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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시비(是非)와 이해(利害)의 기준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大衡]이 있는데 하나는 시비(是非)의 기준이요, 다른 하나는 이해(利害)의 기준이다. 이 두 가지 큰 기준에서 네 종류의 큰 등급이 생기는 것이다. 옳은 것을 지켜서 이익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등급이요, 그 다음은 옳은 것을 지켜서 해를 받는 것이며, 그 다음은 나쁜 것을 좇아 이익을 얻는 것이며, 가장 낮은 등급은 나쁜 것을 좇아서 해를 받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 다산시문집 제21권 "아들들에게 부친 편지들" 중에서-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다산 시문집 제 21권 성백효 (역) ┃ 1986

[고전산문] 문장은 학식이 속에 쌓여 그 문채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

내가 열수(洌水) 가에 살 때였다. 하루는 묘령(妙齡)의 소년이 찾아왔는데 등에는 짐을 지고 있기에 그것을 보니 서급(書笈 책상자)이었다. 누구냐고 물으니, “저는 이인영(李仁榮)입니다.” 라고 하였고, (몇 구절 삭제하였음.) 나이를 물으니 열아홉이라고 했다. 그의 뜻을 물으니 뜻은 문장에 있는데, 비록 공명(功名 과거시험을 통과해 벼슬에 오르는 것)에 불리하여 종신토록 불우하게 살게 되더라도 후회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서급을 쏟으니, 모두 시인재자(詩人才子)의 기이하고 청신한 작품들이었다. 파리 머리처럼 가늘게 쓴 글도 있고 모기 속눈썹 같은 미세한 말도 있었다. 그의 뱃속에 들어 있는 지식을 기울여 쏟으니 흘러나오는 것이 호로병에서 물이 흐르듯 하였는데, 대개 서급에 있는 것보다도 수십 배나..

[고전산문]대체를 기르는 일과 소체를 기르는 일

만일 우리가 배불리 먹고 따듯이 입으며 종신토록 근심 없이 지내다가 죽는 날 사람과 뼈가 함께 썩어버리고 한 상자의 글도 전할 것이 없게 된다면, 삶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런 것을 일컬어 삶이라고 한다면, 그 삶이란 금수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제일로 경박한 남자가 있으니,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기르는 일에 속하는 것을 지목하여 한사(閑事)라 하고, 책을 읽어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지목하여 고담(古談)이라고 한다. 맹자가 말하기를, 그 대체(大體)를 기르는 자는 대인이 되고 그 소체(小體)를 기르는 자는 소인이 된다고 하였다. 저들이 소인됨을 달게 여기는데, 나 또한 어찌할 것인가? 만약 우리 인간이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며 온 생애동안 근심 없이 지내다가 죽자마자 사람과 뼈가 함께 썩..

[고전산문] 오학론(五學論)

이 세상을 주관(主管)하면서 온 천하를 배우(俳優)가 연극을 연출하는 것과 같은 기교로 통솔하는 것이 과거학(科擧學)이다. 요순과 주공ㆍ공자의 글을 읽고 노자ㆍ불교ㆍ황교(黃敎)ㆍ회교(回敎)의 교리를 배척하며, 시례(詩禮)를 얘기하고 사전(史傳, 역사와 기록)을 논할 적에는 그대로 유관(儒冠)에 유복(儒服)을 입은 하나의 으젓한 선비이다. 그러나 그 실상을 조사하여 보면, 글귀를 표절하여 아름답게 꾸며서 한때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킨 것일 뿐, 요순을 진정으로 사모하고 있지도 않고 노자ㆍ불교를 진정으로 미워하지도 않음은 물론, 마음을 다스리고 행동을 검속하는 법과 임금의 잘못을 바루고 백성에게 은택을 베푸는 법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항우(項羽)와 패공(沛公 유방(劉邦)이 한 고조(漢高..

[고전산문] 용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취하는 어리석음

상(相 용모(容貌)를 말함)은 익히는 것[習]으로 인하여 변(變)하고, 형세는 상(相)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데, 그 형국(形局, 사람이나 사물의 모양이나 상태)이다 유년(流年, 해마다보는 사주, 즉 사주팔자)이다의 설(說)을 하는 사람은 거짓이다. 아주 어린아이가 배를 땅에 대고 엉금엉금 길 적에 그 용모를 보면 예쁠 뿐이다. 하지만 그가 장성해서는 무리가 나누어지게 되는데, 무리가 나누어짐으로써 익히는 것이 서로 달라지고, 익히는 것이 서로 달라짐으로써 상(相)도 이로 인해 변하게 된다.(옮긴이 주: 사람의 상相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고정관념에 따라 그 용모를 보고 사람을 이러쿵 저러쿵 판단하는 결정론적 사회 통념을 비판하고 있다) 서당(書堂)의 무리는 그 상이 아름답고, 시장(市場)의 무리는 그 상..

[고전산문] 문장은 외적인데서 구할 수 없는 것

문장학(文章學)은 사도(斯道 유교의 도리와 도덕)의 큰 해독이다. 이른바 문장이란 어떤 것인가. 문장이라는 것이 허공에 걸려 있고 땅에 펼쳐져 있어 바라볼 수 있고 달려가 잡을 수 있는 것인가. 옛사람은 중화(中和, 온화함과 조화로움을 마음의 중심에 두는 것)와 지용(祗庸, 공손한 가운데 상식적인 도리를 지키는 것, 즉 떳떳하고 당당함)으로 인격을 수양하고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으로 행동을 성실히 하였다. 또 시서(詩書)와 예악(禮樂)으로 기본을 배양했고 《춘추(春秋)》와《역경》의 상사(象辭, 기록된 것을 미루어 현상을 헤아림)로 사변(事變 천지만물의 변화, 천재지변 등)을 통달하여 천지의 올바른 이치와 만물의 갖가지 실정을 두루 알았다. 그리하여 마음속에 축적된 지식이, 대지가 만물을 짊어지고 대해..

[고전산문] 술수학(術數學)은 학문이 아니라 사람을 미혹하는 술책이다

술수학(術數學)은 학문이 아니라 혹술(惑術, 사람을 미혹하는 술책)이다. 한밤중에 일어나 하늘을 쳐다보고 뜰을 거닐면서 사람들에게, “형혹성(熒惑星, 화성)이 심성(心星, 전갈자리의 안타레스, 붉은 빛을 띔)의 분야를 침범하였다. 이는 간신(奸臣)이 임금의 권세를 끼고 나라를 도모할 조짐이다.” 하기도 하고, 또, “천랑성(天狼星, 시리우스, 눈으로 볼 수 있는 항성중에 가장 밝음)이 자미성(紫微星, 북두칠성중 가장 밝은 별)을 범하였다. 내년에는 틀림없이 병란(兵亂)이 있을 것이다.” 하기도 하고, 또, “세성(歲星, 목성)이 기성(箕星, 옛 별자리 29개 중에 동쪽 7개의 별자리중 하나로 4개의 별이 마치 곡식을 터는 키처럼 보임. 바람을 주관한다고 보았음)의 분야에 와 있다. 우리나라가 이 때문에 ..

[고전산문] 시(詩)라는 것은 뜻을 말하는 것

도연명의 감피백하시(感彼柏下詩)를 보면 평소 혜원(慧遠, 진나라 때 유학 에 정통했던 승려)의 현론(玄論, 사물의 근원을 따지는 논의)을 얻어 들은 걸 알겠으며, 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를 보면 당시 늘 참료자(參寥子, 송(宋)의 시승(詩僧) 도잠(道潛)의 호. 오잠인(於潛人))와 운치있는 이야기를 나눈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봄바람이 불어 초목이 싹트고 범나비가 홀연히 방초에 가득 모여들때면, 승려 몇사람과 함께 술을 가지고 옛 무덤 사이를 노닐었다. 무덤들이 연달아 총총히 있는 것을 보고는 술한잔 따라 붓고 나서 말하였다. "무덤 속의 사람들이여 이 술을 마셨는가? 옛날 세상에 있을 때 송곳 끝만한 이익을 다투고 티끌같은 재물을 모으느라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부릅뜨며, 애쓰고 허덕허덕하며, ..

[고전산문] 원정(原政): 정치란 무엇인가?

정(政)의 뜻은 바로잡는다(正)는 말이다.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토지의 이택(利澤)을 겸병(兼幷)하여 부유한 생활을 하고, 누구는 토지의 이택을 받지 못하여 빈한하게 살 것인가. 이 때문에 토지를 개량하고 백성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어 그것을 바로잡았으니 이것이 정(政)이다.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풍요로운 땅이 많아서 남는 곡식을 버릴 정도이고, 또 누구는 척박한 땅도 없어서 모자라는 곡식을 걱정만 해야 할 것인가. 때문에 주거(舟車)를 만들고 권량(權量)의 규격을 세워 그 고장에서 나는 것을 딴 곳으로 옮기고, 있고 없는 것을 서로 통하게 하는 것으로 바로잡았으니 이것이 정(政)이다.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제멋대로 삼켜서 커지고, 누구는 연약한 위치에서 자꾸 빼..

[고전산문] 조명풍(釣名諷 )

고기 낚는 것은 고기먹는 이득이 있지만 이름을 낚아서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이름이란 곧 그 대상의 실체이니 주체가 있으면 실체는 스스로 이르는 법. 실체 없이 헛이름만 누린다면 결국은 그 몸에 더러운 껍데기만 가득 쌓일 뿐이라네 용백(龍伯)은 여섯 마리 큰 자라 낚았는데 그가 낚은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고, 강태공이 문왕을 낚을 때에는 원래 그 낚시엔 미끼라곤 없었다네 그러나 이름 낚기는 이와 달라 한때의 요행수 일뿐이라네. 마치 추한 여자가 분짙게 발라 화장하고 꾸며서 잠깐 이쁜 것처럼, 화장이 지워지면 결국 추한 민낯이 드러나 보는 사람이 마침내 질겁하고 피함과 같다네 이름을 낚아 어진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어느 시대인들 안영(顔子)같은 어진 현인이 왜 없으랴! 이름을 낚아 선하고 훌륭한 벼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