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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사물에는 귀하고 천한 것이 없다

황하의 신이 말했다. “사물의 외형이나 내면에 있어서 무엇을 기준으로 귀하고 천한 구분이 생기며, 무엇을 기준으로 작고 큰 구분이 생기는 것입니까?” 북해의 신이 말했다. “도(道)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물에는 귀하고 천한 것이 없다. 사물 자체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은 귀하고 남은 천한 것이다. 세속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귀하고 천한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이 정하는 것이다. 상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어느 것에 비하여 크다는 입장에서 말하면 만물 중에 크지 않은 것이 없게 되며, 어느 것에 비하여 작다는 입장에서 보면 만물 중에 작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하늘과 땅도 큰 것과 비교를 하면 작은 풀 씨 한 알 정도로 생각될 수 있고, 털끝도 작은 것과 비교하면 큰 산 정도로 생각될 ..

[고전산문]세상 만물은 인간의 지혜로 그 크기와 량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

황하의 신이 말했다. “하늘과 땅을 크다고 하고, 털끝은 작다고 할 수도 있습니까?” 북해의 신이 말했다. “아니다. 사물이란 양이 무궁하여 한정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각자의 분수는 일정하지 않고 변하는 것이며, 일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위대한 지혜를 지닌 사람은 먼 것과 가까운 것을 똑같이 본다. 그래서 작은 것이라 무시하지 않고, 큰 것이라 대단히 여기지 않는다. 사물의 양이란 무궁하여 한정할 수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과 현재를 분명히 알고 있기때문에 오래 산다 해도 교만하지 않고, 생명이 짧다 해도 더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시간은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것이 가득찼다가도 텅비..

[고전산문] 우물안 개구리와 여름벌레

가을이 되면 모든 냇물이 황하로 흘러든다. 그 본 물줄기는 넓고도 커서 양편 물가의 거리가 상대편에 있는 소나 말을 분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황하의 신인 하백(河伯)은 몹시 기뻐하며, 천하의 아름다움이 모두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백은 강물의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가서, 마침내 북해에 다다랐다. 그런데 그 곳에서 동쪽을 바라보았지만 물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황하의 신은 비로소 그의 얼굴을 돌려 북해의 신인 약(若)을 우러러 보았다. 그리고 탄식하며 말했다. “속담에 이르기를, '백가지 도리를 알고는 자기 만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聞道百以爲莫己若者 문도백이위막기약자)고 하였는데, 저를 두고 한 말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일찍이 공자의 학식과 견문을 낮게 평가하고 백이의 절개와 ..

[고전산문] 선한 행위일지라도 본성을 헤아리지 않은 배려와 돌봄은 위험하다

안연이 동쪽 제나라로 가게 되었는데, 공자가 걱정하는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 자공이 자리에 내려앉으며 물었다. “안연이 동쪽 제나라로 가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얼굴에 걱정하는 빛이 역력하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공자가 말했다.“좋은 질문이다. 옛날 관자가 한 말 중에서 내가 매우 훌륭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있다. 그는 주머니가 작으면 큰 것을 지니고 있을 수가 없고, 줄이 짧으면 깊은 우물물을 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 말은 운명에는 이미 정해진 것이 있고, 형체에는 적절히 맞는 것들이 있어서, 그것들은 늘이거나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안연은 제나라 임금에게 가서 요순과 황제의 도를 이야기하며, 수인과 신농의 말을 강조할 것이지만, 제나라 임금은 마음 속으로 그런 것들을 추구해..

[고전산문] 사람의 습관과 편견이 옳고 그름의 분변을 좌우한다

내가 하는 말은 다른 사물에 가탁(假託 어떤 사물을 빌려 감정이나 사상 따위를 표현하는 일)해서 서술하는 우언(寓言)이 열 가지 중에 아홉 가지 정도이고, 세상 사람들이 중시하는 인물의 말을 빌려 무게를 더한 중언(重言)이 열 가지 중에 일곱 가지 정도이다. 또 앞뒤가 맞지 않는 엉터리 같은 치언(巵言 편의에 따라 대처하는 말)*이 날마다 입에서 나오지만 이 치언은 구별을 없애주는 자연의 작용인 천예(天倪, 하늘의 가장자리 즉 구별과 경계가 없는 상태, 다시 말하자면 갓 태어난 아이처럼 자연 그대로 의 오염되지 않은 상태)로 조화시킨다. 열 가지 중 아홉 가지를 차지하는 우언(寓言)이란 밖에서 일어난 일을 빌려와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다. 친아버지는 자기 자식을 위해서 중매를 하지 않으니, 친아버지가 자..

[고전산문] 사람을 해치는 덕(德)

마음에 덕(德)을 염두에 두고 그 마음이 속눈썹 움직이듯 하는 것이 가장 심하게 덕(德)을 해치는 것이다. 그 마음이 속눈썹이 움직이는 것처럼 염두에 둔 것만 보게 되고, 염두에 둔 것만 보게 되면 도리에 어긋난 결과에 이를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해치는 덕(德)에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중덕(中德)이 가장 나쁘다. 무엇을 일러 중덕(中德)이라 하는가? 중덕(中德)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 가운데 두고서 그 기준에 들지 않는 것은 모두 그르다고 비방하는 것을 말한다.(이하생략) 장자(莊子)의 죽음이 임박해 오자, 제자들이 장사를 성대히 지내려고 했다. 이를 보고 장자가 말했다. “나는 하늘과 땅을 관과 관 뚜껑으로 삼고, 해와 달을 한 쌍의 구슬 장식으로 삼고, 별자리들을 진주와 옥 장..

[고전산문] 관계들의 차이

공자가 자상호(子桑雽)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노(魯)나라에서 두 번이나 쫓겨났으며 송(宋)나라에서는 환퇴(桓魋)가 나무를 베어 죽이려 한 위험을 당했고, 위(衛)나라에서는 발자취까지 삭제되었고, 상(商)나라의 옛터나 주(周)나라의 서울에서 궁지에 빠졌으며, 진(陳)나라 채(蔡)나라 사이에서는 포위되었습니다. 내가 이처럼 여러 차례의 환난을 당해 친교가 더욱 소원(疏遠, 거리가 있어 서먹서먹함)해지고 문도와 학우들이 더욱 흩어지게 되었는데 어째서 이런 일을 당한 것인지요.” 자상호(子桑雽)가 말했다. “당신도 가(假)나라 사람이 도망친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겠지요. 임회(林回)라는 사람이 천금의 구슬을 버리고 갓난아기를 업고 도망쳤는데, 어떤 사람이 묻기를, '돈이 나가는 물건이라 여겨서 그리한 것..

[고전산문] 옛 사람의 찌꺼기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도구인지라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은 잊어버리며, 올무는 토끼를 잡기 위한 도구인지라 토끼를 잡으면 올가미는 잊어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말이라고 하는 것은 뜻을 알기 위한 도구인지라 뜻을 알고 나면 말을 잊어버린다. 그런데 세상의 학자들은 뜻보다 말을 중시하여 말을 천착하니 내 어디에서 말을 잊은 사람을 만나 그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장자 제 26편 외물 12장) 세상 사람들이 도(道)라 하여 귀하게 여기는 것은 서책(書冊, 책, 도서)이지만 이 서책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말에는 중요한 것이 있을 것이니 그 말이 중시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 전달하고자 하는 뜻(意味內容)이다. 뜻에는 따르는 것이 있으니 뜻이 따르는 것은 말로 전할 수 없는 것인데 세상에서는 ..

[고전산문] 우물 안의 개구리

공손룡(公孫龍)이 위(魏)의 공자(公子) 모(牟)에게 물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선왕(先王)의 도(道)를 배우고 자라서는 인의(仁義)의 행위에 밝게 되었습니다. 사물의 동(同)과 이(異)를 조화시키거나(백마비마론) 돌의 굳은 것과 흰 것을 변별시키고(견백이동론), 세상에서 흔히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그렇다고 하고 세상에서 흔히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하여 많은 학자들의 지식을 곤혹스럽게 하고 뭇사람들의 변론을 궁지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장자(莊子)의 말을 듣고는 멍해진 채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어 버렸습니다. 알 수 없군요. 나의 의논(議論)이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나의 지식이 그에게 미치..

[고전산문] 탐욕과 포학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사이다

세상사람들은 산속에 파묻혀 글이나 읽는 사람을 보고 항상 나약하고 무능하다고 말한다. 또 책만 알고 물정은 모른다고 말한다. 글을 알고 나면 차마 하지 못하는 바*가 생기고, 하지 않는 바가 생긴다. 차마 하지 못하고 또 하지 않기 때문에 나약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 또한 일찍이 글 읽는 자의 뒤를 따라다닌 적이 있는데, 매번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늘 병통으로 여겼으나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강하고 유능하다고들 말하는 사람은 모두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없고, 할 수 없는 일을 행할 수 있는 자들이다. 세상에서 용감하다고들 말하는 사람은 의리에 용감한 자는 드물고 노여움과 욕망에 용감할 뿐이다. 술잔을 들고 담론을 세우다가도 한마디 말을 가지고 맞서다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며 힘을 믿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