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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답인논문(答人論文): 문장을 논한 것에 답함

서로 헤어진 지 벌써 4~5년이나 되었는데, 남과 북으로 떨어져 있고 산맥이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도 끝없이 그리워하는 마음은 조금도 가슴속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늘 족하(足下)의 뛰어난 재질을 기억에 떠올리곤 하는데 옛날에 벌써 족하는 우뚝 두각(頭角)을 나타냈었지요. 소식이 서로 끊긴 이래로 세월이 이미 많이 흘렀으니 필시 크게 분발하여 변화된 모습을 보이면서 깜짝 놀랄 정도가 되었을 텐데, 내 옆으로 오시게 하지도 못하고 내가 그 옆으로 가 뵙지도 못한 나머지 내 마른 몸뚱이에 물기가 돌도록 스스로 감화를 받지 못했던 것이 유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서찰을 받아 보건대 어휘의 구사가 뛰어나고 식견이 고매하여 과연 옛날에 기대했던 바를 저버리지 않으셨으니, 친구를 떠나 혼자 있는 내..

[고전산문]필설(筆說 ): 외양만 보고 속마음까지 믿는 어리석음

쥐 과(科)에 속하는 동물로서 색깔이 노란 것을 세상에서 족제비라고 하는데, 평안도와 함경도 지방의 산속에 많이 서식하고 있다. 그 꼬리 털이 빼어나 붓의 재료로 쓰이는데 황모필(黃毛筆)이라고 불리는 그 붓보다 더 좋은 것은 이 세상에서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내 친구 이생(李生)이 글쓰기를 좋아하여 일찍이 어떤 사람에게 부탁해서 그 붓을 얻었는데, 터럭이 빼어나게 가늘고 번질번질 윤기가 흘러 기가 막히게 좋은 붓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붓을 한 번 털어 보니 그 속에 더부룩하게 이상한 점이 느껴지기에 먹을 붓에 적셔 시험삼아 글씨를 써 보니 바로 구부러져 꺾이고 마는 바람에 글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 주의깊게 살펴보니 그 속에 집어넣은 내용물은 대개 개의 터럭으로서 가늘고 윤..

[고전산문] 군자가 세속의 유행을 따름에 대하여

굴자(屈子 초(楚) 나라 굴원(屈原))의 《이소경(離騷經)》에 “수피둘기 울면서 가게 해 볼까, 경조부박(輕佻浮薄) 꾀 부리는 그 놈도 미워.[雄鳩之鳴逝兮 余猶惡其佻巧]”라고 하였다. 비둘기는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어리숙해서 자기 보금자리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놈이다. 그런데 굴자가 오히려 꾀를 부린다고 미워한 것은, 대개 옛날에는 어리숙했던 이들도 지금에 와서는 동화되어 꾀를 부리게 되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시경(詩經)》 소완(小宛 소아(小雅)의 편명임)에도 “왔다 갔다 콩새들, 마당에 모여 들어 곡식 낱알 쪼아 먹네.[交交桑扈 率場啄粟]”라고 하였다. 절지(竊脂)는 원래 곡식을 먹지 않는데, 지금은 또한 곡식 낱알을 쪼아 먹는다고 하였으니, 이것도 굴자의 뜻과 같다고 하겠다.시대가 내려오면서 풍속이..

[고전산문] 마음쓰는 일을 멈춰서는 안된다

사람은 마음을 쓰지 않아서도 안 되지만 원래 마음을 쓰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장기와 바둑을 두는 것이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공자께서 놀고 먹는 자들을 경계시키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뭔가를 한다고 해도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경우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이는 다만 그 사람 자신이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질이 비루하고 졸렬하여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이 그저 책이나 읽고 글이나 짓는 것을 본업(本業)으로 삼아 왔다. 그러니 평소에 이런 일을 빼놓으면 마음을 쓸 곳이 없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남 모르는 근심으로 병을 얻어서, 집 문을 굳게 닫아 걸고는 세상일을 일체 사양..

[고전산문]곡목설(曲木說):사람의 본성과 나무의 속성은 본질에서 다르다

이웃에 장생(張生)이라는 자가 살고 있었다. 장차 집을 지으려고 산에 들어가 재목을 구하였는데 빽빽이 들어찬 나무들 모두가 구불구불하게 비틀어져 용도에 맞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산속에 있는 무덤 가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앞에서 보아도 곧바르고 왼쪽에서 보아도 쭉 뻗었으며 오른쪽에서 보아도 곧기만 하였다. 그래서 좋은 재목이라 생각하고는 도끼를 들고 그쪽으로 가서 뒤에서 살펴보니 슬쩍 구부러져 쓸 수 없는 나무였다. 이에 도끼를 내던지고 탄식하기를, “아, 재목이 될 나무는 얼른 보아도 쉽게 알 수가 있어 고르기가 용이한 법인데, 이 나무의 경우는 내가 세 번이나 다른 쪽에서 살폈어도 쓸모없는 나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니 용모를 그럴 듯하게 꾸미면서 속마음을 숨기고 있는 사람의 경우야 ..

[고전산문] 우물 안 개구리와 여름 벌레

우물 안의 개구리는 바다를 의심하고 여름 벌레는 얼음을 의심하니(井蛙疑海夏蟲疑氷), 이것은 보는 것이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의 군자라고 하는 이들 역시 조금 이상하다 싶은 자연의 현상이나 변화에 대해서 듣기라도 하면, 문득 손을 내저으며 믿지 않고 말하기를 “세상에 어찌 그럴 리가 있겠는가?”라고 한다. 이것은 그 안에 없는 것이 없는 천지(天地)의 위대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자기 견해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여, 일체 거짓으로 여겨 무시해 버린다면, 얼마나 옹졸한 생각이라고 하겠는가? 옛날 위 문제(魏文帝 조비(曹丕))가 《전론(典論)》을 지을 때, 처음에는 화완포(火浣布,불에 타지 않는 직물, 즉 석면포(石綿布)를 말한다.)가 없다고 생각했다가, 뒤에 가서 그 잘못을 깨닫..

[고전산문]청백안설(靑白眼說): 백안시(白眼視)할 수밖에 없는 이유

완사종(阮嗣宗)*이 자기 눈을 청안(靑眼)과 백안(白眼)으로 곧잘 만들면서 예속(禮俗)에 물든 인사를 보면 번번이 백안으로 대했다고 하는데, 이런 것이야 본래 광사(狂士)의 기량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나는 평소에 이 일화를 흐뭇하게 여겨 왔다. 아, 선비가 이 흐린 세상에 살아가면서 한 점 아도(阿堵 사람의 눈[眼])를 가지고 끝없이 펼쳐지는 추잡하고도 괴이한 광경들을 보노라면 정말 곡마단 구경을 하는 것만 같을 것이다. 웃통을 벗어제치고 발가벗는가 하면 개처럼 싸우고 원숭이처럼 팔딱거리는 등 별별 행태와 모습을 보이면서 온갖 추악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으니, 가령 예(禮)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으려 하는 단인(端人) 정사(正士)로 하여금 그 옆에 있게 한다면 그들이 차마 눈을 뜨고서 바로 볼 수가 있..

[고전산문] 소인배(小人輩)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남의 힘을 빌려야만 일어설 수 있는 자는 어린아이이고, 남에게 빌붙어서 자라는 것은 담쟁이덩굴이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서 변하는 것은 *영(影, 그림자)과 망량(魍魎,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을 한 귀신, 또는 사물에 깃든 혼령, 즉 실체가 없는 껍데기)이고, 남의 물건을 훔쳐서 자기를 이롭게 하는 자는 좀도둑이고, 남을 해쳐서 자기를 살찌우는 자는 시랑(豺狼, 승냥이와 이리)이다. 사람이 혹시라도 이 다섯 가지 범주에 근접하게 되면, 군자(君子)에게서 버림을 받고 소인(小人)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데 아래의 두 가지는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범죄 행위이니 그래도 쉽게 면할 수 있다 하겠지만, 위의 세 가지는 눈에 잘 안 보이는 허물이니 살피기가 더더욱 어렵다 하겠다. 그러니 자신의 행실을 닦아 나가는 ..

[고전산문] 문장을 모르는 자와 문장을 말할 수 없다

문장의 좋고 나쁨은 원래 정해진 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문장이라는 것이 워낙 정미(精微)하고 변화가 많은 것인 만큼, 반드시 이에 능통한 다음에야 그 문장의 수준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니, 그러한 경지에 이르지도 않고서 문장의 묘한 솜씨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장을 모르는 자의 입장에서는 그럴 듯한 돌멩이를 가리켜 옥(玉)이라 하고 정아(正雅)한 것을 비속(鄙俗, 천하고 저질스럼)하다고 하더라도 분간할 길이 없지만, 아는 자의 입장에서 보면 마치 저울로 무게를 달고 잣대로 길이를 재듯 하기 때문에 아무리 속여먹으려 해도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이다. *태백(太白 이백(李白))과 같은 고명한 재질의 소유자도 문득 최호(崔顥)에게 스스로 머리를 숙였으..

[고전산문] 분수를 알고 마음을 지키는 사람

이장 대재(李丈 大載)씨가 면천(沔川)에서 나의 해장정사(海莊精舍)에 들러 담소하다가 청하기를, “내가 면천에서 객지 생활을 한 뒤로 일찍이 개밋둑이나 달팽이 껍질 같은 집이라도 나 하나 살 만하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이제 와서야 안간힘을 쓴 끝에 비로소 겨우 들어가 살 만한 소옥(小屋)을 갖게 되어 건조하고 습기찬 것과 춥고 더운 것을 피할 수 있게끔 되었다. 이 집이 비좁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긴 하나 나의 거처로는 안성맞춤이라서 내 입장에서는 대궐 이상으로 느껴지기만 한다. 내가 일찍이 통인(通人 박람다식(博覽多識)한 인물) 권여장(權汝章 권필(權韠))의 말을 들어 보건대 ‘나의 밭을 갈아 먹고 나의 샘을 파서 마시며 내 천명을 지키면서 내 생애를 마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