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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호랑이에게 무늬가 없다면 그 가죽은 개가죽과 다름없다

성인의 글(聖賢書辭 성현서사)을 “문장(文章)”이라 총칭하니, 이는 글에 “문채(文采)”가 있음이 아니고 무엇이랴? 무릇 물의 속성이 텅빈 것처럼 투명해 보이나 잔물결이 일고, 나무의 몸체는 충실하여도 꽃이 피어나니 이는 형식이 내용에 종속됨을 말한 것이다. 호랑이와 표범에 무늬가 없다면 그 가죽은 개나 양의 것과 같을 것이다.(虎豹無文 則鞹同犬羊 호표무문 즉곽동견양). 코뿔소에게도 가죽이 있어서 색채에 붉은 칠감이 필요하니 이는 내용에 형식이 갖추어야 함을 뜻한다. 이처럼 인간의 정신을 풀어내고 사물의 형상을 그려내자면 문자 속에 마음을 새기거나 종이 위에다 말을 엮어 짜야한다. 그리하여 표범의 털빛과 같은 화려한 무늬를 드러내는 것을 가리켜 문채(文采)라 이름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문장을 구성하는 방법..

[고전산문] 문장을 조직(附會)하는 방법

무엇을 '문장의 조직(附會,부회)'이라 하는가? 문장의 조리를 체계화하여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을 서로 뜻이 통하게 하고 첨삭할 것을 정하고 서로의 경계부분을 융합시켜서 한 편의 작품으로 꾸미되 복잡한 요소가 지나치고 어긋남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집을 지을 때 반드시 기초를 튼튼히 구축하고 옷을 지을 때 바늘과 실로 잇는 것과 같다. 재능 있는 아이가 문장을 배울 때에는 마땅히 문장의 체제를 바르게 해야 한다. 반드시 감정과 사상을 문장의 중추로 삼고 소재를 골격으로 하며 언어의 수식을 피부로 하고 운율의 배치를 소리의 기운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한 뒤에 수사의 종류를 정하고 음악성을 배려하며 사용한 요소에 첨삭을 가해서 균형이 잡힌 형태로 다듬어가는 것, 이것이 '생각을 문장으로 엮는 원칙(..

[고전산문] 물감을 발라야만 색채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완정(玩亭, 이서구李書九)씨의 시론은 너무도 특이하다. 시(詩)의 성율(聲律)은 말하지 않고 시의 색채(色彩)만을 말한다.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시(詩)의 글자는 대나무와 부들에 비유할 수 있고, 시의 글월은 엮은 발과 자리에 비유할 수 있다. 잘 생각해보면, 글자는 그저 새까맣게 검을 뿐이고, 대나무는 말라서 누렇고, 부들은 부옇게 흴 뿐이다. 그런데 쪼갠 대나무를 엮어 발을 만들고 부들은 엮어 자리를 만들되, 줄을 맞추고 거듭 겹쳐서 짜면, 물결이 출렁이듯 무늬가 생겨나서 잔잔하기도 찬란하기도 하다. 그래서 원래의 누런 빛이나 흰빛과는 다른 새로운 빛깔을 만들어낸다. 그렇듯이 글자를 엮어 구절을 만들고 구절을 배열하여 글월을 이루었을 때에는 마른 대나무와 죽은 부들이 만들어내는 조화에 그치겠는..

[고전산문] 어떻게 독서를 할 것인가?

지난 가을에 서신 올리고 잘 들어갔는지 소식 몰라 지금껏 탄식하였는데, 초여름 사신의 돌아온 편에 멀리 회답을 주시고 겸하여 송전(松箋)의 아름다운 선물까지 주시니 감사합니다. 요사이도 귀체 편안하신지요? 시험 기일이 또 다가오니 연구에 많은 애를 쓰실 터인데, 더욱 새로 얻은 것이 많이 있으십니까? 제(弟)는 상기(喪期)를 마친 몸으로 쇠약한 모습이 이미 나타나니 공명(功名)의 길은 분수에 없는 줄로 알며, 또 다행이 선대의 음덕(蔭德)으로 두어 이랑의 박전(薄田)이 있어, 먹고 살 수 있으므로 장차 영달(榮達)의 길을 끊어버리고 힘에 따라 수행(修行)하여, 집안을 편안히 하고 한가한 틈을 타서 옛 교훈대로 노력하며, 대장부의 호웅(豪雄)의 본령(本領)을 갖추기에 마음을 쓸까 합니다. 그렇게 함이 혹 ..

[고전산문]생각의 창을 통해 나오는 노래

무릇 생각은 즐거워도 나고 슬퍼도 난다. 나의 생각은 어디에 있는가? 서 있어도 생각나고 앉아 있어도 생각나며, 걸어도 생각나고 누워도 생각난다. 어떤 때는 잠깐 생각나고, 어떤 때는 오래오래 생각난다. 어떤 때는 생각을 오래 할수록 더욱 잊지 못한다. 그러니 나의 생각은 어디에 있는가? 생각하여 느낌이 있으니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고, 소리를 따라 운을 붙이니 곧 시가 되었다. 비록 음조가 비리하여 음악으로 연주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저 오나라와 채나라의 민요와 비교해보면 또한 내가 생각한 것을 스스로 울린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시 약간 수를 깨끗이 하여 ‘사유악부’(思牖樂府, 생각의 창을 통해 나오는 노래)라 이름하였다. -김려(金鑢, 1766∼1822),'사유악부서(思牖樂府序)' , ..

[고전산문] 시를 짓는 것은 초상화를 그리는 것과 꼭 같다

시(詩)는 성조(聲調)의 고하(高下)와 자구(字句)의 공졸(工拙)을 막론하고, 그 시가 묘사하는 경(境)이 참되고[眞] 서술하는 정(情)이 실제적이어야만[實] 천하의 좋은 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백과 두보 이후에 백거이․소식․육유(陸游) 등의 시는 그 성조가 반드시 다 수준 높은 것은 아니며 자구도 모두 솜씨좋은 것은 아니나, 참되지 않은 경을 묘사하거나 실제가 아닌 정을 서술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읽어 보면 정말로 그 시 속의 장소를 직접 밟아보고 그 시속의 사람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니 모두 천하의 좋은 시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시를 짓는 것은 화가가 초상화를 그리는 것과 꼭 같다. 터럭 하나 하나가 모두 꼭 닮아야만 비로소 그 사람을 그려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고전산문] 절조가 무너진 세상, 본성을 잃지 않으려고

선비들의 무너진 절개와 지조 아아, 선비들의 절조가 무너진지 오래되었도다! 세력가에게 달려붙고 권세있는 요인에게 기웃거리면서 쉴새없이 바쁘게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며, 구름처럼 몰려들어 청탁하고 바람처럼 빠르게 달려든다. 심지어는 높은 관리들도 자식을 위해 벼슬자리를 구하고 명사들도 편지를 써서 아우를 천거하니, 사람들은 서로 눈을 부릅뜨고 반목하며 자리를 얻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여, 공(公)에 등 돌리고 사(私)를 좆으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인사철이 되면 온갖 구설이 난무하여 서로서로 설을 퍼뜨리기를, ‘누구는 모 대신의 아들이니 모 산감(山監)이 될 것이다’, ‘누구는 모 재상의 아우이니 모 능참봉(陵參奉)이 될 것이다’, ‘누구누구는 모 관리의 친척이고 친지이니 모 현감, ..

[고전산문] 옛사람의 찌꺼기

제나라 환공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뜰 아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던 윤편이라는 목수가 망치와 끌을 놓고 올라와서 환공에게 물었다. “임금님께서 읽고 계신 것에는 무엇이 쓰여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환공이 말했다. “성인의 말씀이시다.” “성인은 살아 계신 분입니까?” “이미 돌아가신 분이다.” “그렇다면 임금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이겠습니다.” 이에 환공이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에 대해 수레바퀴나 만드는 자가 어찌 논의하느냐? 올바른 근거가 있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죽여버리겠다.” 윤편이 말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을 미루어 그것을 헤아린 것입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엉성히 깎으면 헐렁해져 견고하게 되지 않고, 꼼꼼히 깎으면 빠듯해져 서로 들..

[고전산문] 깨달으라고 권하기보다는 생각해보라고 권하는 것이 낫다

천하에 이른바 도술(道術, 도덕과 학술)이나 문장이란 것은 부지런함으로 말미암아 정밀해지고,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 진실로 능히 깨닫기만 한다면 지난 날 하나를 듣고 하나도 알지 못하던 자가 열 가지 백 가지를 알 수 있다. 앞서 아득히 천리 만리 밖에 있던 것을 바로 곁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에는 어근버근 어렵기만 하던 것이 너무도 쉽게 여겨진다. 옛날에 천 권 만 권의 책 속에서 찾아 헤매던 것이 한 두 권만 보면 너끈하게 된다. 이전에 방법이 어떻고 요령이 어떻고 말하던 것이 이른바 방법이니 요령이니 하는 것이 없게 된다. 기왓장 자갈돌을 금덩이나 옥덩이처럼 써먹을 수 있고, 되나 말로 부(釜, 가마솥)나 종(鍾)이 되게 할 수도 있다.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고, 아무리 써..

[고전산문] 말로는 표현할 수도 깨우칠 수도 없는 것

명(明) 나라 이후로 문장을 한다는 사람들을 내가 대강 안다. ‘나는 선진(先秦)의 문장을 쓴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찬찬히 살펴보면 그렇지는 않고 입이 쓸 뿐이다. 또 ‘나는 사마천(司馬遷)의 문장을 쓴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는데, 찬찬히 살펴보면 그렇지는 않고 뜻만 높을 뿐이다. 또 ‘나는 한유(韓愈)의 문장을 쓴다.’는 사람도 있는데, 찬찬히 살펴보면 그렇지는 않고 억지로 우겨댈 뿐이다. 또 ‘나는 소식(蘇軾)의 문장을 쓴다.’는 사람도 있는데 찬찬히 살펴보면 그렇지는 않고 거칠 뿐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저 옛사람들의 문장의 기가 성한 것[氣之盛]만 부러워한 나머지, 그와 같아지려고 일생의 힘을 모두 다 바치는 정도에 이르렀으나, 마침내 여기에 그치고 말았으니 그 어려움을 알 수..