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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진실한 마음만으로도

주린 배를 참고 타는 목마름을 참는 것은 우리들이 항상 겪는 일이구나. 잘 먹고 잘 입으면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고, 가슴 속이 시커멓고 텅 비어 한 조각 의리(義理)를 지니지 못한 자들도 있단다. 조금이라도 식견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을 대신해 부끄럽게 생각해야 되지 않겠느냐? 겉으로 보는 몸의 모양은 참으로 멋지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진실한 내면의 마음은 실로 텅 비어 있단다. 만약 네가 부지런히 노력하여 날마다 듣지 못한 것을 듣고, 날마다 알지 못하는 것을 공부해 알아간다면, 사흘에 밥 한 끼 만 먹는다 하더라도 그 진실한 마음만으로도 실로 배가 부를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하겠느냐? -이학규(李學逵, 1770 ~1835), '아들에게 준 편지(與某人)' / 낙하생집(洛下生集),중에서- "인정..

[고전산문]오영잠(惡盈箴):스스로 교만을 경계하는 글

내가 지난 겨울에 역(驛)에 온 뒤로 정신이 편안해지면서 기력이 나아져 예전보다는 몸과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게 되었으므로, 나 자신도 꽤나 다행으로 여긴 나머지 간혹 가까운 이들에게 이런 사실을 떠벌리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풍(頭風)을 앓아 하루가 넘도록 그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으므로, 기괴하였다 마치 귀신이 엿보고 있다가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계기로 생각해 보니, 내가 지금까지 22년을 살아오는 동안, 제대로 이루어진 일이 하나도 없었고 하루도 몸이 편한 날이 없었다. 그동안 조금 계교(計較:사물이나 진리나 사람에 대해 의심하고 저울질하고 비교하는 것)를 하다가 다행히 이루어질 희망이라도 있을라 치면, 그때마다 번번이 낭패를 당해 쓰러지고 고통스러..

[고전산문]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자기를 잃어 버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

나무는 이 세상에 나올 때부터 그 본성이 곧게 마련이다. 따라서 어떻게 막을 수도 없이 생기(生氣)가 충만한 가운데 직립(直立)해서 위로 올라가는 속성으로 말하면, 어떤 나무이든 간에 모두가 그렇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 높이 우뚝 솟아 고고(孤高)한 자태를 과시하면서 결코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는 오직 송백(松柏)을 첫손가락에 꼽아야만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나무들 중에서도 송백이 유독 옛날부터 회자(膾炙)되면서 인간에 비견(比肩)되어 왔던 것이다. 어느 해이던가 내가 한양(漢陽)에 있을 적에 거처하던 집 한쪽에 소나무 네다섯 그루가 서 있었다. 그런데 그 몸통의 높이가 대략 몇 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 상태에서, 모두가 작달막하게 뒤틀린 채 탐스러운 모습을 갖추고만 있을..

[고전산문] 두실기(斗室記): 독서의 대요는 숙독과 사색에 있다

나의 사제(舍弟)인 재(材)가 상산현(常山縣) 두곡(斗谷)에 우거(寓居)하면서, 그 집의 서북쪽으로 매우 비좁은 공간이나마 맑은 정취가 우러나는 그윽한 곳을 택하여, 세 칸의 방을 만들고 띠풀로 지붕을 덮는 등 간소하게 집을 짓고는, 연거(宴居)하며 독서하는 곳으로 삼았기에, 내가 그 집의 이름을 두실(斗室)이라고 지어 주었다. 그렇게 이름을 지은 까닭은, 대개 민간에서 모난 형태의 협소한 집을 두실(斗室)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있고, 우리나라에서 발음할 때 곡(谷)을 ‘실’이라고 하기 때문에 그가 사는 곡(谷)의 지명에 착안하여 실(室)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니, 이 또한 간단한 방식을 채택하여 이름 지은 것이라고 하겠다. 세상을 떠난 나의 벗 임무숙(任茂叔 무숙은 임숙영(任叔英)의 자(字)임)이 일찍이 ..

[고전산문] 문장이란 '말에 법이 있는 것'을 일컬음이다

문장이라는 것은 말에 법이 있는 것을 일컬을 뿐이니 문(文)은 말이고, 장(章)은 법이다. 사람들은 반드시 뜻을 둔 이후에 말을 할 수가 있고, 말은 반드시 법을 둔 후에 서술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문(文)이라는 것은 뜻에 근원을 두고서 법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뜻에는 기이함과 바름의 차이가 있고, 법에는 고금의 변화가 있으니 이는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한결같이 기이함만을 구한다면 뜻은 반드시 항상 기이할 수만은 없어서 때때로 쉽게 곤궁해지고, 한결같이 바르기를 구한다면 뜻은 항상 바르고 저절로 기이해질 때도 있다. 지세가 깎아지른 듯 한 바위가 언덕에 매달려 있고, 푸른 물결이 굽이쳐 흐르는 것은 한 모퉁이 한 구비라도 볼만한 것이 없지는 않지만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통읍 대도시..

[고전산문] 문장짓는 법

어떤 사람이 문장을 짓는 법에 대해서 묻자, 선생이 이르기를, “꼭 말해야 할 것만 꼭 말하고, 꼭 써야 할 용례(用例)만 꼭 쓰도록 하라. 그러면 된다.” 하였다. 그다음에 대해서 묻자, 선생이 이르기를, “말하는 내용이 심원(深遠 쉽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한 것일 때에는 더러 비근(卑近 주위에서 흔히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깝고 알기 쉬운)한 내용으로 보충하고, 적용하는 용례가 현실과 거리가 있을 때에는 더러 정상적인 용례와 비슷하게 맞도록 하라.” 하였다. 그다음에 대해서 또 묻자, 선생이 이르기를, “꼭 말해야 할 내용이 아닌데도 말을 하거나 꼭 적용할 용례가 아닌데도 적용하려 한다면, 또한 황당하게 되지 않겠는가.” 하였다. 무엇을 스승으로 삼아야 하느냐고 묻자, 선생이 이르기를, ..

[고전산문] 정정가(定情歌) 마음을 다스리는 노래

물결 하나 지나가면 물결 하나 또 생기더니바람 자는 고요한 밤에야 비로소 물결이 잠잠해지네.욕망의 세계(慾界), 강의 모래처럼 끊임없이 일렁이니그 속에서 완전히 사념을 없애기란 참으로 어렵구나.一波纔過一波生 夜靜無風浪始平 慾界河沙淘不盡 箇中難得十分淸 봄날의 누에, 한 가닥의 실을 쉴 새 없이 토해내는구나명주실을 그만 나오게 하려면 누에가 쉬어야만 하는데그대는 아는가, 내일이면 솥에 삶길 누에가명주실을 하염없이 토해내는 걸.春絲一縷不停抽 蠶到休時絲亦休 來日盤中烹却繭 絲生續續君知不 뱃속에 책이 만권 들어있어도정작 일 당해서는 제대로 하는 일이 없구나.고심고심 몇 글자를 골라 뽑아내려 해보아도잠시 가지고 있을 만할 뿐이라네.腹容萬卷本來麤 臨事還能濟事無 新向藏中揀箇字 只應存得忍須臾 -심익운(沈翼雲 1734∼17..

[고전산문] 선과 악, 크고 작은 것의 행불행

마포는 근처에 강이 있어 뱀과 벌레가 많다. 내가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니, 종(집에서 부리는 일군, 하인)이 큰 뱀 두 마리를 잡았다가 곧 놓아 주며, 작은 뱀 두 마리는 잡아서 죽이는 것을 보았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종은, "큰 뱀은 영(靈)이 있어서 죽일 수 없습니다. 죽이면 사람에게 앙갚음을 하지요. 하지만 작은 뱀은 죽이더라도 사람에게 앙갚음을 못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뱀은 사악한 짐승이다. 큰 뱀은 사악함도 큰 반면, 작은 뱀은 사악함이 작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큰 것은 사악함이 큰데도 죽임을 면하고 작은 것은 도리어 사악함이 작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구나! 이러한 일이 어찌 짐승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크게 사악한 자는 그 악이 크기 때문에 힘을 가지게 되고 이에 따..

[고전산문]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는 것에 대한 논변

옛날 구양영숙(歐陽永叔, 구양수)이 매성유(梅聖兪)의 시를 논하며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시인은 출세한 사람이 적고 궁한 사람이 많다.’라고 하는데,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궁한 사람이라야 시가 공교로워진다(盖非詩能窮人 殆窮者而後工也).”라고 하였다. 매성유는 시에 능하여 세상에 크게 이름이 났으나 그의 지위가 남보다 앞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구양영숙이 이렇게 말하여 해명한 것인데, 이는 마음에 격발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시는 사람의 재주 고하에 따라 성정(性情)에서 발로된 것이므로 지력(智力)으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궁하게 살면서도 잘하는 사람도 있고 높은 지위에 앉아서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궁하게 살면서..

[고전산문] 재목감을 복돋우고 기를 생각은 안하고

하늘이 이 세상에 생물을 만들어 낼 때 크고 작고, 빠르고 느린 것 등 각양각색이었다. 곧 작은 풀포기는 봄에 싹터서 가을에 시들지만 '대춘(大椿)'이라고 하는 큰 나무는 8,000년 동안을 자라다가 다시 8,000년을 노년기(老年期)로 산다고 한다. 왜 그런가 하면 생물은 반드시 오랜 세월을 경과한 뒤라야 크게 성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 장석(匠石:훌륭한 목수)이 여러 해 동안 큰 집의 대들보로 쓸 나무를 구하러 다녔으나 찾지 못하였다. 그는 어느 날 큰 산 속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다가 가시나무 덩굴과 잡초 사이에 끼여 있고 또 소나 말들에게 짓밟혀서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여러 해 묵은 소나무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한탄하였다. "아하, 이 나무는 제대로 자란다면 오랜 세월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