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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선이든 악이든 마음에 얻은 것이 심덕(心德)이다

심덕(心德)이란 마음의 얻은 것을 말한다. 선(善)에 노력하기를 오래하면 선을 얻게 되고 악(惡)에 젖기를 오래하면 악을 얻게 되니, 선과 악이 비록 다르지만 다같이 심덕(心德)이라 할 수 있다. 성실과 거짓은 바로 학문의 허실(虛實)을 말하며, 순수하고 잡박(雜駁)한 것은 바로 조예(造詣)의 우열(優劣)을 말한 것이다. 누군들 성실은 좋고 허위는 나쁘다는 사실을 모를까마는, 허위에 빠진 사람은 성실이 크게 쓰이는 것을 모르고 혹은 신이(神異)함만을 탐구하거나 혹은 고혹(蠱惑)에만 빠져들어, 자기가 이미 거짓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성실한 사람은 허위(虛僞)란 대단히 좋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서 성실의 유용함을 독실히 지켜 간다. 조예가 순수한가 잡박한가 하는 문제도 대개 이와 같다...

[고전산문] 희로애락이 바른 사람은 그 성품(性)도 바르다

이른바 본연의 성(性)이라는 것은 그 형질(形質)이 이루어지기 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형질이 갖춰진 뒤에도 항상 그 본연의 성(性)이 있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천지 인물(天地人物)이 다같이 얻는 것으로 기(氣)에 의지하여 존재하게 된 것이다. 사람과 만물의 형질이 갖추어지기 전에는 곧 천지의 이기(理氣)였다가, 그 형질이 이루어진 뒤에야 기(氣)는 질(質)이 되고 이(理)는 성(性)이 되며, 또 그 형질이 없어지게 되면 질은 기(氣)로 돌아가고 성(性)은 이(理)로 돌아가는 것이다. 천지에 있어서는 기(氣)와 이(理)라 하고, 사람과 만물에 있어서는 형(形)과 성(性)이라 한다. 그러니 만일 사람과 만물의 형(形)이 없다면, 무엇으로 그 성(性)을 논할 수 있겠는가.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

[고전산문] 사람을 헤아리는 일에 대하여

무사시(無事時, 특별하고 긴박한 일이 없는 일상적인 상황)에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 유사시(有事時)에 사람을 논하는 것과 같지 않으며, 사전에 사람을 논하는 것이 사후에 사람을 논하는 것과 다름이 있다. 무사시에는 다만 용모와 신기(神氣)*로써 품격(品格)을 논설, 장래의 부귀를 들어 기쁘게 하기도 하고 혹은 기대를 걸게 하여 빈천을 면하도록 하며, 혹 격려하여 권장하기도 하고 혹 징계하는 뜻도 있다. 유사시에는 감당할 만한 재기(才器)와 거행할 수 있는 기량(氣量)으로써 원근과 내외(內外)에 방문하고 귀천과 상하에 조사하여, 평소의 심법 행사(心法行事, 마음씀씀이 그리고 실천하고 행하여 드러난 일)와 인물 교접(人物交接, 사람을 대하고 사귀는 태도)을 근거로 삼고, 용모의 귀천 호오(貴賤好惡)와 사기 언..

[고전산문] 사람이 속임을 당하는 것은 그가 바라는 것에 있다

속이고 싶으나 속이기가 어려운 사람은 반드시 그가 하고 싶어하는 점을 이용해서 속일 수 있는 방법을 쓰기 마련이다. 만일 속여야 할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제아무리 감언(甘言 남의 비위에 맞도록 듣기 좋게 꾸미어 하는 말)ㆍ선사(善辭, 선하고 좋게 표현된 말과 글)를 가지고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평소 사리에 명백하여 비도(非道)로는 속이기 어려운 사람도, 반드시 자신의 하고 싶어하는 그 단서로 인하여 남에게 속임을 당하게 되지만, 혹은 그 속임을 당함으로 인하여 더욱 깨닫는 바가 있기도 한다. 속임을 당할 만한 일로 속임을 당하는 것은 대인(大人)으로서도 면할 수 없는 일이라 어찌 족히 누(累)가 되겠는가마는, 만일 속임을 당해서는 아니될 일로 속임을 당하면 이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

[고전산문] 바른 것을 해치는 사람

바른 것을 해치는 사람은 반드시 남을 사악(邪惡, 도리에 어긋나고 악독함)으로 몰고 자신은 정당하다고 자처(自處)하며, 나아가 동류를 불러모으기를 입김을 불러모아 산을 움직이고 모기 소리를 모아 천둥을 이루듯 한다. 비록 상대가 정당한 것을 알아도 기어코 마멸(磨滅, 갈아서 닳아 없어짐)하려 하고, 자신이 정당치 않은 것을 알면서도 반드시 옛 일을 증거로 끌어댄다. 민간의 포폄(褒貶, 칭찬과 나무람, 시비와 선악을 바르게 가름)을 두려워하지 않고 후세의 시비를 생각하지 않으며, 목전의 승부로 사생(死生)을 겨루고 도당을 옹호하고 기치(旗幟, 어떤 목적을 위해 내세우는 주장 혹은 태도)를 세우는 것으로 상공(上功, 으뜸으로 치는 공로)을 삼아, 민심(民心)에 거슬리면 천토(天討, 덕있는 사람이 하늘을 대신..

고전산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하여

선인들의 문자(글, 저술, 저서, 첵 등등)에도 직접 본 것과 못 본 것,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구분이 있다. 본 것과 아는 것에 대해 쓴 문자에도 오히려 후인들이 이해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모르거나 보지 못했던 문자에 대해서는 반드시 사류(事類, 사실적인 사례)를 널리 인용하고 전언(前言, 옛 사람이 한 말)을 많이 원용하여 문자로써 앎을 삼고 언어로 본 것을 삼고 있다. 후세의 초학들이 공부를 시작할 때 대부분 이러한 문자에 따르게 되므로 작자가 직접 보지 않았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연연하여 볼 수 있는 단서를 구하며, 작자가 모르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알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허욕과 망상이 여기에서부터 생기게 되고 견강 부회(牽強附會, 이치에 맞지 않는 말..

[고전산문] 두 종류의 귀머거리

모태(母胎)에서 태어날 때부터의 천성적인 귀머거리는 사람의 말도 물체의 소리도 들을 수 없으니, 적막한 천지요 들리는 것 없는 세계이다. 다른 사람편에서 보면,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없는 자는 불치의 병신이라 하여 푸대접하나, 사랑과 동정이 있는 이는 불쌍하게 여기고 그를 위해 답답해 하며 이르기를 ‘부모 형제의 말을 어떻게 들으며 물명(物名)이나 글자를 무엇으로써 배우느냐?’고 한다. 사람의 모양을 하고서도 사람의 행동을 못하고, 모든 감각 기관을 갖고도 그 때문에 모두 쓰지 못하게 된다. 귀머거리 쪽에서 보면 ‘사람은 원래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입으로 먹고 마시며, 대소변을 배설하고, 손으로 잡으며, 발로 다니니, 여느 사람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갖추고 있는 ..

[고전산문] 뜻이 같고 도가 합치되면 어울리고 다르면 공격한다

뜻이 같고 도(道)가 합치되면 서로 이끌어주는 보탬을 기뻐할 것이고, 뜻이 같지 않고 도가 합치되지 않더라도 서로 탁마(琢磨)하는 공(功)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로 이끌어주면서 애호의 정을 두는 것은 좋으나 과실을 감추고 잘못을 꾸며주는 습관을 들여서는 안 되며, 서로 탁마하면서 오직 좋은 것을 취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좋으나 처음부터 배척하고 거절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 무릇 예나 지금이나 학문이 같으면 어울리고 다르면 공격하는 자는 단지 학문함에 있어 스스로가 초라하고 치우친 점만을 보여줄 뿐, 절대 긍정이나 절대 부정을 넘어서는 넓은 아량은 가지고 있지 못한다. 학문의 본원(本源)을 천인(天人)의 경상(經常)*에 두어 위배하거나 넘어설 수 없게 한다면, 남이 공격한다 해서 근심할 것이 없..

[고전산문] 드러나 있는 것을 살펴서 안에 있는 애매한 것을 헤아린다

사람이 측인(測人, 사람을 헤아리는 것)에 대해 신중하지 않고 손쉽게 여기는 자가 있다. 한 가지 측인하는 말을 들으면 천고(千古)에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한 가지 측인하는 일을 보면 만성(萬姓)이 모두 같다고 여기며, 혹 한 말이라도 우연히 맞는 것이 있으면 기뻐서 견디지 못하고 맞지 않음이 있으면 버려두고 드러내지 않으니, 이는 변통에 통달하지 못한 헤아림이다.(중략)-'맞지 않음을 알면서 측인하는 것'(知不合而測人)- 뜻을 가슴 속에 품어 스스로는 비밀로 여기는 사람이라도 측인을 잘하는 사람은 그 행동과 기색을 바르게 관찰하여 반드시 알 수 있으니, 이것은 그 사람의 뜻이 밖으로는 반드시 일의 기회를 보는 것이 있고, 안으로는 반드시 일의 기미(機微)를 은연중에 추산하는 것이 있어, 말하지..

[고전산문]마음은 소리로 발하고 노래나 글로 표현된다

마음에 감동된 기(氣)가 구멍으로 나와 소리를 이루고, 사리(事理)의 용출(湧出, 치솟아 나옴)하는 소리가 말이 되고, 말이 장(章)을 이룬 것이 글(文)이 되니, 그 말을 듣고 그 글을 읽으면 그 마음에 온축(蘊蓄, 마음속에 깊이 쌓아둠)한 것을 헤아릴 수 있다. 싫어함이 간절하여 소리로 발한 것이 곡(哭)이고, 좋아함이 깊어 소리로 발한 것이 노래가 되니, 노래와 곡을 들으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의 천심(淺深, 깊고 얕음)과 성위(誠僞, 진정성과 꾸밈, 즉 거짓)를 분별할 수 있다. 일찍이 헤아린 바가 있는 것은 그 후에 비슷한 기미(낌새나 조짐)를 만나면 감동하는 것이니, 만약 전일에 헤아린 바가 없으면 어찌 제거(提擧, 어떤 문제에 대하여 말을 꺼냄)하는 것도 없이 발하겠는가? 감동하는 데 미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