루고자 한 일)의 서로 다른 점"을 들어서 물으셨습니다. 어리석은 소생은 청하건대 그 밝게 물어 주신 질문 가운데 이른바 ‘마음가짐과 일을 행한 자취(處心行事之跡)’ 의 뜻을 통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고전산문] 오직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알 수 있는 것 / 이익

사광(師曠 춘추시대 진(晉)의 악사(樂師))이 진 평공(晉平公)에게, “어려서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해가 돋아오를 때의 햇빛 같고, 장성하여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해가 중천에 오를 때의 햇빛과 같으며, 늙어서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켜놓은 촛불의 빛과 같다.” 하였으니, 이 말은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오직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학문이란 사색(思索)하는 것만 같은 것이 없고, 얻음이란 책만한 것이 없으니, 사색하여도 얻지 못하면 오직 책이 스승이 되는 것이다. 밤에 사색하여 얻지 못하였을 때에는 분ㆍ비(憤悱, 마땅히 표현을 어떻게 할 수 없어 고심하며 안타까워하고 한탄함 )하다가, 해가 돋은 뒤에 책을 대하면 그 즐거움이 어떠함을 알 수 있을 것이고, 낮에 얻지 못하였을 때에는..

[고전산문] 껍데기에서 나를 찾아 본들 / 박지원

영처자(嬰處子 이덕무(李德懋) )가 당(堂)을 짓고서 그 이름을 선귤당(蟬橘堂)이라고 하였다. 그의 벗 중에 한 사람이 이렇게 비웃었다. “그대는 왜 어지럽게도 호(號)가 많은가. 옛날에 열경(悅卿, 김시습)이 부처 앞에서 참회를 하고 불법을 닦겠다고 크게 맹세를 하면서 속명(俗名)을 버리고 법호(法號)를 따를 것을 원하니, 대사(大師)가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열경더러 이렇게 말을 했네. ‘심하도다, 너의 미혹됨이여. 너는 아직도 이름을 좋아하는구나. 중(승려)이란 육체가 마른 나무와 같으니 목비구(木比丘)라 부르고 마음이 식은 재와 같으니 회두타(灰頭陀, 행각승)라 부르려무나. 산이 높고 물이 깊은 이곳에서 이름은 있어 어디에 쓰겠느냐. 너는 네 육체를 돌아보아라. 이름이 어디에 붙어 있느냐? 너에게 ..

[고전산문] 변할 수 없는 것 / 이덕무

사람이란 변할 수 있는 것일까? 변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변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려서부터 장난을 하지 않고 망령되고 허탄하지 않으며 성실하고 삼가며 단정하고 정성스러웠는데, 자라서 어떤 사람이 권하여 말하기를, “너는 세속과 화합하지 못하니 세속에서 너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므로 그도 그렇게 생각하여, 입으로는 저속하고 상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몸으로는 경망하고 부화(浮華, 실속없이 겉치레를 화려하게 꾸미는 것)한 일을 행하였다. 이와 같이 하기를 3일쯤 하고는 축연(蹙然)히(문득) 기쁘지 않아서 말하기를, “내 마음은 변할 수 없다. 3일 전에는 내 마음이 든든한 듯하더니 3일 후에는 마음이 텅 빈 것 같다.” 하고는 드디어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이욕을 말하면 기운이 없어..

[고전산문] 귤이 탱자가 된 이유 / 안자춘추

안영(晏嬰)은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齊)의 명재상이다. 제나라 3대 왕에 걸쳐 재상을 역임했다.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비단옷을 입지 않을 정도로 근검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였으며, 덕과 지혜가 높은 현자(賢者)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세상은 안영을 안평중(晏平仲) 혹은 안자(晏子)라는 존칭으로 불렀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 열전에서, “직언을 하되 군주의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이른바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만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잘못을 보완할 것만 생각한다(進思盡忠, 退思補過)'는 말 아니겠는가? 안자가 살아 있다면 내가 그를 위해 말채찍을 들 만큼 그를 흠모한다.” 고 칭송할 정도로 군주앞에서도 반드시 옳고 그름을 따지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안영은 키가 작고 왜소한 체격을 가졌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