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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라면

혜강(嵇康)의 쇠붙이 다루기를 좋아한 것과 무자(武子, 왕제)의 말(馬)을 좋아한 것과 육우(陸羽 당 나라 사람)의 차(茶)를 좋아한 것과 미전(米顚)의 바위에게 절한 것과 예운림(倪雲林 원(元) 예찬(倪瓚)의 자호(自號))의 깨끗한 것을 좋아한 것은, 다 벽(癖)으로써 그 뇌락(磊落, 마음이 너그럽고 사사로운 일에 얽매이지 않음)ㆍ준일(雋逸 독특하고 뛰어남)한 기개를 보인 바이다. 내가 보건대, 세상에서 그 말이 맛이 없고 면목(面目)이 가증스러운 사람은 다 벽이 없는 무리들이다. 만약 진정 벽이 있다면 거기에 빠지고 도취되어 생사(生死)조차 돌아보지 않을 터인데, 어느 겨를에 돈과 벼슬의 노예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옛적에 화벽(花癖)이 있는 이는 어디에 기이한 꽃이 있다는 소문만 들으면 아무리 깊..

[고전산문]수창기(睡窓記): 잠자는 창

허자는 몹시 가난하여 튼튼하고 조용한 집이 없다. 대신에 골목에 초라하고 자그마한 집 한 채를 겨우 갖고 있다. 집은 사방이 한 길쯤 되는 넓이지만 허자는 겨우 칠 척 단신에 불과하므로 방에서 발을 뻗더라도 남는 공간이 있다. 이보다 넓어 비록 천만 칸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더구나 창 안으로는 먼지가 들어오지 않고 서책이 죽 꽂혀 있어 마음은 즐겁고 기분은 쾌적하다. 창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른다. 얼마나 상쾌한가!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한다. “창 밖에서 벌어지는 일은 허자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설사 안다 해도 그가 간여할 일이란 없다. 따라서 잠을 잔다는 핑계를 대고 창 안에 숨어서 ‘잠자는 창(睡窓)’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잠을 깨우는 사람으로는 오직 가끔 찾아..

[고전산문]금수거기(禽獸居記): 짐승보다 못한 사람

내가 금화(金化)에 살게 되면서 몇 칸짜리 집을 세내었다. 그 집에서 독서하며 지내던 중 맹자(孟子)가 진상(陳相)에게 말한 대목을 읽고서는 탄식의 말이 터져 나왔다. 정말이지 옛사람은 따라잡을 수가 없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며 편안하게 지내면서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짐승에 가깝게 될 것이다.”라고 맹자는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런 자라 해도 오히려 짐승보다 나은 점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조정에서 쫓겨나 떠돌면서 옷가지와 먹을거리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으니 배부르고 등 따뜻하며 편안하게 지내는 자들과는 처지가 다르다. 옛 성인들의 책을 읽기도 했고, 오늘날의 군자들로부터는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보다 못하니 ‘짐승에 가깝다’는 말을 어떻게 감히 쓸 수 있겠는가? ..

[고전산문]답인논문(答人論文): 문장을 논한 것에 답함

서로 헤어진 지 벌써 4~5년이나 되었는데, 남과 북으로 떨어져 있고 산맥이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도 끝없이 그리워하는 마음은 조금도 가슴속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늘 족하(足下)의 뛰어난 재질을 기억에 떠올리곤 하는데 옛날에 벌써 족하는 우뚝 두각(頭角)을 나타냈었지요. 소식이 서로 끊긴 이래로 세월이 이미 많이 흘렀으니 필시 크게 분발하여 변화된 모습을 보이면서 깜짝 놀랄 정도가 되었을 텐데, 내 옆으로 오시게 하지도 못하고 내가 그 옆으로 가 뵙지도 못한 나머지 내 마른 몸뚱이에 물기가 돌도록 스스로 감화를 받지 못했던 것이 유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서찰을 받아 보건대 어휘의 구사가 뛰어나고 식견이 고매하여 과연 옛날에 기대했던 바를 저버리지 않으셨으니, 친구를 떠나 혼자 있는 내..

[고전산문]필설(筆說 ): 외양만 보고 속마음까지 믿는 어리석음

쥐 과(科)에 속하는 동물로서 색깔이 노란 것을 세상에서 족제비라고 하는데, 평안도와 함경도 지방의 산속에 많이 서식하고 있다. 그 꼬리 털이 빼어나 붓의 재료로 쓰이는데 황모필(黃毛筆)이라고 불리는 그 붓보다 더 좋은 것은 이 세상에서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내 친구 이생(李生)이 글쓰기를 좋아하여 일찍이 어떤 사람에게 부탁해서 그 붓을 얻었는데, 터럭이 빼어나게 가늘고 번질번질 윤기가 흘러 기가 막히게 좋은 붓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붓을 한 번 털어 보니 그 속에 더부룩하게 이상한 점이 느껴지기에 먹을 붓에 적셔 시험삼아 글씨를 써 보니 바로 구부러져 꺾이고 마는 바람에 글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 주의깊게 살펴보니 그 속에 집어넣은 내용물은 대개 개의 터럭으로서 가늘고 윤..

[고전산문] 군자가 세속의 유행을 따름에 대하여

굴자(屈子 초(楚) 나라 굴원(屈原))의 《이소경(離騷經)》에 “수피둘기 울면서 가게 해 볼까, 경조부박(輕佻浮薄) 꾀 부리는 그 놈도 미워.[雄鳩之鳴逝兮 余猶惡其佻巧]”라고 하였다. 비둘기는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어리숙해서 자기 보금자리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놈이다. 그런데 굴자가 오히려 꾀를 부린다고 미워한 것은, 대개 옛날에는 어리숙했던 이들도 지금에 와서는 동화되어 꾀를 부리게 되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시경(詩經)》 소완(小宛 소아(小雅)의 편명임)에도 “왔다 갔다 콩새들, 마당에 모여 들어 곡식 낱알 쪼아 먹네.[交交桑扈 率場啄粟]”라고 하였다. 절지(竊脂)는 원래 곡식을 먹지 않는데, 지금은 또한 곡식 낱알을 쪼아 먹는다고 하였으니, 이것도 굴자의 뜻과 같다고 하겠다.시대가 내려오면서 풍속이..

[고전산문] 마음쓰는 일을 멈춰서는 안된다

사람은 마음을 쓰지 않아서도 안 되지만 원래 마음을 쓰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장기와 바둑을 두는 것이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공자께서 놀고 먹는 자들을 경계시키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뭔가를 한다고 해도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경우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이는 다만 그 사람 자신이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질이 비루하고 졸렬하여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이 그저 책이나 읽고 글이나 짓는 것을 본업(本業)으로 삼아 왔다. 그러니 평소에 이런 일을 빼놓으면 마음을 쓸 곳이 없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남 모르는 근심으로 병을 얻어서, 집 문을 굳게 닫아 걸고는 세상일을 일체 사양..

[고전산문]곡목설(曲木說):사람의 본성과 나무의 속성은 본질에서 다르다

이웃에 장생(張生)이라는 자가 살고 있었다. 장차 집을 지으려고 산에 들어가 재목을 구하였는데 빽빽이 들어찬 나무들 모두가 구불구불하게 비틀어져 용도에 맞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산속에 있는 무덤 가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앞에서 보아도 곧바르고 왼쪽에서 보아도 쭉 뻗었으며 오른쪽에서 보아도 곧기만 하였다. 그래서 좋은 재목이라 생각하고는 도끼를 들고 그쪽으로 가서 뒤에서 살펴보니 슬쩍 구부러져 쓸 수 없는 나무였다. 이에 도끼를 내던지고 탄식하기를, “아, 재목이 될 나무는 얼른 보아도 쉽게 알 수가 있어 고르기가 용이한 법인데, 이 나무의 경우는 내가 세 번이나 다른 쪽에서 살폈어도 쓸모없는 나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니 용모를 그럴 듯하게 꾸미면서 속마음을 숨기고 있는 사람의 경우야 ..

[고전산문] 우물 안 개구리와 여름 벌레

우물 안의 개구리는 바다를 의심하고 여름 벌레는 얼음을 의심하니(井蛙疑海夏蟲疑氷), 이것은 보는 것이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의 군자라고 하는 이들 역시 조금 이상하다 싶은 자연의 현상이나 변화에 대해서 듣기라도 하면, 문득 손을 내저으며 믿지 않고 말하기를 “세상에 어찌 그럴 리가 있겠는가?”라고 한다. 이것은 그 안에 없는 것이 없는 천지(天地)의 위대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자기 견해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여, 일체 거짓으로 여겨 무시해 버린다면, 얼마나 옹졸한 생각이라고 하겠는가? 옛날 위 문제(魏文帝 조비(曹丕))가 《전론(典論)》을 지을 때, 처음에는 화완포(火浣布,불에 타지 않는 직물, 즉 석면포(石綿布)를 말한다.)가 없다고 생각했다가, 뒤에 가서 그 잘못을 깨닫..

[고전산문]청백안설(靑白眼說): 백안시(白眼視)할 수밖에 없는 이유

완사종(阮嗣宗)*이 자기 눈을 청안(靑眼)과 백안(白眼)으로 곧잘 만들면서 예속(禮俗)에 물든 인사를 보면 번번이 백안으로 대했다고 하는데, 이런 것이야 본래 광사(狂士)의 기량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나는 평소에 이 일화를 흐뭇하게 여겨 왔다. 아, 선비가 이 흐린 세상에 살아가면서 한 점 아도(阿堵 사람의 눈[眼])를 가지고 끝없이 펼쳐지는 추잡하고도 괴이한 광경들을 보노라면 정말 곡마단 구경을 하는 것만 같을 것이다. 웃통을 벗어제치고 발가벗는가 하면 개처럼 싸우고 원숭이처럼 팔딱거리는 등 별별 행태와 모습을 보이면서 온갖 추악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으니, 가령 예(禮)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으려 하는 단인(端人) 정사(正士)로 하여금 그 옆에 있게 한다면 그들이 차마 눈을 뜨고서 바로 볼 수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