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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칭찬과 비방에 대하여 / 유종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남에게서 비방이나 칭찬을 받는 데에는 또한 각기 그 이유가 있다. 군자(君子)*는 아랫자리에 있으면 비방을 많이 받고 윗자리에 있으면 칭찬을 많이 받으며, 소인(小人)*은 아랫자리에 있으면 칭찬을 많이 받고 윗자리에 있으면 비방을 많이 받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군자는 윗자리가 적합하고 아랫자리는 적합하지 않으며, 소인은 아랫자리가 적합하고 윗자리는 적합하지 않으니, 적합한 자리를 얻으면 칭찬이 오고 적합한 자리를 얻지 못하면 비방이 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군자가 난세(亂世, 혼란하고 어지러운 세상)를 만나 어쩔 수 없이 윗자리에 있게 되면 그의 주장이 반드시 군주와 어긋나는 반면에 이로움이 반드시 백성에게 미친다. 이로 인해 비방이 위에서 행해지고 아래..

[고전산문] 성벽 안의 여우, 사당의 쥐(城狐社鼠)

조조의 위나라를 접수한 사마염이 진(晉)을 건국하고 삼국을 통일하였는데, 이후 30년 만에 황족인 사마씨 간의 권력다툼, 즉 8왕의 난으로 극도의 혼란을 겪게 된다. 이 틈을 타서 흉노족(유목민족을 통칭하는 말)의 유연이 건국한 한(韓, 훗날 조趙로 개명함) 나라가 낙양과 장안을 차례로 함락하여 진은 몰락하고 마침내 중국 북부의 지배권을 잃고 만다. 당시 건업에 피신하고 있던 황족인 낭야왕 사마예는, 이 소식을 듣자 건업을 건강(建康, 훗날의 남경 南京)으로 개명하여 진의 수도를 장안에서 건강(建康)으로 천도를 선포하고, 진(晉)의 황제로 등극하였다(317년). 이가 진원제(晉元帝)다. 사마염이 최초로 건국한 진을 서진, 사마예가 건국한 진을 구별하여 동진이라 부른다. 조조의 위나라, 사마씨의 서진, 동..

[고전산문] 부끄러움을 아는 것 / 이언적

군자가 지녀야 할 도리 중에서 귀한 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내면을 살피고 헤아려서 마침내 잘못이 없어야 비로소 마음에 부끄러움 없다고 능히 말할 수 있다. 아무도 없는 방에 홀로 있을 때부터 천지간의 일들에 이르기까지 잘못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누가 보든 말든 듣든 말든 상관없이 오직 한결같이 스스로 삼가하여 어디에도 잘못으로 인한 부끄러움이 없어진다면, 비로소 중심을 잡고 뭇 사람들 가운데 의젓하게 우뚝 서서 오직 사람된 도리(道)에 의지한다 자신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허물과 실수가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모호한 상태에 놓이게 되면, 마치 흰 종이에 찍힌 점 하나와 같아서 비록 그리 흠이 되지 않을 듯해도, 마침내 그 점 하나가 드러남으로 인하여 그 마음의 ..

[고전산문] 대추나무 가시끝에 조각하기 / 한비자

어떤 송나라 사람이 연왕에게 찾아와 간청하기를, 대추나무의 가시 끝에 암컷 원숭이를 조각하여 연왕에게 바치겠노라 하였다. 다만 나무 가시끝에 조각된 원숭이를 볼려면, 3개월 동안 목욕재계를 해야 볼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연왕은 나무 가시끝에 조각된 원숭이를 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연왕은 그에게 3승의 땅*을 하사하였다. 연왕을 가까이서 섬기는 궁궐의 대장장이가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연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군주가 열흘 동안이나 목욕 재계하며 연회를 열지 않은 일을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왕께 장담한 그 송나라 사람이 3개월동안 몸과 마음을 깨끗히 하는 기한을 정한 까닭은, 임금님께서 그토록 오랫 동안 재계하면서까지 쓸모 없는 물건을 구경할 생각은 못할 것이라 미리 짐작하였..

[에세이] 최악의 글쓰기 / 조지오웰

현대의 글쓰기에서 최악의 경우는 그 의미를 명확하게하기 위해 이미지를 발명하고, 그 의미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 단어를 추려내는 것으로 구성되지 않은 글이다. 그것은 이미 누군가가 열거한 단어들의 긴 조각들을 함께 묶어 만든 글이며, 속이 뻔한 속임수로 결과가 나온 글이다. 이 글쓰기의 매력은 그것이 쉽다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익숙해지면 더 쉽다... 진부한 은유들, 직유들, 그리고 숙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가진 의도를 애매모호하게 하여 흐리게 할 뿐 아니라 독자는 물론 자신에게도 그러한 대가로 많은 정신적 노력을 덜어낼 수 있다. 혼합된 은유의 요체가 여기에 있다. 은유의 유일한 목표는 시각적 이미지를 불러오는 것이다...(이러한 글쓰기의 경우에)단어와 의미는 거의 별개의 차원이다. 이런 방식으로 ..

[고전산문] 사람을 헤아리는데에 조심해야 할 것 / 최한기

바르지 못한 믿음과 부당한 의심​측인(測人, 사람을 살피고 헤아림)함에 있어 엄히 조심할 것이 있으니, 의심하지 않을 사람을 의심하고 믿지 못할 사람을 믿는 것이다. 이것은 전에 들은 기괴(奇怪)한 말을 자기 혼자만 아는 기밀로 자부한 데서 생기는 것이니, 이런 자들은 의거하는 것이 허무한 방술(方術, 방법과 기술)이고 찾는 것이 음사(陰邪, 음흉하고 사악함)한 묘맥(苗脈, 일의 실마리 또는 단서)이다. 광명(光明)한 대업(大業)과 경상(經常, 변함없이 일정함)의 인도(人道, 사람의 도리)가 이런 사람을 만나면 무너지니, 사람을 속여서 물건을 취하고 사람을 암흑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이 이들의 능사이다. 재색(財色, 재물과 여색)ㆍ과환(科宦, 과거시험에 합격한 벼슬아치)에는 부정한 방법으로 추구하여 서..

[고전산문] 바르게 서야할 근본 세 가지 / 신흠

예의와 법도는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지만 먼저 할 바는 아니고 형명(刑名)과 비상(比詳)*은 정사(政事, 정치, 나라와 백성을 다스림)에서 나온 것이지만 힘쓸 바는 아니고 삼군(三軍)과 오병(五兵 5종의병기)은 법률에서 나온 것이지만 긴요한 것은 아니고 돈ㆍ비단ㆍ곡식은 용도에 필요하지만 급한 것은 아니다. 예의와 법도일 뿐이라고 한다면 두 손을 잡고 꿇어 앉는 것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며, 형명과 비상일 뿐이라고 한다면 수갑과 형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며, 삼군 오병일 뿐이라고 한다면 긴 창과 큰 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며, 돈ㆍ비단ㆍ곡식일 뿐이라고 한다면 말ㆍ휘ㆍ저울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니, 이 네 가지는 끝이지 근본이 아니며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바이지 ..

[고전산문] 입언(立言)을 배우고자 한다면 / 유몽인

만약 옛날의 이른바 '입언(立言)'*이라는 것을 배우고자 한다면, 거기에는 어떤 묘리가 있다. 내가 보기에 한나라 시대의 사람(漢人)으로 삼대(三代, 중국 고대 왕조시대, 하(夏)·상(商)·주(周))를 배운 자는 삼대(三代)가 될 수 없고, 단지 한나라 시대의 사람(漢人)일 따름이다. 송나라 시대의 사람(宋人)으로 한퇴지(한유)를 배운 자는 한퇴지가 될 수 없고, 오로지 송나라 시대의 사람(宋人)일 뿐이다. 이에 나는 고인(古人, 옛 현인의 사상과 문장)을 배우고자 한다면 앞서 고인(古人)이 배운 바를 먼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경(西京,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의 도읍지인 장안, 즉 한, 수, 당 시대)의 문장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 시대의 현인들이 배우고 익힌 바의 육경(六經)과 『좌전』․『국어..

[고전산문] 술집을 지키는 사나운 개와 사당의 쥐 (酒拘社鼠) / 한비자

송나라에 술을 파는 자가 있었다. 사람이 정직하여 술의 양과 질을 속이지 않고 매사에 공정하고 정확하였다. 손님을 대할 때에도 매우 공손하여 술 맛을 더욱 좋게 만들었다. 자신이 파는 술에 자부심을 가지고 깃발을 매우 높게 달아 사방에서 깃발이 뚜렷이 보였다. 그러나 오래도록 술이 팔리지 않았고, 결국 술이 식초처럼 쉬어버리고 말았다. 술집 주인은 그 이유를 괴상히 여겼다. 그래서 평소 알고 지내던 마을의 장로 양천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양촌은 이내 대답하기를, 엉뚱하게도 "너의 개가 사납다. "라고 하였다. 주인은 "아니 내가 키우는 개가 사나운 것과 술이 안팔리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다시 물었다. 그러자 양촌은, "사람들이 무서워해서 그렇다. 어떤 사람이 어린 자식으로 하여 호리병..

[고전산문] 졸부(拙賦) / 주돈이

어떤 이가 주돈이(周敦颐)에게 말하기를, "사람들이 그대가 졸(拙)하다고 하더이다." 그러자 주돈이는, "나는 교묘하게 꾸미는 것(巧)을 남몰래 부끄럽게 여긴다 세상에는 교묘하게 재주를 부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기쁜 마음으로 부(賦)를 지어 읊었다. "꾸미는 재주가 교묘한 사람(巧者)은 말이 능하고, 꾸미는 재주가 서툰 졸한 사람(拙者)은 침묵한다.고로 교자(巧者)는 애써 수고롭고, 졸자(拙者)는 한가하다. 교자(巧者)는 덕을 해치고, 졸자(拙者)는 덕을 베푼다. 따라서 교자(巧者)는 흉하고, 졸자(拙者)는 길하다. 오호라! 온 천하가 교묘하게 꾸미지 않는 졸(拙)한 상태라면,형벌로 다스리는 정치는 거두어지고,위에서 편안하니 아래가 순종하여 따른다. 이로써 풍속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