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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소인의 마음씀씀이는 정말 무서운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아무 근거도 없이 자기를 의심한다면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때도 있다. 왜냐하면 변명에 급급하다 보면 그 의심이 더욱 심해질 것이 뻔한 데에 반해서, 가만히 놔두면 뒤에 가서 저절로 의혹이 해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여종이 주인 여자를 대신해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다가 얼마 뒤에 임신을 했는데 분만을 하고 나서 그 사실이 발각되었다. 주인 여자가 노하여 매질을 하려고 하며 심문하기를 “무릇 젖을 먹일 때에는 남자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야 하는 법이다. 그 이유는 몸에 아이를 갖게 되면 젖을 먹이는 아이에게 해가 되기 때문이니, 이것이 너의 첫 번째 죄이다. 네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 시작할 때부터 발은 문지방을 넘지 말고 방 ..

[고전산문] 차마설(借馬說)

나는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기 때문에 간혹 남의 말을 빌려서 타곤 한다. 그런데 노둔하고 야윈 말을 얻었을 경우에는 일이 아무리 급해도 감히 채찍을 대지 못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지고 넘어질 것처럼 전전긍긍하기 일쑤요, 개천이나 도랑이라도 만나면 또 말에서 내리곤 한다. 그래서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에 발굽이 높고 귀가 쫑긋하며 잘 달리는 준마를 얻었을 경우에는 의기양양하여 방자하게 채찍을 갈기기도 하고 고삐를 놓기도 하면서 언덕과 골짜기를 모두 평지로 간주한 채 매우 유쾌하게 질주하곤 한다. 그러나 간혹 위험하게 말에서 떨어지는 환란을 면하지 못한다. 아,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달라지고 뒤바뀔 수가 있단 말인가. 남의 물건을 빌려서 잠깐 동안 쓸 때에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

[고전산문] 경보설(敬父說)

우봉(牛峯) 이군(李君)이 스스로 양직(養直)이라고 이름 붙이니, 그의 우인(友人)인 마읍(馬邑 한산(韓山) )의 이운백(李云白 가정(이곡)의 초명(初名) )이 불곡(不曲)이라고 자를 지어 주었다. 어떤 사람이 이를 문제 삼아 말하기를, “직(直, 곧을 직)에 대해서 불곡(不曲, 굽히지 않음)이라고 말한다면, 논리로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직의 의미가 어찌 이 정도로만 그치겠는가. 대저 사물의 이치란 한 번 곧게 펴면 한 번 굽혀야 하는 법이니, 곧게 펴는 하나만을 고집해서 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천지처럼 거대한 것 역시 움직일 때도 있고 고요할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장차 몸을 펴기 위함이다.〔尺蠖之屈 以求伸也〕’라고 한 것이다. 굽히기만 하고 펴..

[고전산문]내 마음의 귀결점은 오직 나에게 있을 뿐

조정에서 선비들의 논의가 나뉜 뒤로 붕우의 도리를 어찌 끝까지 지킬 수 있겠는가? 벗 사귀는 도리는 하나인데 어찌하여 둘로 나뉘었는가? 둘도 오히려 불행한데 어찌하여 넷이 되고 다섯이 되었는가? 하나인 도리가 넷, 다섯으로 나뉘어 줄을 세워 사당(私黨)을 만드니 한 개인에게 저버림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한 편에 들어간 사람은 각기 하나의 세력이 되어 나머지 네 다섯 편과 적이 되니 한 개인이 외롭지 않겠는가? …… 나는 혼자다. 지금의 선비를 보건대 나처럼 혼자인 자가 있는가? 홀로 세상길을 가나니 벗 사귀는 도가 어찌 한 편에 붙는 것이겠는가? 한 편에 붙지 않으므로 네다섯이 모두 내 친구가 된다. 그런즉, 나의 교유가 또한 넓지 않은가? 파벌의 차가움은 얼음을 얼릴 정도지만 내가 떨지 않으며, 파벌의..

[고전산문] 편리한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

자공이 남쪽으로 초나라를 유람하고 나서 진나라로 돌아오다가, 한수 남쪽을 지나는 길에 한 노인이 채소밭을 돌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땅을 파고 우물로 들어가 항아리에 물을 퍼 들고 나와서 물을 주고 있었다. 힘은 무척 많이 들이고 있었으나 효과는 거의 없었다. 자공이 말을 걸었다. “기계가 있다면 하루에 상당히 많은 밭에 물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힘을 아주 적게 들이고도 그 효과는 클 것입니다. 왜 기계를 쓰지 않으십니까?” 노인이 머리를 들어 자공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자공이 말했다. “나무에 구멍을 뚫어 만든 기계인데 뒤는 무겁고 앞은 가볍습니다. 손쉽게 물을 풀 수 있는데 빠르기가 물이 끓어 넘치는 것 같습니다.” 밭을 돌보던 노인은 성난 듯 얼굴빛이 바뀌었으나 잠시 ..

[고전산문] 안다고 하는 것이 모른다는 것일수도 있다.

설결(齧缺)이 왕예(王倪)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모든 존재가 다 옳다고 인정되는 것에 대해서 아십니까?(만물이 각기 제나름대로 옳은 바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왕예가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선생께서는 선생이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아십니까?” 왕예가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그렇다면 모든 존재에 대해 앎이 없습니까?” 왕예가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시험삼아 말해보겠다. 내가 이른바 안다고 하는 것이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님을 어찌 알겠으며, 내가 이른바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님을 어찌 알겠는가?” “또 내가 시험삼아 너에게 물어보겠다. 사람은 습한 데서 자면 허리병이 생기고 반신불수가 되는데, 미꾸라지..

[고전산문] 삶을 보양하는 방법: 아이처럼

“삶을 보양하는 방법이란 위대한 도 하나를 지니는 것이며, 자기 본성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衛生之經 위생지경 能抱一乎 능포일호 能勿失乎 능물실호). 점치는 것에 의해 자기의 길흉을 판단하려 들지 않아야 하고, 자기 분수를 지킬 줄 알아야 하고(能止乎 능지호), 인위적인 행위를 그만둘 수 있어야 합니다(能已乎 능이호). 남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자기를 충실히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能舍諸人而求諸己乎 능사제인이구제기호). 행동은 자연스러워야 하고, 마음은 거리낌이 없어야 하고, 아이처럼 순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는 하루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데, 그것은 자연과 지극히 조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루 종일 주먹을 쥐고 있어도 손이 저리지 않는데 그것은 자연의 덕과 일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고전산문]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은 차마 하지 못한다

원헌이 노나라에 살았는데, 그의 집은 사방 여덟 자 한 칸의 작은 집이었다. 초가지붕에는 풀이 자라고 싸리문은 부서져 있고, 뽕나무 줄기로 문지도리를 삼고, 깨진 항아리를 박아 창을 낸 두 개의 방은 칡으로 창을 가리고 있었다. 위에서는 비가 새고 아래 바닥은 축축했는데, 원헌은 똑바로 앉아서 금을 뜯으며 노래하고 있었다. 자공은 큰 말이 끄는 수레를 탔는데, 수레 안쪽은 보랏빛 천으로 장식하고 겉포장은 흰 천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 큰 수레가 그의 집 골목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그는 걸어가서 원헌을 만났다. 원헌은 가죽나무 껍질로 만든 관을 쓰고 뒤축도 없는 신을 신은 채 지팡이를 짚고 문에 나와 그를 맞았다. 자공이 말했다. “선생께서는 어찌 이렇게 고생을 하시며 사십니까?” 원헌이 응하여 대답..

[고전산문] 진실됨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

삼가고 지켜서 결코 잃지 않는 것 황하의 신이 말했다.“어째서 도가 귀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북해의 신이 말했다. “도를 아는 사람은 반드시 이(理)에도 통달해 있고, 이에 통달한 사람은 사물의 변화에 대한 적응에 밝다. 사물의 변화에 대한 적응이 밝은 사람은 사물에 의해 자신이 해를 받는 일이 없다. 지극한 덕을 지닌 사람은 불도 뜨겁게 하지 못하며, 물도 그를 빠져죽게 하지 못하며, 추위와 더위도 그를 해칠 수가 없고, 새나 짐승들도 그를 상하게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가볍게 여긴다는 말은 아니다. 편안함과 위험을 살피고 화와 복 어느 것에나 안주하여 자기의 거취를 신중히 함으로써 아무것도 그를 해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자연을 그의 내부에 존재하게 하고, 인위적인 것은 밖..

[고전산문] 만물은 하나같이 가지런하고 평등한 것

황하의 신(河伯)이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저의 출처와 진퇴를 취사선택함에 있어서 도대체 저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북해의 신이 말했다. “도의 입장에서 볼 때 무엇을 귀하게 여기고, 무엇을 천히 여기겠는가? 이런 경지를 아무 구별이 없이 혼돈으로 통일된 상태인 반연((反衍)이라고 한다. 자기 뜻에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도에 크게 어긋나게 된다. 도의 입장에서 볼 때 무엇을 적다하고 무엇을 많다 하겠는가? 이런 경지를 구별 없이 연결되는 상태를 말하는 사시(謝施)라 한다. 한편으로만 치우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즉 도에 어긋나게 된다. 엄격하기가 나라의 임금과 같아서 사사로운 은덕을 베푸는 일이 없어야 한다. 유유자득하기가 제사를 받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